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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Nov 17. 2023

현실 속 상사에게 듣는 망언보다 값진 명언

[직장인 OTT]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넌 마지못해 일하는 거잖아


아무리 입을 틀어막아도 수시로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해서라도 힘든 순간을 극복해 나가려는 직장인의 발버둥이라고 위안 삼아 본다.


직장서 매 비슷한 상황을 반복하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도망치는 곳에 천국은 없듯, 이직해도 순간순간 피어오르는 새까만 분노에 몸 둘 바를 모를 때가 많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까.



"그럼 그만둬, 그만두라고. 5분 안에 널 대신할 다른 여자를 구할 수 있어. 그것도 간절히 원하는 사람으로. 넌 노력하지 않아. 넌 징징대는 거야. 정신 차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주인공 앤디는 상사인 미란다에게 갖은 모욕을 당한 후 회사 내 유일한 친구인 나이젤에게 서러움을 쏟아낸다. 위 대사는 그때 나이젤이 앤디에게 던진 냉정한 조언이다. 앤디는 자신이 죽을 만큼 노력했다는 걸 강조했고, 나이젤은 많은 사람이 일하고 싶어하는 곳에서 마지 못해 일하며 징징대는 앤디를 저격했다.


나이젤이 마치 나한테 외치는 것 같아 뜨끔했다.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시도 때도 없이 징징거리며 살고 있다. 불평불만이 의욕을 덮어버릴 때도 부지기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내 징징거림의 근원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곳은 많은 사람에겐 일하다 죽어도 좋을 곳이지만, 넌 그냥 마지못해서 하는 거잖아."


앤디가 원하는 일은 패션잡지 편집장 비서가 아니라 기자였다. 원서를 넣은 신문사에서 연락이 오면 당장 달려가 일할 준 비가 되어 있었다. 남들이 그토록 원하는 런웨이이지만 그녀에게는 불평불만 가득한 직장일 뿐이었다. 상사 미란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동료들과 같은 곳에서 똑같이 일하지만, 마음가짐도 최선을 다하는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뽑아만 주신다면’을 호기롭게 외쳤지만, 출근하기 싫다고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며 더 좋은 회사를 기웃거린다. 하지만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게 원하는 곳이라는 걸 모른다. 한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떤 마음가짐이냐에 따라 작게는 하루의 성과가 좀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미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세상에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곳에서 마지못해 일하는 사람이 있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곳이지만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도 있다. 최선을 다해 일할 때는 어떤 일이라도 가능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마지못해 일하는 경우에는 적당함을 두고 최선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영화 속 앤디처럼. 현실 속 나처럼.



앤디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모습으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 최선을 다야지!'라던 다짐은 퇴색된 지 오래다. 사실 돈벌이 수단이라는 생각이 짙다. 어쩌면 영화 속 미란다 같은 선배가 적당히 일하면서 최선을 다한다고 착각하는 내 마음을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직장이 비슷비슷한 곳이라고 느낀다면 영화 속 멘토 나이젤의 조언을 가끔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기에 현실 속 상사에게 듣는 망언보다 값지지 않을까.


현실과 영화는 다르지만, 마음을 조금만 고쳐먹으면 지금의 직장이 단순한 돈벌이 수단만이 아닌 희망을 주는 등대로 보일 수도 있다. 여기서 등대는 탄탄한 경력일 수도 있고, 설레는 이직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최선을 다하면서 당당하게 징징거리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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