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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함 May 13. 2020

내가 쓴 양산의 그림자 만큼만 생각하기로 했다

5월 12일 화요일 일기


재취업에 성공했다. 비결? 그런건 없다. 눈높이를 낮춰서 휴게시간이 따로 없고, 정규근무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추며, 초과근무수당과 상여금이 없는 곳에 지원했다. 아, 4대보험도 안 되는구나.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법적인 문제... 어디든 털면 먼지 안 나오는 곳 없다고 우리 엄마가 그랬다. 잊지 말자. 지금은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시대. 취업률이 최저를 찍고, 함께 잘 살자 말하지만 마음놓고 있다가는 '사는게 그렇게 만만하니?'라는 소리를 이름도 모르는 타인에게서 들을 수 있는 시대다.






일을 하면서 친구 외의 관계를 쌓게 되었다. 그것은 내게 새로운 경험이자 독이었다. 새로운 관계에 대한 면역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담을 받았더니 살면서 자연스레 사람을 대하는 법을 터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나는 후자였다.


전에 없을 정도로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생각이 많은 것이 독이 되기도 했고, 도움이 될 때도 있었다. 나는 부딪혀가며 사람과의 관계를 배워 나갔다. 결과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나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잘 넘겼다고 생각해도 기력을 너무 소모해 번아웃을 겪기도 했다. 인간관계에서의 번아웃이라니. 생각도 못한 일이다.

                                

 

살기 위해서 내 마음대로 살기로 했다. 퇴사를 하고, 하고 싶은 일만 했다. 행복할 줄 알았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눈물흘리며 선망할만큼 해피한 삶을 살 줄 알았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만 한다고 매일이 행복하진 않더라. 고민과 불안은 전보다 덜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을 떠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혼자 잘 노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한 두 번 정도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 혼자서 하는게 편하고 좋았다. 그럼에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타인과의 관계를 아예 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 주변에 담장을 한 번 쳤다가 부쉈다. 사람과의 관계에 벽을 세우는 건 나도 못할 짓이고, 상대에게도 못할 짓이라는 걸 그 과정에서 배웠다. 생각해보면 나는 학습태도가 좋은 학생이다. 세상이 알려주는 그대로 나아가니까. 이 점은 칭찬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출처_flickr


어느 날인가 친구를 만나러 가다가 날이 더워서 땀을 흘렸다. 양산을 써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고 생각했고, 문득 양산 아래로 생기는 그림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 딱 그 만큼만 생각하면 안 될까?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받아들이는게 내가 든 양산 아래에 생긴 그림자만큼인 거지. 딱 그 만큼만의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자. 이건 벽을 치는게 아니야. 내 그림자에 누군가 발이나 손을 들이밀수도 있는 거잖아. 그럴때는 받아주자.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일만 일어났던 것 같다. 그 상황을 직면하며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타인에 대해 과도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랬다. 타인을 이해하려 했고,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과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내가 쓴 양산의 그림자만큼만 생각하기로 하면서, 고민이 줄어들었다.





이태원 사태가 터지고 난 다음날 밤이었다. 비가 내려서 공기가 찼다. 찬 공기를 느끼며 목이 칼칼함을 느꼈고, 이상타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목이 부었음을 느꼈다. 이전부터 기관지가 약한 편이라 환절기에 감기에 곧잘 걸리는 편이었다. 목감기임을 직감했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 받았다. 그곳에서 날 세균덩어리로 취급하며 목 안도 들여다보지 않는 의사의 행동에 불안이 생겼다(체온은 쟀다).


뉴스에서 연신 이태원 클럽에 대해 떠들었고, 그날이 가기 전에 내가 사는 집의 건너 골목에 25세 남성이 이태원 클럽 방문자로 무증상자였음을 알리는 문자를 받았다. 이것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다. 나는 1339에 전화해서 상담을 받았다. 지난 2월부터 발생한 확진자들의 동선과 전혀 겹치지 않고, 의사가 약을 처방해 줬으니 며칠 먹고 기다려 보자는 말을 들었다. 


나는 직장도 걱정되고, 부모님도 걱정되고, 친구들도 걱정되어서 검사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가 권유하지 않았고, 확진자의 동선과 겹쳐서 검사를 받으라는 별도의 안내도 받지 않았으니 자비 부담이 16만원이란다. 상담원은 내게 동네에 있는 국민안심병원을 약을 다 먹고도 증상이 심해지면 가볼 것을 권유했다. 나는 알겠다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서 외부에 알렸으니 할 수 있는 걸 다 한 거 아닐까? 하고. 그러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자고 일어나자 목은 살짝 칼칼하기만 할 뿐, 이전과 다름없는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앞으로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범위 이상의 생각들이 밀려온다면, 내가 들고 있는 양산 아래 생기는 그림자의 크기를 떠올릴 것이다. 딱, 그 만큼만 생각을 하고 있으면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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