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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호 Feb 13. 2024

풀꽃 같은 내 제자

#좋은샘의 수업성찰일기 2

공원 산책길

  1학기가 끝나갈 때쯤 아내와 우리 딸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집 앞에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유난히 더운 오후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갔다. 가는 내내 괜히 왔나 하는 후회도 되었다. 그런데 공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코스모스가 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코스모스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분홍빛 얼굴을 하고는 무엇이 부끄러운지 수줍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걸음을 멈추고 셋이서 코스모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아름다움을 사진에 다 담을 순 없었다. 코스모스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풀꽃도 눈에 들어왔다. 장미꽃처럼 이름을 정확히 모르는 꽃이지만 여기저기 길가에 이쁘게 피어있었다.


  땀을 식히기 위해 공원 의자에 앉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만 있다. 땀이 식으면서 조금씩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혀 내는 정겨운 소리. 풀꽃이 풍기는 잔잔한 향기. 자연이 주는 따뜻함이 온몸 가득 전해졌다. 행복했다. 어느 하나 하찮게 느껴지는 존재가 없었다. 나무 도 꽃도, 무명의 풀도 어우러져 각자의 향기를 내고 있었다. 그 존재들이 귀하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셋은 자연이 주는 그 향기가 너무 좋았다.


선물 받은 시집: 풀꽃(풀에 피는 꽃)

  얼마 전 공동체로부터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집을 선물 받았다. 내 돈 주고 잘 사지 않는 시집. 시집을 읽으면서 셋이서 갔던 공원 산책길이 떠올랐다. 좋은샘의 수업 성찰 일기 19 풀꽃 같은 내 제자 박승호 그때 만났던 하늘, 풀꽃, 나무들이 생각났다. 이 시집엔 유난히 꽃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시집을 펼치면 ‘풀꽃’이라는 제목을 가진 세 편의 시가 가장 먼저 나온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시들이다. 세 편의 시중에서 두 번째 시가 마음에 와닿았다.


풀꽃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나태주(2014), 《풀꽃》 p.15.
나태주_풀꽃 시선집

  이 시가 마음에 와닿은 이유는 뭘까? 그냥 좋은 글귀여서만은 아니다. 가족과 함께 공원 산책길에 만났던 풀꽃이 생각났다. 그 꽃이 풍기는 존재의 향기가 떠올랐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그 향기가. 이름과 색깔과 모양을 알면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교사인 나에게 이웃이고 친구고 연인은 바로 제자들이 아닐까? 3월에 만나 이름을 부르게 되면서 이웃이라는 관계가 시작된다. 4~5월이 되어 아이들의 색깔(성 격이나 특성)을 알게 되면서 조금 더 가까운 친구가 된다. 그리고 6~7월이 되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독특한 향기를 알게 되면서 연인이 된다. 연인의 관계 가 될 때쯤이면 여름 방학이 찾아온다. 시인은 이런 관계의 발전을 비밀이라고 말한다. 무슨 의미일까? 어쩌면 스승과 제자로 만나서 서로 알아가면서 누리게 되는 관계의 아름다움이 그 비밀은 아닐까?


7월 20일: 여름 방학

여름 방학이 찾아왔다. 아이들만큼이나 간절히 기다려온 방학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교사도 아이들도 힘든 1학기를 보낸 탓이다. 학교에 임시 선별 진료소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2번의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코안 깊숙이 들어오는 면봉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어른들의 잘못인 것만 같아서 미안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집안에 갇혀서 컴퓨터를 통 해 세상과 만나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작년에는 대부분의 학생이 학교에 나오고 싶어 했었는데, 비정상적인 지금의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학교에 나오는 걸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선생님 졸려요.”
 “어제 몇 시에 잤니?”
“1시쯤이요.” “늦은 시간까지 뭐 했니?”
“음… 게임하고 유튜브도 보고 그랬어요.”


  풀꽃 같은 우리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어놀며 향기 내지 못하는 지금이 상황이 싫다. 게임과 유튜브와 관계 맺기가 점점 더 익숙해져 가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유난히 더운 30일간의 여름 방학을 아이들은 어떻게 보낼까? 궁금하다. 풀꽃이 자 연에 있어야 아름다운데, 코로나19 때문에 집안에서만 있게 되지 않기를.


풀꽃 같은 내 제자

  풀꽃 같은 25명의 아이들과 함께 1학기를 보냈다. 공원 산책길에서 만났던 풀 꽃처럼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제자들이었다.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 가 번진다.


급식실에 갈 때마다 가장 앞에서 재잘거리며 웃음을 주는 아이
수업만 마치면 비타민 달라며 애교 적전으로 기어이 하나를 받아 가는 아이
늘 손에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느라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
복도에서 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가 “선생님~!”하며 달려오는 아이
늘 9시가 되어도 학교에 나타나지 않아서 전화하게 만드는 아이
모든 질문에 “모르겠어요”라며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는 아이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삐졌다고 말하는 아이
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가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 가는 아이
어디선가 달려와서 “선생님 힘드시죠”라며 위로를 해 주는 아이
< 제자들의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각자의 모양(독특한 향기)을 가지 고 있다. 한 학기 동안 그 모양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몇몇 아이들 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도 몇몇 아이들과는 서로 밀당 중인 아이다.


  1학기 말에 했던 내 수업을 돌아보면 연인으로 관계가 발전된 아이들만 보면서 수업을 했다. 부끄럽게도 밀당 중인 아이는 의식적으로 피했다. 나태주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모양까지 완전히 알고 나면 정말 연인이 될 수 있을까? 피하지 않고 사랑으로 온전히 품을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제 2학기를 출발해야 할 시간이다. 여전히 코로나19로 학교는 혼란할 것이 다. 포스트 코로나를 넘어 위드 코로나를 준비해야 할 때이다. 풀꽃 같은 내 제자들이 온·오프라인 세상을 오가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100% 자신은 없지만, 연인이 되어 주고 싶 다. 그들의 모양을 조금 더 알아가며 공원 산책길에서 만났던 풀꽃들이 존재로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도록 수업을 준비해야겠다.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와 기꺼이 연인이 되어 주셨던 것처럼 여러분은 수업 속에서 제자들의 연인이 될 준비가 되었나요?



성찰 질문
1. 선생님은 시 〈풀꽃 2〉가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2. 선생님은 제자들과 어느 관계(이웃, 친구, 연인)까지 발전했다고 느끼시나요?
※ 메일로 선생님의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dankey00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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