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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n 18. 2024

"화물이세요?" 소리까지 들은 일진 사나운 날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 말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겼습니다"


가뜩이나 기운 없는 월요일. 더군다나 무더위와 함께 맞은 아침이었습니다. 마침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마을버스에 타려고 아주 잠깐, 매우 잠깐 뛰었는데 땀이 송골송골.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기다렸습니다.


'악, 오늘도 없구나!'  <관련 글: 지하철 타고 출퇴근 하는 40대 가장의 진짜 고충>


매일 아침 지하철에 오를 때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선반 있는 지하철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선반이 없어 가방과 재킷을 한 손에, 나머지 손으로 책을 들고 서서 출근했습니다. 에어컨은 왜 이렇게 시원찮은지.


'시작부터 좋지 않군.'


가벼운 몸과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출근시간 정각에 진행하는 회의에서 상사의 시어머니급 잔소리에 기분이 살짝 상했습니다. 무거운 마음이 더욱 축 쳐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바로 외부 미팅이 있어 마음을 추스르며 막내 직원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렸습니다. 저희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는 내외부 사람이 공용으로 이용해서 늘 사람이 북적거립니다. 그래서 내외부인 모두가 화물 엘리베이터를 일반 엘리베이터처럼 이용하고 있습니다.


마침 화물 엘리베이터가 타이밍 좋게 내려와 올라탔습니다. 거의 빈 공간인데 서늘한 시선과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습니다. 안에는 택배 아저씨 한 명과 짐 몇 개가 바닥에 놓여있었습니다.


한층 정도 내려갔을까. 택배 아저씨가 저희를 못마땅한 눈으로 계속 쳐다보다가 잔뜩 화난 말투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혹시 화물이세요?"

"네!?!?"(어리둥절)

"나는 일반 엘리베이터 타지도 못하게 하면서 왜 이걸 타고 난리야. 바빠 죽겠는데."


아저씨는 분노에 가득 차 목소리까지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저 역시 속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양반 이 건물에 처음 방문하셨구먼!' 아저씨처럼 욱하고 화가 났지만, 파릇한 막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옆에 서 있었기에, 또 이 후배에게 "팀장님처럼 감정기복 없는 상사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최대한 침착하게 대꾸했습니다. (후배님, 미안하지만 잘못 알고 계신겁니다)


"다른데서 화가 많이 나신 거 같은데, 그런 식으로 저희한테 화풀이하시면 안 되죠."


돌아온 대답은 제 입을 틀어막아버렸습니다.


"화물은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세요."

"저희 건물에서는 화물 엘리베이터에도 일반 사람들 타고 다녀요."

"화물은 가만있으시라고요."


딱!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아침부터 일진도 안 좋았는데, 이런 일까지 당하다니. 싸움 나기 딱 좋은 날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후배도 옆에 있고 엘리베이터도 목적지에 도착해 후다닥 내렸습니다.


상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한동안 심장이 벌렁거렸습니다. 마음이 가라앉고 뇌가 정상적으로 가동하니 여러 생각이 스쳤습니다. 외근 다녀오는 길에 후배에게 물었습니다.


"아까 '화물이세요?' 아저씨 지금쯤이면 우리한테 미안해하고 있지 않을까?"

"글쎄요. 그러시지는 않을 거 같은데..."


가끔 종로에서 빰을 맞고 엄한 사람한테 화풀이할 때가 있죠. 저 역시 회사에서 안 좋았던 기분을 집까지 싸들고 가서 표출한 적 있고, 아내와 말싸움을 하고 죄 없는 아이들을 퉁명스럽게 대할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나중에는 항상 후회를 합니다. 분명 화물 아저씨도 후회하며 미안해하고 계실 겁니다.


'화물이세요?' 아저씨 덕분에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 당연한 말을 다시 한번 가슴에 깊이 새겼습니다. '팀장님처럼 감정기복 없는 상사가 되고 싶어요'라는 후배의 말보다 임팩트 있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회사에서 집에서 길에서 누군가의 태도에 화가 날 때 한 템포만 참으면 기분이 더 나빠지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빠른 무더위에 짜증 나는 일 많겠지만, 모두 한 템포 쉬어가며 참아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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