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중증외상센터>에서 배운 직장생활
요즘 직장인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듯합니다. MZ세대와 나머지 세대로 말이죠.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교체되었습니다. 선배들 세대에 당연했던 일들이 지금 세대에게는 큰일 날 일인 경우도 많아졌고요. 대부분의 직장인은 자연스레 시류에 편승해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저 역시 '이 세대 직장인의 모습이 기본값이 되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서서히 굳어만 가던 저의 관점을 살짝 비틀어준 드라마를 만났습니다. 바로 <중증외상센터>였습니다. 이 드라마가 인기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K-직장인의 저력이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많은 직장인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 세대 간 공감과 이해를 나누지 않았을까요. 또 낡은 직장인, 젊은 직장인 모두가 자신의 직장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 드라마에서는 나이, 성별, 직급에 상관없이 시대를 관통하는 K-직장인의 저력이 돋보입니다.
그녀는 어느 시대의 직장인인가?
세대 불문 모든 직장인의 마음을 흔든 K-직장인은 바로 천장미(하영) 간호사였습니다. 천 간호사는 5년 차 임에도 중증외상센터에서 시니어를 담당합니다. 일반 회사로 치면 대리급 정도라고 볼 수 있는 연차입니다.
그녀는 근무 강도가 심해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중증외상센터에서 5년 차 이상의 능력을 선보입니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부서 이동을 신청하고도 남을 상황일 텐데 말이죠. 또 그녀는 다급한 상황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자진 수혈을 합니다. 심지어 상사가 말리는 상황에서도. 환자 이송 과정에서 파워풀한 운전 실력을 뽐내고, 휴일에도 병원으로 달려오는 게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은 386세대나 X세대 직장인을 연상시켰습니다.
"힘들면 나가서 쉬어. 고생했잖아. 괜찮아."
"괜찮습니다. 제 환자예요."
드라마에서 환자를 구하기 위해 해외까지 나가 한바탕 난리를 치른 백강혁(주지훈) 의사와 천장미(하영) 간호사의 대화 장면입니다. 그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죠. 천 간호사는 쓰러지기 직전까지 헌신하며 자신의 환자를 지켰습니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를 재미있게 감상했다는 회사의 한 임원은 천장미 간호사의 주인의식, 열정, 책임감, 희생 등을 언급하며 탐나는 직원이라고 크게 칭송했습니다.
Z세대인 직장인 후배는 천장미 간호사를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돌하고 똑 부러지게 일도 잘하고, 책임감과 사명감도 높아 부럽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호구 잡힌 걸로도 보이고요. 굳이 휴일까지 그렇게… 이것만 빼면…"
상사의 말과 후배의 말에 은근한 공감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대 불문 모두가 인정하는 진정한 K-직장인의 모범사례를 감상한 기분이었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직장에서 천장미 간호사처럼 인정받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의 바람일 뿐 누구나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녀는 왜 현실과 다르게 직장에서 완벽하게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5년 차 때는 어땠더라?'를 떠올려 봤습니다. 후배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쏟아 낼 자격을 갖춘 5년 차를 보냈을까요?
'난 정말 열심히 잘하는데, 왜 팀장은 내 인사 평가 점수를 낮게 주지?'
'이렇게 회사를 위해 희생하면서 일하는데, 성과급을 안 주다니…'
이런 생각을 자주한 기억이 납니다. 즉, 회사에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스스로만 일을 꽤 잘한다고 착각했던 거죠. 세월이 흘러 관리자가 되니, 상사가 바라는 것과 제가 바라는 것이 달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요즘 애들은 자기가 엄청 잘난 줄 알아요."
한 후배가 자기보다 아홉 살 어린 후배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매사 근자감이 넘친다는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천장미 간호사 같은 근거 있는 자신감은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꺼립니다. 이런 불필요한 자신감으로 인해 스스로의 생활을 검게 물들이는 직장인이 의외로 많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검은 마음은 결국,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착각,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착각, 상사가 나만 차별한다는 착각 등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객관적 자기평가 부족, 다시 말해 '메타인지' 부족 때문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메타인지는 '자신의 인지과정에 대해 생각하여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며 자신의 학습 과정을 조절할 줄 아는 지능과 관련된 인식'입니다. 조직에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중증외상센터>의 천장미 간호사가 5년 차임에도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메타인지 능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증외상외과라는 긴박하고 극한 상황에 쉴 새 없이 부딪히면서 반복해서 배운 문제 해결 능력이 그녀를 실력 있는 5년 차 시니어로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요.
"팀장은 내 업무에 관심도 없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매번 아니래요. 저러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다니까요" 팀장에게 한바탕 깨지고 온 민 대리의 말입니다.
"민 대리는 미리미리 좀 하라고 그렇게 말해도 매번 임박해서 업무를 처리해. 그러니까 문제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어" 팀장의 한탄이었습니다.
상사는 부하 직원과 조금만 일해보면 능력치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능력이 출중한 직원은 금세 인정을 받겠지요. 그렇다고 부족한 직원을 당장 내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능력과 실력으로 맞설 수 없다면 일단은 배우려는 자세로 돌파하는 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상사나 선배의 피드백을 그냥 흘리지 말고 조언을 바탕으로 보완한 점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바로 메타인지 능력의 기본기가 됩니다. 메타인지 능력은 자신의 업무 수행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통해 점차 업무를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죠.
메타인지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평가와 반성이 필요합니다. 상사의 조언 등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되돌아보고, 잘한 점과 개선해야 할 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자신의 업무 내용과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방법입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학습 능력을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사나 선배를 수시로 활용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들의 냉정한 평가를 발판 삼아 도약의 기회로 삼는 것이죠.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강점은 무엇인지, 팀에서 혹은 회사에서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 얼마큼의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면 될지 등 무수히 많은 궁금증을 차근차근 해소하다 보면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강화하면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에서 의사 양재원(추영우)은 백강혁에게 "야, 항문!"으로 불리다가 '노예'를 거쳐 '선생님'으로 거듭납니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직장인은 상사들에게 자극받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으며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