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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나 Oct 17. 2016

나쁜 길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기


이 길이 싫어


내 발가락 사이를 징그럽게 파고드는

이 불쾌한 모래의 감촉을

난 정말이지 증오해요


소름 돋도록 완벽한 당신은 나에게

싸구려 신발 한 짝도 신겨주질 않네요


내 발에서 검은 피가

서늘하게 인사해요

이 길 위에서


 너무나 아파요





왜 하필 나는 이 길인 건지.

내가 걸어야만 하는 이 길을

끊임없이  증오했다.


이 길의 모습은

검고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내가 발을 딛는 순간 나에게 상처를 주는

그런 나쁜 길이었다.






반면 내 옆에는

착한 길이 있었다.


그 길의 모습은

하얗고 보송하고 잘 다듬어진

친절하게도 튼튼한 구두까지 준비되어 있는

그런 착한 길이었다.







이 상반되는 두 길 사이에는

가시로 무장된 철조망이 있었다.


그래서

나쁜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은

착한 길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나는 늘 착한 길을 걷길 희망했기에

가시로 무장된 철조망을 넘어보려 애를 썼지만

그때마다 맨발의 나는 피를 흘렸고.


철조망 너머의 사람들은

빛나는 에나멜 수제구두를 신은 채

철조망 너머의 나를 흘겨보았다.


나는 궁금했다.

왜 하필 나는 이런 나쁜 길 위에 있는지.

왜 나는 착한 길을 걸을 수 없는지.







착한 길을 걷는 사람과

나쁜 길을 걷는 사람들은

속도에서도 큰 차이가 났다.


같은 지점에서 출발했는데도

착한 길을 걷는 너는 늘

나에게 뒷모습만 보여주었고.


나는 그런 너의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얼마나 많은 우울함으로

나 자신을 깎아내렸는지.


그러다 결국 나는 포기한 것이다.

네가 있는 착한 길로 넘어가는 것을.

그냥 이 나쁜 길에 익숙해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같은 도착점을 향해 걷는

너와 나였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은

길의 차이였다.


너는 이미 도도하게

나를 앞서 간지 오래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묵묵히 걸어서

네가 도착해있을 그 도착점에

2등으로 도착하는 것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래서 난 이  길을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네가 편히 길을 걷는 동안.

나는 눈물 흘리며 이 길을 걸었다.


신발도 없는 내 발바닥에 박힌

수많은 유리조각과

수많은 벌레들의 잔해들.


내 발에서 흘러나오던 새빨간 피는

이제 검은색이 되기 시작했고.

내 발톱은 다 빠져버렸다.


그때마다 옆에 있는 바위에 올라앉아

내 발 밑 상처들의 피가 마르길 기다리며

잠시 쉬어갔다.


어차피 내 목표는

네가 있을 그곳에 두 번째로 도달하는 것이니까.

좀 늦어도 상관없었으니까.


피가 마르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언제부턴가 이 나쁜 길이

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 발에 상처가 나는 간격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만큼 중도에 멈춰야 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가 무뎌진 건지.

길이 좋아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나는 점점

나쁜 길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도착점이 보였다.


그런데 덩그러니 서있는

너의 뒷모습이 보인다.


나는 의아해하며 끝까지

나쁜 길을 걸어 드디어

너의 옆에 나란히 설 수 있었다.


나는 벅찼다.

비록 늦었지만 이렇게

너의 옆에 나란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비로소 고개를 돌려

너의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 너는 왜

울고 있는 거니.







너는 말없이 손가락을 들어

앞을 가리켰고 그 앞에는

또 다른 길이 있었다.


그 길은 다이아몬드로 치장된

빛나는 길이었다.


나는 이 아름다운 길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 다이아몬드 길은  

육각형의 다듬어진 모서리들 때문에

날카로운 뾰족함을 드러냈고.


지금까지 너에게 방패가 되어주었던

그 에나멜 수제화는 이미 닳은 지 오래되어

한 발짝만 내딛으면 밑창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너는 두려움에 떨며 더 이상

출발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그 울퉁불퉁한 길이

너에게 줄 아픔이 감히 상상도 안되었기에.


그저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던 것이다.


그 빛나는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못한 채.








반면 내 발에는 굳은살이라는

방패막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어떤 아픔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고 단단해져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걸어온 길이 나쁜 길이 아

착한 길이었다고


내가 여태껏 걸어왔던 길은

앞으로 내가 진정으로 빛나는 길을

걷을 수 있도록 훈련시켜준

착한 길이었다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내 앞에 찬란히 빛나고 있는

이 다이아몬드 길에 첫 발을 내딛는다.







이 울퉁불퉁한 다이아몬드 길.

내 발에서는 그 어떤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세 가지.


첫째,

이 빛나는 아름다운 길 위를

내가 걷고 있다는 것.


둘째,

이 빛나는 아름다운 길 뒤에서

이젠 네가 내 뒷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


셋째,

이 빛나는 아름다운 길 끝에

어떤 또 다른 길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나는 울지 않고 걸어나갈 것이라는 것.



내 발에는 단단하고 강한 '굳은살'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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