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시절, 국내 이커머스 비즈니스의 형성
IMF라는 시대적 슬픔에서 마지막 보루처럼 성장한 수많은 벤쳐 사업들에게 큰 시대적 위기가 닥쳤는데 바로 ‘닷컴 버블’이었다. 닷컴 버블이란 서구권에서 소위 ‘닷컴사업’이라고 불리는 서비스들에 대해서 투자가 쏟아지고 있었으나 정작 주식 상장 후에는 수익구조 등 이익을 증명하지 못해서 큰 시장 손실이 이어지던 시기다. 국내에서도 IMF 이후에 투자처가 없던 상황에서 많은 돈이 닷컴기업에 몰렸고, 많은 기업들이 망해나갔다. 주식투자 관련 영화 <작전>에서 도입부에 이러한 당시 열기와 망해가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미 주류로 성장한 온라인 서비스들의 당면 과제는 ‘수익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앞서 온라인 서비스 시장을 주름잡고 있던 커뮤니티 서비스들은 일부 광고 외에는 고정적인 수익구조가 없었고, 이커머스들의 성장으로 온라인 결제가 어느 정도 이용자들에게 전파되었다는 계산하에 다양한 수익구조에 대한 시도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강력한 온라인 커뮤니티 중 하나였던 프리챌은 전면 유료화를 선언한다. 역사상 가장 실패한 유료화 전환으로 손꼽힌다. 이 전에 일부 성공적인 사례들이 있었긴했다. 세이클럽과 한게임과 같은 사이트에서도 아바타 서비스와 같은 일부 서비스에 한해 유료서비스를 만들어서 실시했고 상당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9] 하지만 2002년 10월 선언한 프리챌의 전면유료화는 엄청난 사용자 이탈을 가져왔고 7개월만에 다시 무료서비스로 전환되었다.
이탈한 사용자들은 SK에서 인수한 싸이월드로 유입됐다. 프리챌의 유료화 선언이 나비효과처럼 ‘개인미니홈피’라고 불리는 초기 SNS의 엄청난 유행을 불러왔다. 그런데 프리챌과 다르게 싸이월드는 무료였지만 수익모델을 잘 갖추고 있었다. 기존의 닷컴 사업자들이 실시했던 유료화가 ‘건당 결제’에 지향하였다면 싸이월드는 ‘도토리’라는 사이버머니를 통해 아바타, 아이템, 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또한 기존에 카드결제와 무통장 입금, 계좌이체에 한정되어 있었으나 [10] 싸이월드는 SK텔레콤이라는 통신사를 기반으로 휴대폰소액결제와 ARS를 통한 도토리 충전서비스라는 결제수단의 다양화를 통해 사이버머니에 대한 부담감은 줄이고 카드는 없지만 휴대폰은 소지한 젊은층에게 온라인 결제에 대한 경험을 심어주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밀레니얼 세대가 사이버머니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것은 이 때의 학습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사이 온라인 채팅 서비스는 개인 메신저 서비스로 번졌고, 2003년에 들어서며 MSN메신저, 네이트온, 버디버디의 3강 체제가 굳어졌다. 포털에서는 2002년 출시한 집단지성 서비스인 ‘지식in’ 서비스를 필두로 ‘네이버’가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온라인 저작권 문제로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였던 이른바 ‘와레즈사이트’와 ‘소리바다’에 대한 폐지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콘텐츠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합법적인 유료 판매 사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음악스트리밍 서비스로 대표적인 ‘멜론’도 이 시기에 탄생한다.
SK텔레콤 기반의 서비스가 이 시기에 급상승했다. 싸이월드, 네이트온, 멜론 모두 연타석 홈런이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이 3개의 서비스가 통신사 서비스와 갖는 연계성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싸이월드의 도토리는 SK텔레콤을 기반으로 휴대폰 결제를 도입시켰고, 네이트온은 SMS 문자 서비스나 기프트콘(모바일 교환권)을 끌고 들어왔다. 멜론은 아예 통신사와 연계하여 기존 휴대폰 사용액의 청구 방식인 월정액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부가서비스처럼 이용하도록 했다. 해외에서 최근 몇 년간 정기구독 서비스가 활성화된 것에 비해서 월정액 무제한 스트리밍 방식을 일찍부터 차용한 사례다. 이러한 연결고리는 대기업의 전략기획 방식의 특징상 자사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을 중요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시스템적으로 개별 서비스들은 제휴관계만 가질 뿐 완전히 통합되어 움직이지는 않았다. 요즘과 같은 플랫폼 기업이 대세인 상황에서는 굉장히 아쉬운 지점이다.
이처럼 여러 서비스에 다양한 결제구조가 붙으면서 온라인에서 ‘결제’를 통해서 거래되는 시장은 한층 확장되었다. 콘텐츠 이커머스로 볼 수 있으나, 이 시점까지 고객들의 머리 속에서는 ‘이커머스’는 좀 더 오프라인 유통과 마찬가지로 현물 재화에만 국한되어 있었고,이커머스를 운영하는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 스템의 발전의 시점으로 보자면, 이 시기의 이커머스는 특별히 발전하거나 온라인 비즈니스를 선도하진 못했다. 해외와 비교해보면 이 시기의 대응책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예측이 가능하다.
첫째, 국내 쇼핑몰들은 수익개선을 위해 상품력과 내부 광고사업에 집중했다. 이미 온라인에서 판매 가능한 택배상품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온 소호 쇼핑몰들이 전문화되면서 저가경쟁이 치열해졌다. 초기에 대기업 쇼핑몰들은 전자제품과 소규모 상품을 중심으로 판매해왔기 때문에 의류와 잡화에 대한 비중을 높여야 했다. 저가상품으로는 출혈경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B2B 서비스를 만들어 캐시카우를 만들고, 상품구색을 고급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구사했다.
