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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지 Jan 25. 2024

05. 시간의 수호자

“아이는 반짝이는 시간의 수호자 같은 존재예요.”

탐정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시소 위에서 과장되게 점프를 했다. 탐정이 밟은 자리가 쿵하고 내려앉으며 반대쪽에 앉아 있던 나는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하얀 하늘 위에 서 있었고, 바로 등 뒤에서 탐정의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얏호!”

“어떻게 한 거예요?”

“점프?”

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순수한 표정을 짓는 탐정을 보고는 더 이상의 질문은 포기하고, ‘이건 꿈이다.’를 속으로 세 번 읊조렸다. 탐정은 그런 나를 보고 재밌다는 듯이 웃더니 말했다.

“반딧불이가 하늘 위로 올라가길래 흔적을 따라온 거예요. 봐요!”


탐정의 말처럼 반딧불이가 유유히 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탐정과 나는 반딧불이를 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비행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하늘 위에서 눈을 밟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따뜻했다.


눈길은 꽤 길게 이어졌다. 주변이 온통 하얘서 그런지 침묵이 더 무겁고 고요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대로 반딧불이를 따라가다 보면 정말 제가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요?”

“네! 무사히 시간을 삼킨 아이를 찾을 수 있게 된다면요.”

“아이는 왜 시간을 삼키는 거예요?”

“아이들은 원래 예쁘고 반짝이는 걸 좋아하잖아요.”

“정말 그게 다예요?”

내가 황당하다는 듯이 그리고 뭔가 알고 있으면 더 말하라는 듯이 추궁하자, 탐정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뗐다.


“대부분의 사람은 축복 속에 태어나 최소 몇 년은 반짝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요. 그 이후로는 사람에 따라 다른데 반짝이는 시간을 이어갈 수도 있고, 빛이 바랜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그러다가 시간이 빛을 완전히 잃게 되면 더 이상 시간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죽는 거죠.”

탐정의 말을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아니,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음.. 그러니까, 영혼 같은 건가요?”

“똑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반짝이는 시간이라는 게 뭐예요?”

“한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들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시간들이요. 사랑, 우정, 위로, 희망, 꿈, 역경과 극복 등등. 이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반짝이는 시간을 이어가요.”

“근데 그게 아이랑은 무슨 상관이에요?”

“아이는 반짝이는 시간의 수호자 같은 존재예요. 아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한 사람이 가능한 한 오래 반짝일 수 있기를, 그래서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마음속 깊이 바라요. 그래서 한 사람의 시간이 점점 반짝임을 잃어가면, 아이는 반짝이는 시간이 전부 사라져 버리기 전에 아직 남아있는 시간을 삼켜서 그 사람을 지키는 거예요. 더 이상 빛바랜 시간들이 의미 없이 흐르지 않도록 막아두고, 그 사람이 다시 반짝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거죠.”


아이에 대해 말하는 탐정의 표정이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덩달아 탐정의 설명을 듣고 있는 내 표정도 씁쓸해졌다. 아이에게 시간을 뺏겼으니, 아니 보호받고 있으니 내 시간도 반짝임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를 좀비라고 여길 정도였으니까 어느 정도 이해도 되었다.


따뜻한 눈의 온도 때문인지 포근한 눈의 촉감 때문인지, 탐정이 말한 아이의 깊은 사랑이 전해져 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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