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예지 Mar 19. 2024

갭 먼스(Gap Months)에 몸을 맡겨

내 인생의 최고의 6개월을 보냈다.

버티고 버티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 날이었다.

번아웃이 내 몸과 마음을 점령한 지 꽤 됐지만 아직 더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며 1년 여를 더 버텨왔다.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버티는 힘에 대한 나의 긍정적인 믿음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 그리고 여기서 멈춰버리면 마치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여기서 멈추면 지는 것 같다. 그런데 누구한테 지는 거지?

이미 나는 지금 멈춰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쉬어가는 마음'에 관한 책들을 손에 쥐고 있었다.


모든 생각과 감각과 본능이 스탠바이 중이었다.

이제 필요한 건 나의 결정뿐이었다.


결정은 항상 뜻하지 않은 때에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히고 나서 천천히 마음 상태를 갭 먼스에 맞게 전환시키기 시작했다.

(난 기질적으로 '느린 아이'라 항상 남들보다 좀 더 빠르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ㅎ)


6개월은 빠른 듯 느린 듯 적당하게 지나갔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감히 내 인생 최고의 6개월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중에 다시 갭 먼스가 필요해지는 때가 왔을 때, 

그럼에도 망설이고 있을지 모르는 나에게 남겨주고 싶어서 갭 먼스 때 깨달은 것들을 글로 남겨보기로 했다.



사실 내 갭 먼스의 이름은 '육아휴직'이었다.

6개월 간 육아휴직을 내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휴직 기간 동안 리프레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이전과 동일하게 어린이집과 시터님께 아이를 맡기고,

평일 하루 8시간(원래 회사에 있던 시간)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쓰기로 했다.


운동 횟수를 늘리고, 첼로도 배우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체력과 정신력의 자원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지친 몸과 마음 때문에 하지 못한 것에도 시간을 많이 들였다.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평일 낮에 뮤지컬을 보러 가고, 아이와 함께 새로운 놀이를 개발했다.

국내, 해외 가리지 않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

새로운 생활이 낯설기도 했지만 긴 휴가를 받은 것 같이 마음이 가뿐하고 설레기도 했다.




갭 먼스 동안에는 내가 온전히 나의 시간을 채워야 했다.

그렇기에 매일매일이 100%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지루하고, 두렵고, 불안한 마음은 주기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덕분에 그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나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알고 나니 그 특성을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초반에는 갑자기 시간이 많아져서 파워 P인 내가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곧 나는 내가 그냥 파워 P가 아니라 '규칙을 잘 지키는' 파워 P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이 많았던 달을 제외하고는 매달 초에 목표를 세우고, OKR을 작성하고, 루틴을 만들었다.

'규칙을 잘 지키는' 파워 P는 루틴을 잘 따랐다.


물론 지키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계획은 다시 세우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책을 좋아하지만 지친 탓에 오랫동안 책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니 집중력이 분산되고 좀처럼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많은 시간을 책을 보며 보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감각이 돌아왔다.

역시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 배우는 첼로는 굉장히 낯설고 어려웠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이 느껴졌고, 어느 각도로 팔을 움직여야 할지 헤맸다.

하지만 괴로운 날에도 연습을 이어가면 그 다음번에는 더 나은 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인내와 버팀의 덕목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러 목표를 세웠지만 그중 어떤 것은 잘 이어져갔고, 어떤 것은 자꾸 엎어졌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직 그 일에 절박하지 않거나, 

아직 그것을 할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며 편하게 놓아줬다.

그렇게 나는 내가 '어쩌면 운명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와 단 둘이 오랜 시간 놀이를 하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처음에 난 아이와 어떤 놀이를 할지 생각하는 데 시간이 들었고, 금방 지루해졌다.

하지만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관찰하고, 아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평범한 장난감도 재미있는 놀잇거리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역시 내가 '관찰한 것들을 연결하고 거기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갭 먼스 중간에는 이후의 거처를 찾기 위해,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고 이력서도 작성하고 면접도 봤다.

그중 두세 번의 면접에서 창피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 창피함은 청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것, 나의 영어 실력, 내 일과 경험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 등 다양한 곳에서 기인했지만, 각각의 이유로 나에게 동력이 되어주었다.

나는 내가 '실패를 다음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힌트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찾아오는 날도 많았다.

'사회에서 잊히거나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런 두려움이 찾아올 때 나는 그 순간 두려움을 마주하고, 두려움의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극단적인 스토리도 만들어보고, 한껏 떨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졌다.

이런 경험을 갭 먼스 기간 동안 여러 번 했고, 나는 내가 '비관적 낙관주의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짧은 소설을 완성했다.

콘셉트만 있었던 이야기인데, 스스로에게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이 캐릭터는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등을 물으며 나름 오래 머리를 싸맸다.

완성하고 나니 생각보다 더 뿌듯했다. 회사에서는 아무리 내가 대부분을 기여한 프로덕트라고 해도 내 프로덕트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모든 사람이 함께 만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글은 온전히 내가 내 생각을 담아 완성할 수 있었다.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스스로를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던 나는 이번에 글을 쓰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으로 나를 재정의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내 스타일로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 글을 쓸 수 있게 되니 글 쓰는데 부담이 많이 줄었다.

짧은 생각도 글로 적고, 매일 일기도 쓰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글 쓰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영어에는 좀처럼 흥미를 붙이지 못했지만 일본어에는 엄청난 재미를 느꼈다.

그래서 갭 이어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일본어 공부를 했다. 

일본어는 영어와 달리 말 그대로 '취미'로 할 수 있었다. 평가에 대한 압박 없이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

일본어를 공부한 경험 덕분에 '진정한 취미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서서히 일하는 나로 전환하기 위해 나는 한 번에 몇 군데씩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는 사이클을 돌았다.

마지막 사이클은 2월 말에 시작했고, 여기서 원하는 곳을 찾지 못하면 더 쉬어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차에 운명의 회사를 만났다(앞서 말했듯이 나는 '어쩌면 운명을 믿는' 사람이다).

지금 회사의 초창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 회사 덕분에 나는 '결국 내 생긴 대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중요한 건 '왜 일하는가'와 '나이기 때문에 기여할 수 있는 곳인가'이다.


이전의 나를 정의하는 것, 그리고 자아를 실현하는 방법은 '일' 하나로 통했다.

갭 먼스 동안 나는 나를 정의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방법을 여러 갈래로 나눴다.

일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가족과의 시간, 나 혼자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 여행 등이 추가되었다.

이들은 이제 일과 비슷한 비중으로 나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내 인생을 다채롭게 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나 결과를 반듯하게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갭 먼스의 끝에서 이 글 하나를 써냈다.

나는 갭 먼스를 통해 '기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 글은 나의 첫 갭 먼스와 나 사이의 상호작용 기록이다.

갭 먼스 때문에 나는 나에 대해 더 알게 되었고, 내가 가진 것들을 잘 다뤄가면서 갭 먼스를 즐겼다.

나를 새롭게 정의하면서 나에 대한 애정이 쌓이고, 그것이 나의 심리적 자원이 되었다.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서 또 이런 경험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첼로에 입문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