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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Jan 25. 2018

기획자는 일하려면 디자인을 얼마나 알아야 하나

기획자라면 사용성과 목표에 집중하자


아, 이건 좀 아닌데?


 가끔 디자인이 시안이 나왔을 때 상상했던 것과 굉장히 다른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냥 막 잡아놓은 기획안에 컬러까지 똑같아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고, 꼭 있어야 할 구성요소까지 다 바꿔놔서 당최 생각했던 서비스가 아니게 되어버릴 때도 있다.

 분명 디자인 작업이 진행되기 전에 서비스와 동작에 대해서 충분히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설명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 상상을 다 끄집어내서 동기화시킬 수는 없다 보니 그래픽 디자이너와의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초급에게 이 과정도 쉽지만은 않다.



디자인을 1도 모르는 기획자

 내가 말하는 UX기획자, 서비스 기획자들의 구분은 회사마다 지극히 다르다. 작은 회사의 경우 비주얼 디자이너가 기획까지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럴 경우 보통 비주얼 디자인 전공자가 많아서 이런 문제는 별로 없다. 개발위주의 개념이 강한 전통적  SI회사의 경우도 디자인 전공자가 아주 굵직한 와이어프레임을 통한 기능 기획과 규격 퍼블리싱까지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런 경우도 디자인에 대한 고민보다는 도리어 실 구현자인 개발과 각을 세우는 경우가 더 많다. 개발자는 디자이너에게 봉황을 그려왔다 욕하고 디자이너는 개발자에게 뭔든지 안된다고 해서 편한대로만 하려 한다고 화를 낸다.





 그러나 프로덕트의 품질과 정책을 유지하며 개선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인하우스 서비스의 경우, UX 기획 또는 기획, 프로덕트 매니저, PM 등 여하튼 이 사이의 간극을 메우며 산출물을 프로듀싱하려는 집단이 있다. 바로 이 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럴 경우 개발도 디자인도 전혀 모르는 상태로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랬다.


 처음 디자인 시안을 받아보았을 때 나는 살짝 당황했다. 요즘이야 Sketch와 같은 동적 디자인 툴이 있어서 인터렉션을 고려한 목업이자 퍼블리싱, 스타일시트까지 한방에 정리한다고 하는데 여전히 오래된 현장에서는 전통적인 2D 포토샵 그래픽으로 첫 시안이 나오기 마련이다.

 산출물로 받은 디자인 시안이 잘된 건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없던 나는 절절매며 현업 요청자의 말에 따라 정신없이 수정 요청하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변경 전과 후가 뭐가 달라졌는지 알 수 없는 디테일까지도 디자이너에게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하도 기준 없이 실무 디자이너만 괴롭히니까 때로는 디자인 디렉터에게 불려 가는 참사도 겪어야 했다.


디자인 디렉터 : 이거 왜 이렇게 계속 고치는 거예요?

초급 기획자 : 현업에서 좀 더 수정해달라고 해서요. 눈에 안 보인다고 글씨 크기하고 컬러 좀 수정해 달라고 해서요. 그리고 안내문구가 꼭 필요하다고 해서 넣었어요.

디자인 디렉터 : 이거 이렇게 다 수정하면 디자인 가이드에서 다 틀어져요. 이런 색깔은 컬러 가이드에 있지도 않고요.
게다가 이렇게 자꾸 문구만 추가하면 여기 공간 하나도 없고 주목도도 더 떨어져요. 요소가 다 빠글빠글하니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잖아요. 안내문구 좀 줄일 수 없어요?

초급 기획자 : ????


 처음에 나는 디자인 디렉터의 의견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현업과 디자인의 의견을 듣고 상대방에게 앵무새처럼 전하면서 중간점을 찾으려고만 노력했다.

 꾸역꾸역 시안을 완성해서 개발에 전달한 뒤에는 더 큰 문제가 찾아왔다.


퍼블리싱 개발자 : 이 케이스의 동작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기획서에 나온 동작은 이 디자인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데요~

초급 기획자 : 아, 그런가요~; 디자인 다시 수정해서 올게요.

