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죽어도 바로 눕지 않는다. 나무는 아프면 잎의 색깔이 변하며 시름시름 앓는다. 그러다가 잎을 모두 떨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선 채로 서서히 말라가며 죽는다. 처음에는 단단한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다가 나무껍질이 하나 둘 벗겨져 나간다. 드러난 속살은 마르고 부스러지면서 물렁해진다. 이렇게 서서 고사한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부러지고 쓰러지겠만, 그전까지는 서서 죽은 상태이다. 나무에 익숙하지 않은 도시인들에게는 때로 이 광경이 죽음의 현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 모두 나무는 겨울이면 으레 잎을 떨구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생명체가 곧게 서있는 것은 우리의 직관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종종 산에 오르지만 산에서 마주한 이런 나무들이 죽어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때아닌 봄에 붉게 물든 이파리들을 보며 이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을 지나치면서도 그토록 곧게 서있는 나무에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무는 시간에 걸쳐 죽는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쓰러지기 전까지 죽은 채로 서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배웠다.
올해 녹색연합에서 진행한 고산지대 산림의 시민 모니터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이런 나무의 죽음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매우 급속도로 퍼지고 있음을 목격하였다. 주로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침엽수종들이다. 침엽수는 일부 종을 제외하곤 대개 상록수이다. 다시 말해, 겨울에도 낙엽을 떨구지 않고 항상 푸르게 잎을 유지한다. 따라서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의 잎 색깔이 갈색으로 변했거나 잎이 모두 떨어지고 없다면, 그건 나무가 아프다는 뜻이다. 침엽수의 고사는 한번 진행되면 멈출 수가 없다. 6개월에서 2년 정도가 지나면 나무의 잎은 모두 떨어지고 하얀 뼈대만 남게 된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 생선의 살만 발라먹고 남은 뼈다귀 같다. 지금 지리산과 한라산의 고산지대 풍경이 그러하다.
산림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산 침엽수종 중 멸종위기에 있는 종은 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주목 등이 있는데, 이 중 구상나무는 상태가 심각하여 위기종으로 구분된다. 구상나무는 주로 지리산, 한라산 등에 분포하는데, 주로 12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자생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익숙하다. 서양에서는 20세기 초에 우리나라의 구상나무를 가져다 개량하여 크리스마스 트리로 흔히 활용해 오고 있다. 구상나무는 서양의 다른 침엽수들 보다 키가 작아 가정에 두기 적합하고 모양이 아름답다. 영화나 TV에서 흔히 보던 그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대개 구상나무인 것이다. 그 구상나무가 멸종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등 비슷한 소나무과의 침엽수들이 멸종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우리가 흔히 보는 소나무도 안심할 수는 없다.
잎이 뾰족한 침엽수들은 추위에 강하다. 따라서 오늘날 극지방이나 고산지대에 가까이 갈수록 더 번성해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항상 그렇게 높고 구석진 지역에서만 자라왔던 건 아니다. 지구가 훨씬 추웠던 빙하기에는 침엽수가 지구 곳곳에서 자랄 수 있었다. 이후, 수백만 년에 걸쳐 지구 기온이 점차 오르면서 이들이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고 이들의 빈자리를 활엽수가 대체해갔다. 그래서 현재는 고지대와 같이 추운 곳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러한 침엽수의 서식지 변화가 서서히 일어난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최근의 급격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은 침엽수에게, 그리고 그 침엽수들에 기반하고 있는 숲 생태계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너무도 빠른 속도로 고사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일부에선 살아있는 나무보다 죽은 나무가 더 많아지기도 한다. 이런 변화의 속도는 자연이 견딜 수 없는 속도이다. 나무 한 그루는 단지 한 그루가 아니라 그 나무에 의존하는 어린 나무와 작은 풀, 동물, 벌레, 미생물 모두인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빠른 속도로 고사해 간다면 생태계도 큰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오래된 나무를 잃는 건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도 큰 손실이다. 수십수백 년을 그 자리에서 자랐을 나무를 어떻게 빠르게 대체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 탄소를 흡수해 줄 나무들을 필요로 하지만 이러한 크기의 나무가 다시 자라나 숲을 채우길 기대하기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이것이 기후위기의 무서운 점이다. 탄소가 점점 늘어나 기온이 올라갈수록 점차 지구의 탄소 흡수 능력은 떨어진다. 그러면 더더욱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가을이 되니 사람들은 단풍을 보러 산으로 향한다. 그들 중 얼마나 그 하얀 송장들에 시선을 줄 것인가. 화려하게 단풍 진 나무들을 하얀 송장들이 얼마나 더 대체해야 비로소 사람들은 관심을 가질까. 그 송장들이 거기에 있는 이유를 깨달을 사람은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