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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Jan 18. 2018

기획자는 일하려면 개발을 얼마나 알아야 할까

기획자는 용어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을 익힌다


개발자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개발을 배워야 될까요?


 기획자 신입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단연코 이 질문이다. 요즘 아마도 여기저기 코딩 교육을 하는 곳도 많고 UX만 공부하고 실무로 뛰어드는 사람도 많아지다 보니 개발의 장벽이 너무도 높아 보였을 것 같다. 그런 어려움 앞에서 개발을 배워야 하나 고민이 드는 것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분명 기획자 중에는 이런 고민이 해결된 사람도 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 즉, 코딩을 전공하고 기획자로 입사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이런 친구들은 일하는 게 무조건 유리할까? 기획자로서 성장해 나가는 속도가 엄청 빠를까? 수많은 동료들을 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큰 차이 없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기획에서 바라보는 개발이란 순수하게 개발적 관점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UX를 통섭 학문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너무 개발적으로만 접근해서도 안되고 너무 구현 고민 없이 상상의 산물로만 접근해도 안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당장 어디 가서 약간의 개발을 배워왔다고 해도 기획자에게 엄청난 기회가 되진 않는다. 그만큼 배워왔다고 해서 회사에서 코딩을 맡기지도 않을 뿐 아니라, 감히 십 수년 된 개발자의 코딩 산출물을 평가하는 입장이 될 수도 없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공부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배워야 하는 것이 학원에서의 코딩 교육이라는 방식은 아닐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기획자에게 개발에 대한 공부란 어떤 의미일까? 나는 기획자에게 코딩이란 정말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언어'이자 명확한 아이데이션을 위한 '이해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어로서의 개발 용어


 진짜 기획자라면 어디까지나 목표는 산출물을 구현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개발자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다가 기술적 단어가 나올 수도 있다. 처음으로 개발 용어를 몰라서 괴로워하는 때가 자신이 기획한 내용이 왜 개발이 불가능한지 설명을  듣게 될 때다. 뭘 알아들어야 대안이라도 제시할 텐데 영 멍해진다. 그러면 뭐든 것이 못 알아듣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개발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과정 자체가 공부가 된다는 사실은 간과되어버린다.

 이렇게 개발의 벽에 부딪힌 기획자들이 아무리 코딩 북을 찾아대도, 원하는 책은 아마 영영 찾지 못할 거다. 왜냐면 기획자 입맛에 딱 맞는 책은 시중에 없기 때문이다.


 영어공부로 예로 들어 지금 상황을 이해해보자.



What do you do?

기획자가 알고 싶은 뜻: 직업이 뭔가요?
코딩 책에 나오는 뜻 : 무엇을/하다/당신이/하다/?


 코딩 학습서는 코딩을 짤 수 있게 해주는 단어집이자 작문 연습이라면, 당장 일해야 하는 기획자가 배워야 하는 건 생활영어기 때문이다. 작문할 일도 없는 상태에서 동사와 명사가 뭔지부터 배우고 문법도 외우는 책은 당장 요긴하게 쓰긴 어렵다.

  언어의 습득은 문법부터 외우든 말부터 배우든 어떤 순서로든 습득이 가능하다.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이 10년 문법 공부한 토익 900인보다 생활영어를 잘할 수 있듯이, 개발언어도 생활용어와 어휘 중심이라면 얼마든지 개발을 배우지 않아도 배워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배워 나가는 것이 빠르게 실생활에서 활용도 가능하다.




생활 개발 용어를 습득하는 사례



생활 개발 용어를 익히는 방법은 대화와 질문에 있다.


기획자 : 최근 본 상품을 중심으로 PC와 모바일에서 같은 상품을 추천받게 해주세요.

개발자 : 그건 불가능해요. 최근 본상품은 DB에 저장하지 않고 쿠키에 쌓거든요.

기획자 : ?????


 여기서 DB가 뭔지 쿠키가 뭔지 모를 수도 있다. 거기서 당황하며 나만 몰라서 부끄럽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마인드가 학생이다. 회사마다 어휘도 사투리처럼 쓰임이 다를 수도 있다.

 질문을  할 때는 어휘가 아니라 활용을 물어봐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도 활용가치가 있는 정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자 : DB와 쿠키에 저장되는 게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개발자 : DB에 저장하는 건 어떤 화면이나 같은 기록을 볼 수 있는데, 쿠키는 디바이스별로 달라요.

