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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ST Feb 10. 2021

퇴근, 침대에서 죽음을 생각하다

회사에서 돌아와 한참을 누워 있었다.


알차게는 절대 보냈다고 할 수 없는 몇 시간을 지나 또다시 맞이하는 새벽...


같은 날 자서, 같은 날 새벽에 일어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반복하고 돌아오는 나날들


숨 막히는 느낌에 잠들지 못하고,


아침이 되면 또한 쌓여있는 일과를 걱정하며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 회사에 늦으면 안 되니까.


오히려 회사에 도착하면 조금 안도하게 되는 나에게,


이 하고 싶지 않은 일... 지긋지긋한 직장이 주는 안도감은


얼마나 나의 초라함을 반영하는 것일까


일이 없으면 안도조차 하지 못하는... 그렇게나 싫어하고 지겨워하는 것들이 나의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희망이 없는 나날들





돌아가시기 전 할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교장이셨던 할아버지는 이미 내가 중학교쯔음 되었을 때 정년퇴임을 하셨다.


퇴임을 하셔도 워낙이 정력적인 할아버지는


동년배 친구들을 만나고, 어르신께서 무슨 일이 그리 바쁘고 많으신지...


알아서 집 밖을 돌아다니셨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재가 어울리던 할아버지 치고는


제법 화려한 소셜라이프였던 것 같다.




그마저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2층 주택에 홀로 지내시며 돌아가실 때까지의 약 5년간


어느 순간 자주 할아버지를 찾아뵙던 나 역시


멀다고는 할 수 없는 할아버지 댁을 찾는 빈도도 줄었고,


가끔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하면 예전과는 다른 미묘한 어색함으로 할아버지와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그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할아버지 xx 예요 - 아 xx 니? 

- 네 할아버지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죠? 

- ㅇㅇ 난 잘 지낸다 밖에서 많이 사 먹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라 

- 네 - 그래 전화해줘서 고맙다 - 



약간의 정적 후 끊어지는 짧은 전화.




아예 어린아이였던 나로서는 이런저런 할 말도 많았겠지만, 


다 커버린 나에게는 온갖 필터로 정제된 뻔한 할아버지와 손자 간의 대화만이 남았다.


그런 와중에도 할아버지는 뭔가 약속이 있다며 늘 낮에는 집에 안 계실 때가 많았다.


친구분들이 한 명 한 명 돌아가시고 서서히 혼자가 되어가는 도중에도


혼자서도 할아버지는 뭔가 바빠 보였다.


내심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안빈낙도하고 외로이 반복되는 나날들을,


할아버지는 고령의 나이라 하여 더 강하게 견뎌내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문득 최근에는 할아버지 역시 외로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점점 할아버지와 하는 전화가 뭔가 어색해지고


전화상으로 내게 전화해줘서 고맙다고는 말하면서


또 문득 빨리 끊어버리는 그 어색한 관계에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어떤 할아버지의 고독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가 만든 것이 아닌 상당수는 스스로 만든... 어떻게 보면 자유롭지만


그만큼 온전히 스스로의 고독을 껴안아야 하는 혼자살이


그것이 돌아가시기 전 몇 년간의 할아버지의 생활이었다.





퇴근 후 쿠팡에서 산 매트에 몸을 뉘어서


머릿속으로 나는 연못 위에 배영을 하는 자세로 떠서


서서히 물 안으로 가라앉는 나를 상상했다.


한편으로는 영화 애비에이터에 나오는


하워드 슐츠가 호텔방에서 나오지 않고 알몸으로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사실 그런 장면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정말 고독해본 적이 있는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가라앉는 느낌...




모두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 힘들어하고 외롭다고 어필하지만



정작 나만한 외로움과, 자학과, 초조함과,


섞이지 못한 괴로움과, 섞이지 못하여 스스로 만든 자의식과,




뭔가 정리되지 않은 나의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뒤섞여


물감을 대충 짠 팔레트에서 붓으로 색을 섞으면 더럽고 거칠고 어두운 빛깔이 나듯이,




어찌 됐던 나의 이러한 막연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상 최악의 존재로서의 나를 자각하는 이 감정들로 인해


또한 사람들과 나의 거리를 느낄 때,




나는 정말로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한편으로는 극히 살고 싶다는 감각이다.


배고픔이 식사를 부르듯, 죽음에 대한 생각은 더 나은 생을 갈구하게 만든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지쳤다는 것이다




더 나은 내가 되는데 지쳤고 경쟁에 지쳤다


부모가 원하는 아들이 되는데 지쳤고 회사의 업무를 성실하게 하는데도 지쳤다


나는 더 이상 나에 대하여 어떠한 오너십도 가지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사라지고 싶다


SF 영화의 결말처럼, 나의 정신을 데이터화하여 사이버스페이스로 옮겨


그곳에서 나의 평화를 찾고 싶다


그것이 이 엉터리같고 부조리한 나의 인생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 일 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약해질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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