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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함 May 05. 2020

어라, 취직해 버렸다

5월 5일 화요일 일기


안녕? 나는 2015년 5월에 첫 입사를 해서 3번의 퇴사 후에 4번째 취업을 했어. 재취업만 3번 한 셈이지. 이번 취업은 너무나 갑작스러웠어. 3번째로 퇴사를 하면서 '다시는 회사를 다니지 않겠다'라고 다짐했었거든.




3번째 퇴사 후, 나의 삶은 아주 좋았어. 그나마 잔재주가 하나 있어서 반백수이자 반 프리랜서로 배짱이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지.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큰돈이 필요하게 되었어. 알바몬을 깔았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걸 취업했다고는 하지 않잖아. 

결국은 알바를 구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간과했던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어. 코로나 19로 인한 불경기. 20대 후반의 간당간당한 나이. 철새 같은 스펙, 경력은 있는데 아르바이트생으로 쓰기에는 변변치 않은 경력 등등. 내가 생각해도 나열하자면 끝이 없으니 이만할게. 그래서 그런가? 스타벅스에 지원했는데 3주 동안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어. 나 청소 잘하는데...


이런 시기가 이어지자 갑자기 슬퍼졌어. 어느 날인가 울면서 알바몬을 켰지. 정신없이 온라인 지원 버튼을 누르고 침대에 웅크리고 누웠어. 한 시간 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더라. 어라, 정규직으로 함께하지 않겠냐고 하네? 신종 사기 아닌가 싶었는데, 면접 당일에 사무실까지 보여주길래 일단 믿어보자 생각했지. 결과적으로 어버버버 하는 사이에 취직이 되어 버렸어.  


다시는 회사를 다니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왜 취업했냐고? 바보야? 지금 이 시기에 아르바이트로도 안 뽑히는데 내가 이걸 마다하면 천하제일 쓸모없는 인간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할 거야.


사실 난, 취업은 마약 같은 거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퇴사를 하고 재취업을 하지. 그리고 이직을 하고, 또 퇴사를 하지. 그리고 또 재취업을 해. 이게 마약이 아니면 어떤 말로 설명이 되겠어? 지금까지 난 내게 잘 맞는 최상급 마약을 찾지 못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번 직장은 100%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꿈꾸고 있는 마약의 맛 끄트머리라도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당장 내가 쓸 모니터는 삼성에서 나온 최신형 UHD 모니터고, 크기는 내 몸길이 만해. 업무용 폰도 받았는데, 삼성 최신폰이야. 그걸 눈 앞에서 보니까 월급이고 다른 조건이고 눈에 안 들어오더라? 내가 생각해도 난 참 단순하다 못해 무식할 정도로 물질에 약한 인간이야. 그래도 그게 좋은 걸 어떡해.


나는 욕망에 져서 취업을 하고 말았어. 그런데 있지, 가끔은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인생도 좋다고 생각해. 그럼 하나라도 고민을 덜 할 수 있잖아. 이제 복잡한 건 싫어. 그런 건 이전에 다닌 회사에서 많이 했어.


취업은 진짜 힘들지. 인생이 걸리기도 하잖아. 가족같이 힘들어. 취업한다고 편해지느냐. 절대 그렇지 않지. 무척이나 신발끈스러운 일이 가득해. 그런데도 우리는 취업이라는 수심을 알 수 없는 물속으로 풍덩풍덩 쉼 없이 다이빙을 하지. 멈출 수 없어. 숨이 부족해도 계속 내려가야 해. 멈추면 죽거든. 그렇다고 무서워하지는 마. 다들 그러고 산다고 우리 엄마가 그랬어.



Editor by 오피아


* 월요일과 수요일에 연재되던 '일기에는 제목을 붙이지 않아'는 당분간 화요일과 목요일로 연재일을 변경합니다. 이유는 제 취업 때문이에요. 월요일에는 도저히 글을 올릴 짬이 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연재일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꾸준히 저희 글을 봐주신 분들께 양해의 말씀을 전합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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