기획자 : 그러면 최근 본상품은 현재 디바이스별로 다르게 된다는 거네요?

개발자 : 네 맞아요. 그래서 지금 구조로는 기획대로 할 수 없어요.


 질문이 DB가 뭔지 쿠키가 뭔지를 물어보면 대답을 들어도 이해 못했을 수 있다. 단지 원하는 기획 요건에 관계된 기능만을 이해한다면 대화는 쉽게 풀린다. 마치 what do you do 의 'do'자체가 아니라 두 번째 do가 for living을 함축하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문제 해결이다. 이제 용어는 정확히 몰라도 상황에 대해 이해했으니 문제 해결을 위한 질문을 할 차례다.


기획자 : 그럼 저희는 DB 거기다가 최근 본상품을 저장할 수는 없나요?

개발자 : 그러면 DB를 새로 만들고 상품 상세 들어갈 때마다 이거 다 저장해야 해요. 원래 예상보다 일정이 많이 소요될 건데요. 좀 더 검토해볼게요.

기획자 : 검토해보시고 말씀해주세요^^


 이제 기획자와 개발자는 대화를 통해 한 가지 해결책에 대한 '안'이 나왔다. 무조건 현재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해 달라고 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안된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기획자는 쿠키와 DB의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서 용어와 활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코딩 교재에 묻지 말고 내 옆의 개발자에게 묻자


 가끔 보면 기획을 완전한 순수 창작물로 여기고 개발 구현은 개발자가 알아서 할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발 구현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기획은 밑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디테일하고 더 좋은 기획이 나오려면 여러 번 경험을 통해 자사 사이트의 DB에 무슨 값들이 있고 또 어떤 로직으로 움직이는지를 알수록 도움이 된다. 기존 서비스를 이용도 해보고 SB도 보고, 정책서도 보면서 기존의 형태를 익히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개발자보다 코딩을 더 고민할 수도 없고, 개발을 고려하느라 기획 방향까지도 처음부터 제한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데 너무 초짜라서 알아낼 시간도 없고 방법조차 모른다면?

 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개발자에게 물어봐서 기획하자. 협의 마찰도 더 줄고 좋은 개발자라면 상상 이상의 더 좋은 아이디어도 나올 때도 많다.

 시중의 코딩 교과서나 회사 밖의 아카데미는 우리 회사 시스템에 대해서는 조금도 가르쳐 줄 수 없다. 학교에서 따로 배우는 학원의 추가 학습이 아니라, 학교와는 아예 관계없는 다른 학습일 뿐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업무를 위한 공부라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충분히 물어봐야 한다.



배울 수 있는 태도가 최고의 역량


 모두 다 학교를 오래 다니다 보니 선행학습에 대한 트라우마가 많은 것 같다. '공부 의존증'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준비하려고 하기보다는 학원이나 자격증부터 찾아서 준비하려고 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기획자들도 이런 모습에서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개발용어가 결국 언어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외국어를 공부할 때 7번 듣고 외우면 머릿속에 각인된다는 이론이 여기서도 똑같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쿠키'같은 기술적인 문제로도 3번 정도 개발 불가능에 부딪히고 4번 정도 쿠키 때문에 오류가 나서 해결하는 길을 겪다 보면 기획자도 자연히 쿠키를 활용한 기획에 대해 경험을 통한 마스터가 된다.

 그렇게 'batch'가 뭔지, 'api'가 뭔지, 'JS파일'이 뭔지, 'DB컬럼'이 뭔지, 'SSO가' 뭔지까지도 천천히 알아가게 된다. 용어가 아닌 활용을 이해해 나가면 충분히 대화 가능한 기획자가 될 수 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 용어를 듣고도 왜 사용됐는지 이유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는다면 그건 죄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기획은 누구보다도 프로젝트 대상에 대해 항상 관심이 있어야 하고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직무라는 것을 느낀다. 기술적인 것과 디자인적인 것은 부차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이다.

 진짜 기획자에 필요한 역량은 '고민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그걸 누군가는 문제의식이라고 하고 문제해결력이라고 하고 일 센스가 있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개발 기술보다 기획자 본연의 근본적 질문에 더 많은 고민의 시간을 갖는 것이 기획자로서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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