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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쑥 May 16. 2016

당신의 오아시스

~2002 과거의 영화를 만나다


  폭력, 강간 미수, 과실 치사… 전과 3범의 종두는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낙오자다. 그는 뺑소니 교통사고로 2년 6개월의 형을 마치고 막 출소했다. 그가 교도소에 들어갈 땐 한여름이었다. 지금은 시린 겨울날이다. 추운 날 출소하는 그를 위해 따뜻한 겨울옷 챙겨주는 가족 한 명이 없었다.



  두툼한 외투를 걸친 사람들 속에서 얇은 반팔만 걸친 그는 세상과 동떨어진 외톨이다. 자기 옷 한 벌 사 입을 만하건만 그는 엄마에게 선물로 줄 분홍 옷만 고를 뿐이다. 종두는 희희낙락 집에 찾아가지만 가족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채다.

  그는 이상하다. 어벙한 표정과 모자라 보이는 말투, 자기 내킬 대로 하는 행동. 어린아이의 천진함 같기도 하고 양아치의 껄렁함 같기도 한 그의 행동이 난 솔직히 불편했다. 우리는 항상 '예의 바르도록' 교육받는다. 물색없이 장난스러운 모습은 나이가 듦과 동시에 '버려야 할 것'이라고 배운다. 종두의 형처럼 말이다.

  종두의 형, 종일은 진절머리 난 표정으로 종두에게 말한다.


  "너도 이제 어른이 돼야지"

  "어른이 된다는 건 이제 네 마음대로 니 하고 싶은 대로 살아선 안 된다는 뜻이야. 자기 행동에 책임도 지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나 그런 것도 생각하고. 한마디로 이 사회에 적응을 해야 돼. 그게 어른이 되는 거야."


  어른.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종일은 하고 싶은 대로만 살아선 안 되는 존재가 어른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볼지 고민하고 책임을 지는 게 어른이라....... 코웃음이 나오는 건, 종두에게 2년 6개월의 형을 지운 뺑소니 사건의 진범이 종일이란 것이다. 종일은 자신이 저지른 일의 책임을 종두에게 떠넘겨버렸다. 종두는 자신의 책임이 아닌 일을 책임졌다. 책임지지 않은 자가 '책임'을 운운하고 '어른'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모냥이 우습다. 지극히 '보통 사람'인 종일을 보며 어쩌면 지금 세상엔 종일 같은 '어른들'이 널려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두는 자기 일도 아니건만 뺑소니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주를 만난다.

 


  이름은 공준데 전혀 공주 같지 않은 그녀. 부산스럽게 이사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로 그녀는 거실에 덩그러니 정물처럼 남는다. 거실 안을 날아다니는 비둘기 한 마리와 나직하게 울리는 허밍 소리. 평화롭고 고요한 그녀만의 세계는 종두가 누른 초인종 소리에 깨져 버린다. 비둘기는 거울에 반사되는 빛이 되고 아름다운 허밍 소리는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불완전해 보일지라도 그녀는 온전하다. 비록 신체는 불편할지언정 그녀의 마음속 세상은 아름답다. 몸은 멀쩡하지만 마음이 아픈 종두와 몸은 아프지만 마음이 어여쁜 그녀는 그렇게 만난다.



  종두와 만나면서 공주는 장애를 넘어서 자유로와진다. 처음엔, 지하철 앞자리에 앉은 연인처럼 종두와 장난치는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보는 공주의 상상으로 표현된다. 그러다 점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연출을 통해 여느 연인들과 다를 바 없이 장난치고, 삐쳐서 다투고, 다시 화해하고 사랑을 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에, 지하철역에서 종두에게 업혀있던 공주가 어느새 휠체어에서 일어나 종두를 그 휠체어에 앉히고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라며 노래를 불러주는 아름다운 장면은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공주와 마찬가지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종두를 공주가 감싸 안아주는 따스함이 전달된다. 좁은 집안이 전부였던 공주는 종두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가족에게까지 외면받아 정서적으로 결핍된 종두는 공주의 다독임을 받으며 치유해나간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주고 아픈 곳을 매만져주며 사랑을 키워 간다.


  이 영화의 결말은 참- 답답하다. 어느 누구도 둘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틀에 박힌 편견과 잣대로 둘을 갈라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둘의 상처투성이인 손은 맞닿아 있다. 2016년, 지금도 어딘가에 정말 있을 것만 같은 그들의 사랑을 나는 응원해주고 싶다.


오아시스(2002), 감독 이창동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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