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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지 Jan 19. 2024

03. 반딧불이

“다시 사랑하고 싶어요?”

자세히 보니 그건 별이 아니라 반딧불이 무리였다. 반짝이는 별 바로 아래에서 길이 끊기고, 그 아래로 새로운 길이 보였다. 걸어오던 길 아래 숨겨져 있어 멀리서는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보이게 된 것이다. 마치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발아래에 펼쳐진 것 같은 비현실적인 풍경에 잠깐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길가로 내려가니 작고 동그란 빛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처음 보는 광경에 묘한 고양감을 느꼈다.


“우와 반딧불이네요? 너무 아름다워요.”

탐정이 흥분해서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당신의 꿈속 세계에 이런 아름다운 장소가 있을 줄 몰랐어요. 어두컴컴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안에는 이렇게 작고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있다니!”

“이제 우린 어디로 가야 하죠?”

“음.. 모르겠어요. 일단은 잠시 앉아서 감상하는 건 어때요? 이렇게 아름다운 건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요.”


탐정과 나는 잠시 길에 쪼그려 앉았다. 잠시 반딧불이의 불빛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여기서 한심하게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옆에 앉은 탐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반딧불이의 불빛이 비쳐 탐정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나도 저런 눈을 한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아빠와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3D 애니메이션을 봤을 때였던가.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캐릭터의 행동이나 질감, 자연의 모습 등을 3D로 잘 구현한 탓에, 클라이맥스에서 웅장한 음악이 터졌을 땐 정말 내가 그 영화의 일부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압도당해버렸다.

그 영화를 보고 흥분한 나는 영화관에서 돌아오는 길 내내 아빠를 붙잡고 그 영화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 반복해서 열변을 토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아빠는 “정말 좋았구나? 눈이 엄청 반짝거리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아빠는 나를 데리고 종종 영화관에 들렀고 영상 쪽으로 진로를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지금 회사에 취직해서 첫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는 너무 기뻐서 영상 안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집요하게 바라보곤 했지…


“오와. 눈이 엄청 반짝거리고 있어요!”

탐정이 반딧불이를 쫓던 눈을 나에게 향하며 말했다.

“에? 아니에요. 아마 좀비처럼 죽은 눈일 거예요.”

“어? 방금 분명 반짝거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시 까만 눈이 됐어요.”

“반딧불이 때문인가 봐요.”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요?”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어요. 어릴 때 처음 봤던 영화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것 때문에 지금도 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해요.”

“그 일을 좋아해요?”

“좋아했었어요. 첫 프로젝트는 광고 영상을 만드는 거였는데, 잘 만들고 싶어서 광고할 상품을 매일 사용하고, 사용자 조사도 하고, 스토리도 연구하고.. 거의 사랑에 빠졌었죠.”

“그거 엄청 성공했죠? 사랑하는 만큼 보이고 알게 되는 법이잖아요. 당신만큼 그 상품에 대해서 많이 알고, 사랑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네. 첫 프로젝트부터 대박을 터뜨린 덕분에 기대를 잔뜩 받게 되어서 지금은 그렇게 못해요. 그냥 의뢰를 받아서 요구대로 영상을 만들죠.”

“다시 사랑하고 싶어요?”

탐정의 질문에 난 고개를 돌려 탐정과 눈을 마주쳤다.

“네..”

무심결에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을 거예요. 그게 어떤 건지도 기억이 안 나요.”

“과거로 돌아갈 필요 없어요. 다시 사랑하는 모습을 꿈꾸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집요한 눈빛으로 사랑하는 대상을 쫓아봐요.”

순간 탐정이 입고 있는 짙은 갈색의 옷과 모자가 어둠 속에 묻히며 순수한 어린아이의 얼굴 만이 환하게 보이는 듯했다.

탐정의 이야기를 들은 탓인지 반딧불이의 불빛이 이전보다 더 밝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보는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이 고요한 아름다움을 영상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다음 흔적을 쫓아가 볼까요?”

난 ‘어디로?’라고 묻는 표정으로 탐정을 올려다보았다. 탐정은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탐정의 손가락 끝에는 반딧불이 하나가 유난히 반짝거리는 빛을 내며 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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