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드id Apr 09. 2024

시집 잘 갈 수 있는 대학을 추천해 준 입시학원

"하고 싶은 게 있다는 하나만으로도 다행입니다"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가 진로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자발적 고민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입시제도가 진로를 빨리 정해야 효율적으로 대입 준비를 할 수 있다고 재촉해서일 뿐입니다.


요즘에는 중3이 끝날 무렵부터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진로(학과)를 정하라고 해요. 입시제도에 맞춰 유리한 성적 관리를 시작하기 위해서죠. 최소한 이과, 문과라도 선택하라면서 조바심을 유발합니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예비 고등학생이 몇이나 될까요.


딸아이는 피아노를 좋아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피아노를 시작했어요. 6학년까지 열심히 배우며 매년 콩쿠르에 나가 매번 좋은 성적도 거뒀죠. 중학생이 되어서는 밴드 활동을 하며 건반을 쳤어요. 학원에서도 좋아하는 곡을 정해서 배우며 취미로 이어갔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학원에 다니지 않았지만, 교회에서 반주를 맡아 계속 연습을 했습니다.


딸아이는 문과, 이과조차 정하기 어려워하면서도 음악 쪽은 취미로 남겨두고 싶다고 했어요. 고등학교에 입학해 문이과 중간 지점에서 남들처럼 열심히 국영수를 공부하고 있죠. 그러다 학기 초 선생님 면담 후 진로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아빠,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음악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실용음악과나 작곡과에 관심이 있어 일단 음악입시 학원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이동 거리를 고려, 열심히 검색해 입시 성적이 좋은 학원 한 곳을 찾아냈습니다. 전화로 짧게 상담을 하고 평일 늦은 오후에 대면 상담을 받았어요.


새로움과 희망 그리고 설렘을 기대했던 저희 부녀는 실망만 안고 나왔습니다.


이번 3월 모의고사 성적을 기준으로 콕 집어 E여대를 추천하더라고요. 이유는 첫 째, 남자 경쟁자가 없으니 유리하다. 둘째, E여대를 나오면 시집을 잘... 갈... 수 있다.... 라며. 경제력 있는 집에 시집가면 음악활동 하는데 도움 받을 수 있다면서요.


평소 딸아이 다니는 국영수 학원 때문에 당장은 시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레슨 시간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더니, 대뜸 딸아이에게 묻더군요.


"수학 좋아해?"

"아... 아니요....."

"서울대 아니면 수학은 버려."


수학 학원 다닐 시간에 작곡배우라는 말이었습니다. '아, 이제 고1 시작한 학생에게 말인가' 딸아이는 수학 선행을 제대로 고생하다가 이제 안정을 찾아가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레슨비 문의에는 동대문에서 흥정하듯 다른 데는 1시간에 몇 개인데, 여기는 몇 개라면서 다소 불편하게 표현하시더라고요. 더이상 상담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딸아이와 좀 더 상의를 해보겠다며 서둘러 대화를 마치고 나왔어요.


 시집 잘 보내려고 대학에 보내는 부모가 있을까요. 7080년대 여자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던 시대의 낡은 메아리일 뿐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 대학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빠, 여기 좀 이상한 거 같아요. 지금부터 정시 준비하라고 그러고. 내신도 포기하고 수학은 아예 버리라는 거잖아요. 저는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 아빠가 더 알아볼 게. 배고프다. 소고기나 먹으러 가자!"

"정말요? 저 소고기 처음 먹어봐요!"

(@@;;)/ 무슨 말이니?? (ㅡ.ㅡ;;)/")


딸아이 한마디에 모든 게 정리되었습니다. 물론 빠른 선택과 집중이 3년 뒤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입시 전문가의 전략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섣불리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또 사람끼리의 케미가 있듯, 학원과 학생과의 케미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딸이 하고 싶은 게 있다는 하나만으로도 큰 안심이 됩니다. 아직은 학기 초니까 딸아이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게 우선이고, 아빠는 다른 학원에서 상담을 다시 받아볼 예정입니다.


수험생도 부모도 힘든 시대입니다. 서로 지치지 않고 우울하지 않게 곁에서 항상 웃으며 응원하는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그래서 매일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며 학원에서 돌아오는 딸아이를 기다렸다 방긋 웃어줍니다. 딸아이는 조잘조잘 그날 있었던 일을 털어냅니다. 입시 제도의 순기능도 있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딸에 이어 아들도 선생님께 찍히다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