퍼블리싱 개발자 : 디자인돼서 넘어온 영역의 가이드된 대로 하면 글씨가 밖으로 튀어나가요. 가격은 대략 몇만 원대 자릿수까지 기준으로 작업해야 하나요?

초급 기획자 : 아, 그런가요..;; 디자인에 자릿수 늘려달라고 이야기할게요! 그리고 가격 자릿수는 디자인하고 한번 상의해서 말씀드릴게요.


 개발이 시작되고 나서도 수정은 계속됐다. 디자인을 통해서 정의됐어야 하는 부분들이 세세히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러 작업자들을 쫓아다니며 수정한 후에야 어느 정도 확정안이 나왔다. 이제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기에 기획팀에도 확정 보고를 드려야 하는 시점이 됐다


프로덕트 매니저(컨펌자) : 이 UI는 왜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고객은 이 기능을 더 많이 사용하지만 사실상 회사에서는 저 기능을 쓰도록 유도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회사에 도움이 되는 기능은 완전히 묻힐 것 같은데요.

초급 기획자 : 아, 그건...;; 확인해보겠습니다. 

프로덕트 매니저(컨펌자) : 신규 기능을 눈에 띄게 하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이 영역에 그렇게 메리트 있는 가격의 상품이 들어올 수 있을까요? 도리어 가격이 낮지 않은 상품이 들어올 경우네느 해가 되지 않겠어요?

초급 기획자 : 아.. 그건;; 생각 못했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기획 내부에서 컨펌을  받으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이 UI는 왜 이렇게 되어있냐고 묻는데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분명 고객을 고려하기 위해서 여러 조사도 하고 와이어프레임도 해나갔는데, 컨펌을 받는 과정에서 이미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이 진행된 뒤였다. 뭔가 이 시안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나는 무척 힘들었는데 결국 개발을 다 해놓고도 UI를 또다시 수정을 하게 되었다. 욕은 욕대로 먹고 내가 일을 못하나는 생각에 힘들기까지 했다.


 과연 기획자로서 당당하려면 비주얼 디자인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했어야 했을까?



비주얼 디자인의 역할

 먼저, 비주얼 디자인 혹은 그래픽 디자인의 역할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비주얼 디자인이 시작되는 시점은 언제인가?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완벽한 애자일 방법론을 차용하여 기능 조건만 정리된 상태로 바로 디자인 드래프트를 하는 경우.

 둘째, 폭포수 방법론에 의해서 1차적으로 와이어프레임이 정리되어 디자인으로 넘어온 경우.

 

 둘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이미 기능에 대해서 필요 요소는 정리가 된 후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비주얼 디자인의 영역은 기능 정의는 아니다. 단, 기능을 이용하기 위한 인터렉션과 이를 판단하기 위한 프로토타이핑에 대해서도 비주얼 디자인의 시점부터 확인이 가능하다.


 실제 작업자들의 작업방식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혹시 기존에 운영하는 서비스에 새로운 개선을 하면서 흰 바닥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획만 시작한 기획자는 여기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다.

 결론적으로 디자이너는 맨바닥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사내에는 대부분 이미 기본 UI와 인터랙션 가이드가 있고 사용할 폰트와 컬러의 레벨 등이 있는 스타일 가이드가 있다. 정해진 기능의 UI를 기존에 만들어놓은 가이드를 통해 레벨을 정리하고 통일성을 갖도록 작업하는 것도 디자인의 역할이다. 만약 그런 가이드가 없다면 가이드를 정의하고 만들어내는 것도 비주얼 디자인의 몫이다.

 또한 그리드와 레이아웃은 마치 문장의 들여 쓰기처럼 화면 전체의 정돈됨과 균형감을 만들어 심미성을 가져온다. 이 또한 한눈에 기획자는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기 쉽다. 게다가 이에 대해 개발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역할이 된다.

