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그냥 Feb 01. 2018

아찔한 첫 '서비스 기획 보고'

프레젠테이션 하려 하지 말고, MC가 되어 판을 짜라

당황해서 말문이 막히는 첫 기획 보고의 순간


 요즘 초급 기획자들은 말을 잘한다. 발표 못하는 사람이 더 손에 꼽힐 정도로 발표도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참 잘 만든다. 입사 과정에서도 몇 번이나 발표를 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자신감이 넘친다.

 하지만 실제 업무에 투입되고 작성한 기획서, 와이어프레임을 보고하는 시점이 되면 이상하게도 자신감은 한 번에 무너진다. 왜냐하면 보고라는 것이 항상 꿈꾸던 멋진 프레젠테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니어 기획자 :  지금까지 기획한 거 한번 가져와서 리뷰해볼까요.
초보 기획자 : 네! 네네. (부랴부랴 쓰던 문서를 보내고 시니어의 자리로 간다)
시니어 기획자 : (...)
초보 기획자 : (....)????????

시니어 기획자: (웃으며) 아 얼른 말해봐요 ㅎㅎㅎ


 

멀뚱히 뭔가 시작하길 바라는 눈빛이 날아온다

 

 실제 첫 기획 보고의 순간은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다. 입사 전 상상했던 멋진 프레젠테이션도 아니고, 회의실에서 시간을 잡아서 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시니어가 한마디 하고 부르면 그 책상 맡에서 첫 기획 보고는 시작된다.

 그리고 일순간 사이에는 단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이미 시니어는 정색한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묘하게 기다리는 듯한 표정으로 초급 기획자를 바라보고 있다가 어서 편안히 말해보라고 재촉한다. 

 처음은 이렇게 당황스럽다. 미리 할 말을 적어서 준비할 수도 없다, 그리고 미리 연습해볼 기회도 없다. 그렇다고 지금 작성한 문서가 프레젠테이션에 적합한 문서는 아니다. 당황하는 사이에 어느새 중얼중얼 횡설수설해 버리기도 쉽다. 


 상품 랭킹 페이지 개선을 담당했던 우리 팀의 주니어도 그랬다.


초보 기획자 : 아. 네네.  사실 아직 다 완료하지 못해서 완벽하진 않은데요.   

시니어 기획자 : 네, 알아요 괜찮아요. 지금까지 한 것까지만 설명해봐요.

초보 기획자 : 아 네네. 여기요. 이 화면이 랭킹 화면이고요. 이 화면이 다른 탭 눌렀을 때입니다. 
이건 이렇게 클릭하면 이렇게 펼쳐져요:)  여기는 다른 곳 보니까 이런 식으로 생겼어서 그런 식을 만들었고요, 색상은 눈에 잘 띄게 만드고요. 아직 여기까지밖에 생각 못했어요.
 (시니어를 멀뚱이 쳐다본다'-')

시니어 기획자 : 흠. (한참을 미간을 찌푸린 채 SB를 쳐다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떼며) 이 UI를 고객이 예상할 수 있을까? 이 메뉴 구성에서 이 두 개 메뉴는 레벨이 서로 다른 거 아니에요? 왜 나란히 배치한 거죠?

초보 기획자 : 아,,,, (꿀 먹은 벙어리)


 안타깝지만 다음의 상황은 초보 기획자에게 행복하진 않았다. 질문은 계속됐고,  쏟아지는 질문 앞에서 갈피도 잡지 못하고 중언부언하다가 이것저것 다시 정리해오면 다시 보자는 말만 듣고 끝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란한 마음에 온종일 심각한 얼굴로 늦게까지 컴퓨터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초보 기획자 친구가 사용했던 UI는 정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물론 최적의 UI는 아니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신입이기에 답을 못 찾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아무리 더 많은 UI패턴을 찾고 벤치마킹이란 이름으로 타사를 봐도 자신의 생각에는 맞다는 생각이 들고, 시니어의 여러 가지 질문이 뭔가 와 닿지 않고 이해하기조차 어렵다면 이건 UI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보고에 대한 오해와 기획 보고의 진짜 의미


 왜 초보 기획자는 질문에 정확히 대답하지 못하고 '아..' 만 남발하다가 돌아왔을까?


수많은 초보 기획자들은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이런 생각부터 하게 된다.

 '원하는 게 있으면 차라리 말을 하든가!!'라며 시니어를 치졸한 답정너로 만들어 버리거나,

 '내가 진짜 너무너무 못하나 보다ㅜㅜ' 라며 자기 자신에게 날 선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 보고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에는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다. 


 먼저 자신의 기획에 대해서 자신을 가져야 한다. 주니어와 시니어 사이에는 긴 연차만큼 명백한 실력차는 분명 있지만 이 기획건에 대해서만큼은 초보 기획자가 고민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기획이란 아무리 초보자라도 자신의 프로젝트는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보고를 듣는 시니어도 프로젝트 담당이 아니기에 피드백에 한계가 있다. 초보 기획자의 기획을 봐준다는 것은 정답을 정해놓고 초보 기획자의 기획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의 방식에 대해 조언을 하거나 아니면 빠진 부분을 더 고려해주려는 것이다.




