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네 친구들과 맥주 한 캔씩 들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이 땅의 어엿한 아재답게 옛날 추억담, 그중에서도 어릴 적 처음 영화라는 매체를 접하던 때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별 것 아니지만, 뭔가 얘기하면서 나도 신났고 (아재답게도), 더 많은 사람들과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서,
글로도 한번 남겨본다.
1. 클리프 행어 (1993)
내가 맨 처음 극장에 가서 봤던 영화이다.
고등학생 관람가였는데 요새도 그런지 모르지만,
당시는 보호자와 함께 들어가면 국민학생(초등학생이 아니다!)들도 고등학생 관람가 영화를 볼 수 있었음.
우리 부모님은 극장 가면 늘 조시는 분들인데,
고모네 가족들은 뭔가 문화생활을 좋아하는 타입이어서 고모, 고모부, 그리고 사촌동생
그렇게 4명이서 봤던 기억이 난다.
처음 봤던 영화가 굉장히 멋지고 지루할 틈이 없는 액션 영화라서,
나는 자연스럽게 영화와 극장이라는 공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2. 옛날 극장의 시스템
나는 수원 출신인데, 당시 수원에서 역 쪽으로 가는 방향 - 남문으로 가는 중간에 극장이 하나 있었다.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이후 웨딩홀로 바뀌었음)
어릴 적에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스타게이트 등등을 보러 그 극장에 자주 갔었다.
지금 cgv 같은 멀티플렉스는 티켓과 좌석을 건물 입구가 아닌 상영관 입장 전에 확인하는데,
당시는 멀티플렉스가 아닌 단관으로 1개 영화만 상영했어서 그런지
건물 외부에 티켓 오피스가 있었고, 극장 건물에 입장할 때 검표를 했다.
어린 마음에 꼭 놀이동산 입장하는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보니 일단 건물에 입장하고 나서는 관객들을 컨트롤하지 않아서,
영화 끝난 후에 그대로 앉아있으면 영화를 다시 볼 수도 있었다.
나는 극장에 일찍 도착하는 편이라 극장에 입장할 때는
클라이막스 - 끝부분을 상영하는 타이밍에 들어가곤 했고,
그때부터 앉아 도중부터 관람을 시작해 엔딩을 보고,
영화가 다시 시작하면 자리를 뜨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보곤 했다.
(이 습관은 아직 남아서 다운받아 보는 영화도 궁금하면 결말부터 먼저 본다!)
3. 남남북녀 (1996)
아마 남문 중앙극장이었던 것 같은데, 1996년 마이크로 코스모스
(곤충의 생태를 찍은 다큐 같은 영화임. 기억나는 분들이 있을 수도...)를 보러 갔을 때,
영화 시작 전에 '남남북녀'라는 제목의 공익영화? 같은 게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 왜 옛날 가요 앨범 들어보면 마지막 트랙에 건전가요라고 해서
'시장에 가면' 이딴 공익적인 노래들이 반 강제적으로 삽입되곤 했는데,
나름 문민정부 시절인 1996년에도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에 국가주의적인,
공익광고성 영상을 틀어줬다는 것이다.
나보다 더 옛날 세대는 영화 시작 전 국민의례를 했다고 들은 것 같기도?
암튼 그 '남남북녀'라는 영상물이 왠지 기억에 남는 것이,
남북이 통일된 가상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짧은 영화였는데
그 설정이 어린 마음에 상상력을 자극해서 나름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아니면 마이크로 코스모스가 너무 느리고 지루했기 때문일지도...
4. 쉬리와 타이타닉으로 시작된 멀티플렉스 시대
수원 영통 쪽에 단오 극장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타이타닉과 쉬리가 대히트를 쳤다.
기억으로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타이타닉이 97년, 쉬리가 99년작이다.
아무튼... 당시만 해도 관객 입장 체계가 정립되어 있지 않아서
극장 내부 복도에 고깃집 의자 같은 것을 채워 넣어서
원래 입장 가능 좌석수보다 100명 가까이는 더 입장을 시켰던 것 같다.
(기억이 과장되었을 수는 있지만, 복도를 활용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조금 지나서 영통 중심상가에 키넥스가 인기를 끌 던 즈음에는 좌석번호라는 것이 슬슬 생겼던 듯하다.
정말 지금의 cgv, 메가박스 같은 극장을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옛날 극장의 로망은 경험해보지 않은 자는 잘 모르는 부분이다. (아재냄시)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시간여행으로 90년대에 가서 극장 가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