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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찬 Apr 18. 2016

서른, 나는 여행에서 인생을 배웠다

[자유도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흔히 여행을 자주 떠나는 사람들을 우리는 자유롭다고 바라본다. 나 또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유롭게 살아서 좋겠다, 부럽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유의 의미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해왔다.

 그래서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여행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싶다. 나는 주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에 내 기분대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자유배낭여행을 선호한다. 대략적인 큰 일정만 계획하고, 예약은 최소한으로 하고, 즉각적인 나의 감각에 충실한다. 


 이번 남미 여행을 떠나면서도 이 부분이 많은 고민이 되었다. 우선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동행(준형이)이 있었고, 영어권이 아닌 스페인어권이라는 점이 부담이 되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오지투어라는 여행사를 알게 되었다. 패키지여행의 장점과 자유배낭여행의 장점을 절묘하게 섞은 '리얼 자유배낭여행'이라는 형태의 여행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교통편이나 숙소 등은 안내를 해주지만 남미 현지에서의 일정은 개인이 진행하는, 패키지와 자유배낭여행의 콤비네이션이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덕분에 나는 출국 전 준비사항이 확 줄어들었고, 편안한 마음으로 남미로 향할 수 있었다. 남미 현지에서도 여행은 너무나 편했다. 평소처럼 교통편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할 필요도 없었고, 숙소를 잡기 위해 발품을 팔 필요도 없었다. 원하는 투어가 있으면 말만 하면 예약도 대행해주었다. 혼자 여행할 때 보다 정보도 넘쳤고, 만족스러운 서비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씩 지쳐갔다. 평소 나는 여행지에 오면 체력이 평소의 2-3배는 증가해서 피로를 잘 느끼지 않고는 했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여행과 비교해서 훨씬 편한 여행을 하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피곤했다. 여행에 있어서 내가 직접 움직일 일이 적어지자 몸뚱이는 편해졌지만, 무언가 불만족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오지투어에서 인솔을 나온 팀장님은 완벽했다. 그렇다면 서비스 자체가 아닌 나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해준 숙소에서 잠을 자고, 예약을 해준 버스로 이동을 하고, 추천해주는 투어에 참여하는 여행은 진심으로 너무나 편했다.

 문제는 편해진 만큼, 나는 내 스스로 내 자유의지를 포기한 데 있었다. 어느새 나는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행에 끌려가고 있었다!

 여행사의 도움 없이 홀로 여행하고 있는 여행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우리 팀에 비해 훨씬 더 꼬질꼬질했고, 거칠었고, 불편해 보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눈빛은 자신감으로 빛이 나고 있었고, 자부심이 느껴졌다. 나는 그들에게서 진정한 자유를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쩌면 자유는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 아닌, 조금 거칠고 불편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사실을.


 정해져 있는 여행은 편하다. 따라만 다니면 된다. 정해져 있는 인생도 편하다. 따라만 가면 된다.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며, 인생을 패키지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패키지여행처럼 패키지 인생 역시 무척 편하다. 학교가, 부모가, 사회에서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을 따라가는 인생은 안전하고 합리적이다. 그것이 유일한 정답처럼 보이고 그 길을 벗어나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우연이건 필연이건 이 길을 벗어나 혼자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보통 그 사람들은 가진 것도 적고 거칠고 불편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감에 차 있으며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동경한다.

 패키지여행과 패키지 인생은 겉보기엔 완벽해 보이지만 무언가 중요한 게 빠져있다. 자유 의지이다. 자유배낭여행이 시행착오와 연습이 필요한 것처럼, 자유로운 인생 또한 시행착오와 연습이 필요하다. 사회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벗어나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무모해 보이고, 비합리적이며, 비경제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자유가 있다.  


 신경숙 씨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는 잎싹이라는 암탉이 등장한다. 안락하고 안전한 닭장이 아닌, 닭장 밖의 세계를 동경하던 암탉이 닭장 밖의 세계에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 동화이다. 자유롭고 좋을 것 같기만 하던 닭장 밖의 세상은 사실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위험한 세상이었다. 잎싹은 다른 동물들로부터 비웃음을 받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다. 

 비록 아이들을 위한 동화이지만, 자유에 대한 환상이 아닌 차가운 현실을 굉장히 잘 그려낸 작품이라 기억에 남았다. 내가 경험한 자유도 사실 비슷했다. 차갑고, 고독하고, 불안하고, 위험했다. 그럼에도 자유가 있는 이 길이 좋았다. 


 군생활이 힘든 이유는 수두룩하겠지만 무엇보다 자유가 제한적인 이유가 클 것이다. 군대에서는 일상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위에서 정해준다. 상명하달의 원칙에 따라 우리는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훈련을 받는다. 의문이나 고민, 대안은 허용되지 않고, 정해진 방침을 묵묵히 따르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그리고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던 청춘들은 군 제대 후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어찌할 줄 몰라한다. 2년 동안 시키는 일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 자기 인생의 선택을 자기가 내려야 하는 상황에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다. 걔 중에는 "아 차라리 군대가 편했어" 라며 군대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등장한다.

 군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선택 장애'를 호소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짜장이냐 짬뽕이냐처럼 간단한 선택에서부터 진로, 직업, 결혼에 이르기까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방황하는 청춘이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려서부터 제시된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른, 패키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일수록 이 증상이 심한 것은 개인의 탓일까, 사회 구조의 탓일까?

 사실 누구의 탓이냐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라도 선택을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세 가지로 우리는 죽음, 세금, 외로움을 꼽는다. 나는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네 가지에 '선택'을 추가하고 싶다. 죽음, 세금, 외로움만큼이나 우리는 살면서 선택을 피할 수 없다. 이 선택을 타인에게 미루며 책임까지 전가하는 것은 비겁하다. 사소한 선택이 쌓이고,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유로워질 준비가 된다. 스스로의 기준으로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이다. 


 패키지여행과 자유 배낭여행을 모두 해 본 사람은 그 차이를 알 것이다. 불편하고 더 고생을 해도 자유 배낭여행에는 패키지여행에는 없는 자유의 맛이 있다. 패키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 자유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고생길을 자처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 인생의 피로를 느끼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패키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동물원의 사자를 본 적이 있는가? 모든 것이 풍족하지만, 나른하고 지루해서 견딜 수 없어 보이던 사자의 눈빛이 나는 기억에 남는다. 사자는 야생에 있을 때 진정 살아있는 것이다.

 우리는 전 인류를 통틀어 가장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자유의 가치를 스스로가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로울 권리는 과거 "나에게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던 울부짖음의 결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라는 멋진 선물을 먼지가 쌓이게 두지 말자. 자유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할 용기가 생겼을 때 빛을 본다. 이 선물을 멋지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좀 필요하다는 사실 역시 기억하자. 당신의 자유를 존중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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