 

보고의 피드백이 의미하는 2가지


보고를 진행하는 시점에서 시니어는 2가지 종류의 피드백을 전달한다.


첫째, 화면 기획에 대한 가정과 문제 해결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

둘째, 화면 기획에 필요한 전제조건을 이해했는지 알아보기 위한 질문


 문장이 비슷해 보여도 두 가지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첫 번째 경우는 기획자의 생각을 전달하는 문제고, 두 번째 경우는 기획자가 현재 구현된 시스템이나 개발 환경에 의해 존재하는 전제조건이나 제약사항, 예외사항 등 정책을 명확히 모를 때 발생한다. 전자가 기획의 문제라면 후자는 정책의 문제이고, 전자가 창의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공부의 문제다.

 후자의 경우는 아무리 잘 준비한다고 해도 시니어에게서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질문은 결국 질타나 평가가 아니라 가르침에 해당한다. 주니어라면 얼른 적어서 받아먹고 기획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후자의 경우는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는 조금만 노력한다면 충분히 그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는 부분이다. 


  시니어의 질문에 대답조차 못하고 얼었다고 했을 때도 결국 두 가지 경우다. 뭔가 더 고려해야 할 것을 몰랐던 것이거나, 자신의 기획이 정리된 흐름과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후자의 상태라면 처음부터 시니어의 생각은 아직 보고자의 생각의 궤도를 벗어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생각의 흐름을 잘 전달하는 기획이 UX 기획이다


 그렇다면 이 격차는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우선 기획의 과정을 떠올려보자. 여러 가지 쏟아져 나온 요구사항과 벤치마킹으로 조합한 여러 UI를 조합하는 것에 급급했는가? 무턱대고 SB에 UI 와이어프레임부터 그리기 전에 몇 가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기획 화면을 이용할 사용자의 주요 진입로와 퇴로

기획 화면에서의 고객의 예상 동선과 패턴

기획 화면 사용자의 감정

기획 화면의 목적과 기획자의 목표


 이 부분을 쉽게 말하면 UI를 기획하기 전에 사용자의 프로세스와 서비스 전체의 목적을 고려한 UX를 기획하라는 의미가 된다. 만약 이 부분에 대한 기획이 없다면 그건 UX 없이 UI만 기획을 한 것이 된다. 마치 의미 없는 짧은 글짓기가 된다.


 기획 과정에서 말은 안 했지만 사용자의 타깃과 이용패턴, KPI와 같은 것들을 충분히 떠올렸다면 UI 보고가 시작되기 전에 '사고의 흐름'을 정리하여 그 부분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획이란 복합적인 생각의 흐름의 결과다.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주요 사용자의 정의, 그리고 그 타깃의 TASK, 그리고 그것을 사용할 때의 감정과 흐름 등이 이 기획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대충 해왔다면 물론 반성부터 하자) 

 이렇게 기획을 도출해내는 과정에는 이러한 분석의 결과들이 자신만의 '가정'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 가정을 바탕으로 목적을 해결하는 문제 해결 방법으로써 UI를 선택한 것이다. 전혀 예상조차 못해본 질문을 듣게 되었다면, 자신의 생각의 흐름에 포함돼 기획의 가정이 시니어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 기획 건의 생각의 궤도에 시니어를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다. 


보고가 시작되면 MC가 되자


 계속 강조했듯이 자신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UI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전제조건에 대한 인사이트와 프로젝트 대상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맞춰야 한다. 논리학에서는 이런 것을 '논거'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양괄식의 보고 구조가 이루어진다. 프레젠테이션이 없더라도 말하면서 빠르게 자신의 생각의 틀을 짜야한다.


지난번에 맡기신 랭킹 페이지건에 대해서 기획서를 준비했어요 (결론)

랭킹 페이지는 특별한 구매 목적이 없는 사람들이 트렌드 유행을 확인하기 위해 진입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메인에서 진입을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논거 1)

그리고 기존의 랭킹 페이지의 클릭수를 확인해보면 목적이 없기 때문에 카테고리를 설정해가면서 적극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논거 2)

또한 단순히 트렌드를 보는 거라면 꼭 우리 쇼핑몰 내의 등수가 아니더라도 트렌드를 보여줄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논거 3)


 먼저 이렇게 MC처럼 판을 자연스럽게 깔며 조사 내용과 생각의 틀에 대한 갈무리부터 한다. 이제 보고자의 눈도 동일한 시점에서 문제 해결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UI는 어디까지나 문제 해결의 방법이다. 왜 그 방법일 선택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그 UI를 아름답게 그리는 것보다 중요하다. 사용하는 시점이 아닌 기획을 판단하는 시점에서는 UI 자체는 자신의 장점을 스스로 설명하지 못한다. 오로지 기획자가 설명해줘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MC의 역할은 이 후의 과정에서 수많은 협업자와 수도 없이 반복된다. 자신의 설명의 논거를 분명히 하는 것은 추후 디자인, 개발 과정에서의 핵심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준이 된다. 수십 번의 리뷰와 수십 번의 회의를 겪으면서도 꼭 쥐고 가야 할 '기획의 이유'를 처음 보고하는 그 순간부터 마음속에 꼭 쥐고 간다면 그 기획은 끝까지 완성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전 07화 기획자는 일하려면 디자인을 얼마나 알아야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