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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지 Jan 31. 2024

07. 짙은 바다

탐정은 오지 않는다. 내가 가야 했다.

그대로 땅으로 떨어지던 나는 등에 찰싹 내려치는 충격을 받고 온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온통 남색빛으로 가득 찬 곳에 갇혔다.

온몸이 축축하고 아까보다는 훨씬 느린 속도로 내려앉고 있는 걸 보니 바다로 떨어진 것 같았다.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지 않은 게 다행인가 싶다가도, 땅으로 떨어졌으면 그 충격에 꿈에서 깨어났으려나 싶어서 살짝 아쉬웠다.


꿈 속이라 그런지 숨이 막히거나 죽을 정도로 춥지는 않았다. 서서히 내려앉던 몸이 바닥에 닿으며 멈추자 나는 맨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아 웅크려 앉았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탐정은 오지 않았다.


시간이 꽤 지나자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에 대한 걱정은 아니었다. ‘그 반딧불이 예뻤는데...’ 그다음엔 ‘친구한테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였다. 동시에 반짝이는 밤하늘 같았던 반딧불이 무리라든가, 따뜻한 눈이라든가, 탐정의 방긋 웃는 모습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번엔 멍하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탐정은 오지 않는다. 내가 가야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전히 짙은 남색빛으로 가득했다. 처음 이 세계에 와서 봤던 희미한 별빛조차 이곳엔 없었다.

막상 일어나서 발걸음을 옮기려고 보니 몸이 굳어졌다. 이 발걸음을 내딛으면 다음엔 뭐가 있을지 모른다. 운 좋게 탐정을 만날 수도 있지만 영원히 못 만날 수도 있다. 영원히 이 꿈에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갈 수도 있다.


적어도 이 걸음을 내디딘 후의 나와 이전의 나는 결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지쳐서 잠깐 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탐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것에는 방향이 없어요. 변화는 그냥 변화일 뿐이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어요.’


나에게 변화는 거듭할수록 점점 더 버거운 것이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를 점점 더 나답게 만들어줬지만, 내가 나다워진다는 것은 점점 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는 것과 같았다. 엄청난 시련이다. 그래서 나는 익숙한 것을 따르기로 결심했었다. 나는 반복의 굴레를 스스로에게 씌웠고, 내 삶은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럼에도 변화해야 할 때였다. 변화는 그냥 변화일 뿐이고,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나에게 달렸다. 적어도 지금 내가 받아들이려는 변화는 두려운 것이나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무거웠던 첫걸음을 내딛자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 보았던 희미한 별빛 같았다. 이번엔 바라보고만 있지 않고, 그 빛을 향해 가보기로 했다.

걸을수록 빛은 점점 또렷해졌고, 그 끝에는 반딧불이와 함께 잠깐이지만 그리웠던 얼굴이 보였다.

나는 멈추지 않고 탐정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탐정은 살짝 까치발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번엔 먼저 찾아와 줬네요. 장해요!”


탐정의 칭찬에 나도 모르게 한껏 흥분된 숨을 들이쉬었다. 입꼬리도 조금 올라갔던 것 같다. 가장 두려웠던 그 첫 한 발짝을 내딛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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