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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지 Jan 18. 2024

01. 시간을 찾아주는 탐정

“어? 당신. 시간을 잃어버렸군요?”

평일의 평범한 점심시간. 대학 동기이자 입사 동기인 친구가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으며 슬쩍 물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지브리 영화 봤어?”

“아니. 뭐가 새로 나왔어?”

“응. 리뷰 보니까 영상미 장난 아니라고 하더라. 같이 보러 갈래? 너 지브리 좋아하잖아.”

“내가 그랬었나?”


나는 미적지근하게 답하며 이번에도 친구의 제안을 거절했다. 일만으로도 바빴다. 주말에는 시간이 날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러 간다면 일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으음 그럼 다음에 다른 거 보러 가자!”

친구는 내 거절이 익숙하다는 듯이 다음을 기약하며 작은 사탕을 몇 개 꺼내 내 손에 쥐어줬다.

“이걸로 당충전 하고, 오늘도 우리 힘내보자고 친구!”

난 그 자리에서 하나는 까먹고 남은 사탕은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다며 의욕을 불태우던 신입사원 시절은 빠르게 지나가고, 회사의 기대를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 지금은 일 잘하는 좀비가 되었다. 회사 일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곳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가족여행, 친구들과의 맛집투어, 취미생활, 소확행... 그런 것은 내 시간표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도 집-회사-집의 굴레를 착실하게 이어가던 중이었다.


“어? 당신. 시간을 잃어버렸군요?”


아무도 없는 길에 울려 퍼지는 뚜렷하고 명랑한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양갈래 머리를 한 귀여운 모습의 어린 친구가 나를 향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외모로 보아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그 아이는 탐정 코스프레라도 하는 듯 갈색 코트에 헌팅캡을 쓰고 있었다. 유난스러운 옷차림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대답했다.


“네? 저요?”

“흐으음..” 그 아이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니 금세 활짝 웃으면서 물었다.

“꿈을 꾸시나요?”

“아뇨. 푹 자는 편이라 꿈은 잘 안 꾸는데..”

“아니 그 꿈 말고요.”

“아..?”


나의 짧은 물음표에 아이는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발랄하게 말했다.

“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탐정이에요. 우리 곧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네요!”

그리곤 저 너머로 빠르게 사라졌다. 난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기 위해 잠시 멈춰있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내가 그 탐정을 다시 만난 곳은 꿈 속이었다.

평소에는 꿈을 꾸지 않는 탓에 처음엔 그게 꿈인지도 몰랐지만, 끝도 없이 이어진 남색빛에 이곳이 현실 세계가 아닌 꿈 속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꿈속은 온통 남색빛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외에 다른 빛을 내는 거라고는 하늘 위에 떠있는 작은 별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별마저도 남색빛에 묻히기 일보 직전이라 눈을 희미하게 뜨고 들여다봐야만 겨우 보였다. 아마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렀던 나만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마저 삼켜지면 꿈속에 갇히게 될 거예요.”

탐정은 주의를 주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여기는 색깔이 하나뿐이네요?”



꿈을 꾸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난 평소보다도 더 강도 높은 일정과 성과 압박에 시달렸고, 꿈을 꾸는 빈도와 시간도 매일매일 늘어나서 점점 더 강한 좀비로 진화하는 중이었다. 깨어있는 시간에는 일만 했고, 잠들어있는 시간에는 남색빛으로 가득한 어두컴컴한 공간에 갇힌 채 희미한 별빛에 기대어 다시 깨어날 때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내가 더 이상 꿈에서 깨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꿈속에 갇혔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일에 대한 걱정이 먼저 들었다. ‘그 프로젝트 마감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다음엔 ‘이렇게 죽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 두 가지 외에는 더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걸어왔다. 그 탐정이었다.


“저.. 꿈을 그만 꾸고 싶어요.”

탐정을 보고 내뱉은 내 첫마디에 탐정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네? 꿈을 그만 꾸고 싶다고요?”

“네. 너무 오래 자고 있어요. 프로젝트 마감도 해야 하고..”

“아, 그 꿈이요?”

난 탐정이 이야기 주제를 돌릴세라, 얼른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이전에 제가 꿈속에 갇히게 될 거라고 얘기했었잖아요. 그럼 꿈속에서 나가는 방법도 알고 있겠죠? 탐정이라면서요.”


탐정은 잠시 내가 안쓰럽다는 듯한 눈빛을 하더니 금방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사건 의뢰인가요?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나는 탐정을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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