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찬 Mar 29. 2017

스마트폰, 어쩌면 타임머신

스마트폰이라 쓰고 타임캡슐이라 읽는다


지난 토요일 아침,

세종에서 서울을 올라가던 길에 스마폰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불과 몇 분 전까지 멀쩡하던 내 스마트폰의 숨통은 그렇게 어이없게 끊어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목적지 근처에 와서 내 스마트폰이 운명을 다했다는 점.

그렇지 않았다면, 길치 오브 길치인 나는 서울 온 구석을 헤매고 다녔을 터.


2017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지하철 안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기다리며, 혹은 반가운 친구를 마주하고서도..

그렇기에,

나는 아날로그 감성이 더욱 간절했고, 좋았다.

카페에서는 스마트폰 보다는 책을, 사람을 만날 때는 스마트폰 화면 보다는 그 사람의 눈을 보려 했다.

솔직히 나는 스스로를 스마트폰 중독자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느닷없이 찾아온 스마트폰 없는 주말의 시작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자신 있었다. 괜찮을 줄 알았다.


토요일 공식 일정 이후에 친한 후배와 약속이 있던 게 생각이 났다.

물론, 후배의 번호는 잠든 스마트폰만이 알고 있었다.

다행히 번호가 기억나는 친구에게 스마트폰을 빌려 연락을 했다. 후배의 번호를 건네받아 상황을 설명하고 약속을 취소했다. 스마트폰 없이 약속 장소로 가서 후배를 만날 자신이 없었다.


일요일

통장 잔고를 확인해야 했다.

입금을 해야 했다.

스마트폰은 묵묵부답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카드를 긁었다.


월요일

오전에 사장님과 미팅이 있었다.

PC카톡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한 덕분에 무사히(?)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폰 수리점에서 사망선고를 받았다.

메인보드까지 싹 다 날라가서 수리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모든 연락처, 자료, 사진 등 모든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스마트폰을 떨군 직후에 어떻게든 숨통을 살려보겠다고 전원 버튼+홈 버튼을 꾹 꾹 눌러댄 탓이라고 했다. 무식한 응급처치의 잘못된 결과는 참혹했다. 


화요일

4일 만에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새 스마트폰을 개통했다.

카톡 친구 880명

연락처 0명

실화냐 이거..


수요일

새 아이폰을 사용 중인 맥북과 동기화에 성공했다.

갑자기 어제 산 새 아이폰이 "2016년 2월"로 돌아갔다. 

어제까지 낯설고 새로웠던 스마트폰이 

오늘은 작년 2월, 나의 모습을 상기시켜주었다.

카톡도, 음악도, 사진도, 메모도 마치 과거의 타임캡슐처럼 그대로 복원되었다.

2016년 2월 나는 남미 여행을 앞두고 있었고,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카톡 대화 내용과 사진은 일 년 전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주었다. 또한 당시 내가 어떤 음악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는지도 알 게 해주었다.

물론, 전화번호 리스트도 2016년 2월에서 멈춰버렸다. 

2017년 3월의 삶을 살기 위해 나는 스마트폰을 다시 동기화하거나, 작년 2월 이후에 만나게 된 인연들의 연락처를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추억에 조금 더 머물고 싶은가 보다. 스마트폰, 아니 타입 캡슐 덕에 우연히 마주한 "2016년 2월"의 세계에서, 당시 했던 카톡 대화와 통화 기록, 당시 찍었던 사진을 보고 당시 들었던 음악을 듣고 있다.

오늘은 2017년 3월 29일 수요일이지만, 나는 홀로 2016년 2월의 어느 날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쯤 되니 살짝 헷갈린다.

내가 있고, 스마트폰이 있는 것인지

스마트폰이 있고, 내가 있는 것인지


#쫌만_더_머물다가야지

#Give_me_your_number_plz

#iPhone5s_gold

#iPhoneSE_rosegold

#타임머신 #타임캡슐 #추억여행

#추억은_추억일뿐

#동기화_종종_해둘껄_후회_막심




작가의 이전글 서른, 나는 여행에서 인생을 배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