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괴담, 팩트로 확인하고, 이해로 풀어내는 사회적 성숙이 필요
"아빠, 데리러 오면 안 돼요?"
저녁 10시경, 농구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3 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집 근처 아니야?" 하니, 아이는 "혼자 가는데, 옆 동네 중국인 많이 산다고 해서 무서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고2 딸아이도 길을 다닐 때, 옆으로 지나가는 봉고차를 늘 주시한다고 했습니다.
최근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조선족 인신매매 괴담'이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SNS 등에서 '중국인이 무비자로 들어와 사람을 납치한다', '장기매매 조직이 활개 친다'라는 식의 콘텐츠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딸과 아들의 친구들은 학교에서 "대통령이 중국을 너무 좋아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거래"라는 정치적 괴담까지 나눈다고 했습니다. 청소년들은 현실보다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퍼지는 소문을 믿고, 누군가가 만들어낸 공포를 일상생활에 흡수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저 역시 '김민지 괴담' 공포에 떨었던 때가 있습니다.
주된 내용은 "화폐를 새로 만들 당시 화폐 디자인을 했던 사람의 딸이 토막 살인을 당해 자신의 딸을 암시하는 것들을 화폐에 몰래 숨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한국은행 총재의 딸이라는 변형과 함께 무당이 몰래 숨기라고 지시했다는 버전도 있습니다.
친구들과 동전, 지폐에서 그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매일 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 어두운 골목길을 지날 때면 식은땀을 흘리며 집을 향해 전력질주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누나가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온 가족이 학교 앞까지 마중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괴담이 확산하자 결국 한국조폐공사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이 밖에도 홍콩 할매, 빨간 마스크, 자유로 귀신 괴담, 장기 적출 괴담도 오래전부터 단골 소재였지만, 대부분 "어디선가 들었다", "친구의 친구가 겪었다"라는 식으로 출처는 불분명합니다. 이처럼 괴담은 세대를 건너 반복되고 있습니다.
괴담은 대체로 '출처미상 제보자', '상식 이상의 충격적 사건', '특정 집단(사람)의 대상화'라는 세 가지 공식을 따릅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사실처럼 포장되고, 사람들의 불안과 상상력이 더해지며 '실체적 공포'로 변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특히, 요즘에는 SNS를 통해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으니, 청소년들에게는 이와 관련한 경각심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최근 괴담 확산의 불씨는 중국인 무비자 입국 제도에서 비롯됐습니다. 정부는 2025년 9월 29일부터 중국 단체 관광객(3인 이상)에 한해 최대 15일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관광·유통업계는 내수 경기 회복을 기대했지만, 온라인에서는 "중국인들이 무비자로 들어와 사람을 납치한다"라는 글부터 쏟아졌습니다.
최근 SNS에는 "가양대교에서 하체만 있는 시신 발견됐다"라는 사실과 다른 글이 돌고 있습니다. 또 "인천 아라뱃길에서 시신 15구 발견" 같은 과거의 사건이 현재 발생한 것처럼 공유되고 있습니다. 이런 괴담이 퍼지면서 무비자 입국으로 범죄 유입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말을 듣고 무비자 입국 내용을 확인해 보니, 무비자 제도는 무제한 입국 허용이 아니었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인 이상의 단체 관광객만 허용', '여행사는 입국 24시간 전까지 명단·체류지·여권정보 제출(하이코리아 전산망 등록)'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 내년 6월까지 한시적 시행한다는 계획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법무부 출입국기관은 국내 전담여행사가 제출한 단체관광객 명단을 사전에 확인해, 입국규제자, 과거 불법체류 전력자 등 고위험군 여부를 점검한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이 무비자를 이용해 마음대로 입국해 범죄를 저지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조선족(중국인) 범죄율은 어떨까요? 최근 중국인 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중국인 범죄에 대한 불안과 혐오 여론이 확산하고 있지만, 경찰청이 공개한 2023년 국적별 범죄 통계를 여러 언론이 분석한 보도를 보면, 국내 체류 중국인의 범죄율은 약 1.65%로 내국인의 2.36%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강력범죄(8대 주요 범죄)만 따로 보더라도 내국인의 강력 범죄 피의자 비율은 전체 인구 대비 약 0.047%, 중국인은 0.031%로 비교적 낮다고 합니다. 이런 통계만 놓고 보면 '조선족이나 중국인의 범죄율이 높다'는 인식은 실제보다 과장된 셈입니다. 또 중국인 피의자가 다른 외국인보다 많아 보이는 것은 국내 체류 외국인 중 중국 국적자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물론 외국인 체류자가 늘어나는 만큼 범죄도 함께 증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족이나 중국인의 인신매매, 장기 적출 범죄자'라는 낙인은, 사실보다 괴담과 일부 단편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과도한 감정이입일 수 있습니다.
괴담의 가장 위험한 점은 혐오를 일상화한다는 것입니다. 괴담 속 "조선족은 위험하다", "중국인은 무식하고, 잔인하다"라는 식의 왜곡된 말을 반복해서 접할수록 많은 이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SNS 알고리즘은 한 번 본 콘텐츠와 비슷한 내용을 더 자주 노출해 공포를 강화한다는 사실도 점검해야 합니다.
괴담은 결국 '불안한 사회의 성급한 언어'가 아닐까요. 누군가는 그 불안을 이용해 SNS 조회수를 얻고, 또 누군가는 혐오 표출을 시작합니다. 요즘, 이 시기에 필요한 건 근거 없는 두려움을 타파할 팩트 검증입니다. 당장 뉴스만 몇 개 검색해 봐도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비자 제도의 세부적인 내용, 중국인 범죄 사례나 통계, 외국인 관리 체계 등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공개 데이터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정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아이들과 함께 사실을 검증해 보는 어른들과의 대화의 장도 필요할 것입니다.
중학생 시절 '김민지 괴담'이 그랬듯, 지금의 '조선족 괴담'처럼 세월이 흐르면 또 다른 괴담이 다시 등장할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팩트로 확인하고, 이해로 풀어낼 수 있는 사회적 성숙이 아닐까요. 청소년이 괴담 속에서 떨지 않도록, 어른들이 먼저 냉정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