 (각각의 항목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


http://me2.do/58PdxS7w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미 UI와 기능에 대한 정의가 충분한 상황에서 비주얼 디자이너는 창의력뿐만 아니라 논리적이고 개연성 있는 사고가 가능해야 하고 심지어 심미성과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을 위해 트렌디한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장에서 눈에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개나 소나' 한 마디씩 던지게 되는 부분도 역시 이 영역이 된다. 노력에 비해 단번에 모두가 동의하기에는 모두의 취향을 전부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다시 기획자의 관점에 돌아와서 그래픽 디자이너를 다시 보자. 그들이 예민한 아티스트로만 보이는가? 아니면 협업의 대상으로 보이는가?



렇다면 기획자는 디자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개발에 대해서 말할 때도 그랬지만 이상하게 국내 기획자들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 뭔가 기술로 위안을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포토샵 좀 만질 줄 안다면 더더욱 그냥 스스로 해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개발이 그랬듯이 포토샵 기술에 대한 책을  아무리 본다고 해도 당장 기획자가 디자이너가 될 수는 없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한두 달 배운 기술만으로는 이미지 파일의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앞서 말했던 디렉팅 업무를 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다면 워낙 감각이 좋으신 듯)


 개인적으로 기획자가 디자인 검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나 소나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서 컨펌자인 척하지 말자. 기획자가 하는 말이 가치 있는 의견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주류 사용자의 관점에서 의견을 제시한다

회사와 현업의 목표와 결합하여 기획 의도에 적합한지에 대해 의견을 전달한다

모든 이용 케이스에 호환 가능하고 개발이 가능한 형태에 대한 의견을 전달한다.

이 외에 모든 부분은 자신의 취향 때문이 아닌지 의심해보고 개인 취향이라고 생각되고 자신이 타깃 고객이 아니라면 디자인 전문가의 역량을 리스펙트 한다


 기획자는 개인의 의견이나 만족을 위해 일을 하고 있지 않다. UX라는 타이틀을 달았다면 사용자 중심의 사고와 배려는 기본 중의 기본이며 제품 전체에서 일관성 있게 비추어지는 동일한 서비스 관리는 꼭 필요한 덕목이다.

 만약 시종일관 맡은 부분을 개인 취향에 맡긴다면 서비스는 알록달록 난리가 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예를 본 적이 있는데 , 예전에 한 신입 기획자가 자기가 새로 만든 팝업이 중요하다며 다른 팝업과 무조건 다른 색을 넣어달라고 디자인과 대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장 그 업무를 맡은 본인에게는 그 팝업의 내용이 중요해서 빨간색 글씨로 강조하고 싶겠지만 아무리 중요한 내용도 쇼핑몰에서 상품 보고 주문하는 것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전체 프로덕트의 관점에서 디자인의 레벨은 지켜져야만 한다. 그래야 프로덕트 관점에서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도 기획자가 시안에서 체크해야 할 것들은 많다. 개발 가능성 모든 입력 케이스에 대한 예외처리 등등. 그리고 서비스 기획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한 고객의 특징과 생각해온 이용동 선상 문제 있는 것들은 지적이 아니라 '상의'해서 수정해 나가면 된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가 잘 모를 수 있는 비지니즈적 역할과 회사 현업의 목소리에 대해서 말해줘야 하는 것도 기획자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면? 꼭 시안 단계에서 무조건 해결하려고 하지 마라. 아직 프로토타이핑이나 개발 테스트 과정 등에서 '살아 움직이는' 형태로 테스트할 시간이 얼마든지 남아있다.

 이걸 잘하기 위해서 기획자는 디자인보다 서비스를 잘 알아야 한다. 하나의 UI라도 전체 서비스의 맥락에서 잘 흘러가는지 봐야 한다. 때문에 포토샵 기술이나 인터렉션 모음집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써보면서 그 UI가 전체 서비스 프로세스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적합한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설프게 아는척하면 '개나 소나'가 되어버리니까.


 개인적으로 항상 느낀 점이 프로젝트 과정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을 적이 아닌 동료로 만드는 것은 원피스의 '루피'만 해야 하는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이렇게 모호한 R&R이 문제라면 서로의 선을 확실히 지켜주는 것도 지혜이지 않을까. 한번 일하고 말게 아니라면 그 과정에서 상호 신뢰도 생겨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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