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높은 동네 이야기
<2017-06-19>
서울 대학로에 산 것도 만으로만 10년은 되어가는 듯하다.
대학 입학과 함께 이사와 살게 된 동네였지만
시간이 흘러가며 이제는 진정한 고향처럼 느껴진다.
골목골목마다 기억이 없는 곳이 없다.
그런 나에게도 낙산공원 지나 위치한 이화동은
자주 방문하게 되는 곳은 아니었다.
일단 높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낙산공원을 향해 올라갈 때는
낙산공원 정상만 찍고 다시 내려오곤 했다.
그런데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낙산공원을 지나 이화동으로 진입했다.
서울, 그중에서도 강북권, 더 좁게는 종로가 유니크한 점은
산이 보인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풍수지리에서도 좋은 입지를 배산임수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빌딩이 아닌 산을 도심에서 볼 수 있다는 점
그것이 서울이 가진 하나의 미덕이다.
이화동은 간단히 말해서 산 위에 있는 마을이다.
메인이 되는 도로변에는 제법 아기자기하고 젊은 풍의 샵이 있고,
골목을 거슬러 높은 계단을 올라가면 마을 주민이 사는 곳이 있다.
어찌 보면 '달동네'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뉘앙스를 제거하면 나오는
그런 곳이 아닐까 한다.
달이 보이는 동네, 달에 가장 가까운 동네
길을 따라가다가 왼편에 보이는 좁은 계단으로 진입했다.
언제부턴가 집 / 직장을 반복하며 버스로 왔다 갔다를 반복.
계단이 있는 동네는 오랜만이기 때문인지 뭔가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밤의 동네가 평소보다 조금 쇠락하고 조용하게 느껴져서인지
브라질의 빈민가를 탐험하는 기분을 만끽했다.
한참을 올라가니 서울성곽이 보인다.
낙산공원, 그리고 성균관대 옥상에서 더 올라가면 닿을 수 있는 와룡공원에서도
서울성곽은 테두리처럼 쳐져 있다.
서울성곽 위에 올라가지 말라는 표지가 있고, 나 또한 올라가 본 적은 없지만,
가끔 올라가서 멍하니 밤하늘을 보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그 사람들이 하늘을 보면서 할 생각들을 생각하면,
단속하는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한 번쯤 용서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성곽은 과도하게 보호되지도 않고 너무 낯설지도 않은 과거여서 맘에 든다.
서울성곽을 따라 계속 걸었다.
낙산공원과 와룡공원에 있는 서울성곽과 다르게,
이화동의 서울성곽은 주택과 붙어있다.
집 앞에 나오면 몇 미터 앞에 서울성곽과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곳.
밤 10시만 되어도 불빛도 별로 없이 조용한 곳. 그곳이 이화동이다.
성곽과 주택 사이에 놓인 길을 가다가,
길 한복판에 멀뚱멀뚱 서있는 몸빼바지 차림의 아주머니를 만났다.
뭐지... 길 한복판에서 멍하지 뭘 하시지 하고 자세히 보니
어둠 속에서 양치를 하고 계셨다.
집이 산 위에 있고 문 앞에 서울시가 내려다보인다.
그런 환경이라면 나도 양치를 하다가 밖으로 나가 문득 밤바람을 맞고 싶어 질 것 같다.
아주머니는 지나가는 나를 신경도 쓰지 않고 양치를 마무리했다.
시간이 지나 내리막이 나오고, 길은 동대문으로 향했다.
동대문도 서울의 유명한 랜드마크임에도 불구하고
도로 한복판에 덩그러니 있는 모습에 멋을 느낀 적이 드물었는데,
내리막에서 보이는 동대문 근처의 야경은 제법 근사하게 느껴졌다.
이런 각도에서 동대문을 보기는 쉽지 않다.
6월 말은 특별하다. 너무 덥지도 않고,
조금 시간이 지나도 내가 좋아하는 계절인 한여름이 온다.
막상 여름이 오면 여름이 언제 끝날지 두려워진다.
일요일보다는 토요일, 토요일보다는 금요일이 좋은 이치랄까.
한편으로 나는 왜 오지도 않는 것들에 대해
두려움에 휩싸여 사는지...
왜 더 가벼이 살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해본다.
사람은 발전하는 것일까?
몇 년 전과 비교해서 한치도 나아지지 못한 나를 보면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가장 가까운 사람... 나 자신으로 통감한다.
한편으로는 기대가 크기에 좌절이 큰 것일지도 모르고,
이런 고민들도 쓸데없을 정도로 우리는 휩쓸리며 사는지 모르지만,
가끔은 어젯밤 같은 산책
내가 걸을 때 내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그런 산책도 할 수 있으니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인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