롯데닷컴(구,롯데인터넷백화점), GS, CJ 등 대형 종합몰은 해외 의류와 잡화 브랜드로 상품 구색을 넓혔다. 반면 오픈마켓들은 배너광고 등 내부 광고사업에 투자했다.
해외의 사이트들이 동일한 문제상황에서 B2C를 강화하기 위해 웹2.0을 강화하고 개인의 참여와 공유를 강화하여 생태계를 구축한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해외에서 쇼핑몰 시장을 세분화해서 보지 않고 상호 경쟁할 때, 이미 국내에서는 종합쇼핑몰과 오픈마켓의 시장을 완전히 구분하여 판매가능한 상품군이 다르다는 생각을 갖고 업종을 구분했다. 때문에 두 쇼핑몰에서는 각각의 상품 소싱력을 기반으로 전략을 내세웠고, 각사의 경쟁사에도 세부구분을 적용하여 비교했다. 이에 대한 반증으로 랭키닷컴이나 코리안클릭 등에서도 업종 세분화가 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2001년에서 2003년 사이 해외에서의 변화에 동참할 수 없었다. 국내외 쇼핑주요 사건 연표를 분석해보면 해외에서 새로운 서비스나 나오고 2년 정도 뒤에 국내 시장에서 Me-Too 전략을 가진 사이트가 오픈되는 패턴이 보인다. 예를 들어 1994년에 아마존과 이베이가 오픈 후 2년 뒤에 국내에도 유사한 종합쇼핑몰과 경매사이트가 등장했고 2000년 Mercata라는 공동구매 사이트가 등장 이후 국내에도 다수의 공동구매 서비스가 등장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2001~2003년에 해외의 대형 쇼핑몰은 눈에 보이는 변화보다는 내부적인 구조변화에 집중하고 있었던 때였다. 생태계를 형성하고 개인의 참여를 강화하기 위해 단기적 수익보다는 장기적인 전략으로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눈에 띄는 캐시카우 서비스는 없었다. 물론 국내에서도 이 흐름을 파악했을 것이지만, 국내의 특수한 비지니스 상황에서 이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웠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수익구조가 크게 개선된 서비스가 보이지 않고 단순히 자연증가분만 보이는 상황에서 온라인 사업에 대한 추가 투자는 기업내 설득력이 부족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오프라인 유통 출신의 기업을 운영하는 리더들의 성향에 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의 닷컴버블 시기의 스타트업 벤처 기반의 사이트가 주요 사이트를 차지하고 있었던 반면, 국내에서는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자가 온라인으로 전이되어 온 경우가 많았다. 특히 투자가 가능한 대기업에게는 메인 판매 채널이 아닌 추가적인 유통채널로만 인식되었고, 당연히 지속적인 매출신장을 중요시했다.
이는 고전적인 오프라인 유통사업에서는 제조업과 다르게 인프라 투자비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IT와 유통의 중간적인 이커머스에 기존 오프라인 유통에 익숙한 결정권자들은 오프라인 유통과 동일한 잣대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상황적 특성이 웹 2.0으로의 변화를 지연시키고 국내의 폐쇄적인 구조를 유지하는 것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 외에 옥션과 G마켓, 인터파크의 경우 온라인 기반의 사이트였으나 수익구조의 문제로 인수의 위기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인프라 투자는 불가능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난히 이 시기의 답보상태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유에는 해외의 방향성과 너무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미래를 내다보며 근간이 되는 서비스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2005년에 아마존에서는 국내보다 훨씬 닷컴버블의 위협이 큰 상태였지만 Amazon Prime이라는 연간회원제를 통해 프리미엄 서비스를 구축하고 초창기 개인화 상품추천 서비스를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3P 입점셀러의 비율을 28%가량으로 확 늘려서 상품수를 늘렸고, 아마존 프라임이라는 멤버십 선입금 제도를 통해 무료 배송에 대한 예산을 산정하고 고객을 Lock-in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시작했다는 것은 장기전을 대비한 것이라고 보인다. 닷컴버블 시기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었던 수익구조의 문제를 B2C용 상품을 자유로운 3P 셀러 입점을 통해서 이른바 ‘롱테일 전략’으로 풀어내기 시작했고, 아마존 프라임 등 이용자들을 끌어들여 사용자 리뷰가 마치 집단지성처럼 사용되도록 만들어나갔다.
나는 이러한 방향성에는 여전히 종량제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인터넷 환경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페이지로딩이 곧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고객들에게는 최소화된 비용으로 많은 컨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주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이 때 강조된 것이 “Seamless 한 UX”라고 명명되었고 기술적으로는 Ajax를 통해서 페이지 전체를 리로드하지 않고도 컨텐츠를 볼 수 있도록 했을 뿐 아니라, 다른 검색포탈을 통하지 않고 아마존내의 리뷰를 통해서 상품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이미 인터넷 전용망을 통해서 얼마든지 바이트를 낭비해도 되는 국내의 이용자들에게는 그렇게 매력적인 장치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품 정보는 네이버의 지식인에서 얻고, 쇼핑 페이지는 여러 곳에 접속해서 가장 혜택이 큰 곳을 선택하기 시작했던 것에는 이러한 환경적 요인도 작용했다.
[9] 매일경제, <닷컴, 캐릭터꾸미기‘돈되네’> , 2001.07.15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9&aid=0000133997
[10] 동아일보, [인터넷] 온라인 쇼핑몰 결제 70%가 카드결제, 2000.12.2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0&aid=0000040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