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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니 Sep 19. 2019

나는 이제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언젠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그냥 버려라

입에서 쾌쾌한 냄새가 감돌았다.

양치를 해도, 무엇을 먹어도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입안 가득 감돌고 있는 냄새의 주범은 바로 '썩은 고구마'였다.

고구마가 정말로 썩었는지 안 썩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유통기한이 약간 남아있는 가공식품이었다.

점심을 간단히 때우려고 고구마 1개와 계란 1개를 먹었는데,

그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분명 "더럽게 맛이 없다'라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은 게 화근이었다. 색도 거무튀튀하게 변했고, 달짝지근한 고구마 맛이 아닌

참으로 이상한 맛이었다. 고구마의 텁텁함은 남아있어서, 배를 채우려고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말았다.




그때 먹었던 썩은 고구마 맛을 지워내고 싶은데,

마치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지린내처럼

무엇을 먹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 냄새를 없애려고 달달한 마카롱까지 사 와서 먹었는데 여전히 입 속에 달라붙어있다.




나는 이제 맛이 없는 음식은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음식이든 물건이든 못 버리는 습관은 어머니에게 배운 유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쓸만한 물건은 절대 버리지 않았다.

여기서 '쓸만한'의 기준이란,

사람마다 판단의 기준이 다른데 60년대에 태어난 어머니와 90년대에 태어난 나의 기준이란

30년의 세월만큼 그 간격이 컸다.




어느새, 버리지 못하는 그 습관이 나에게도 물들었는데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은 참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테면, 어머니에게 있어서 쓸만한 물건이란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양말에 구멍이 나면 바느질을 해서 꿰매면 되고,

유통기한이 지나면 냉동실에 넣으면 된다. 

어머니에게 냉동실은 무엇이든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안전 창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 집 냉동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정 봉지로 가득 차 있는데,

그 봉지가 언제 적부터 그 자리에 놓여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건 어머니도 모를 것이다. 그 봉지들은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여 가끔은 문을 열 때,

눈덩이 떨어지듯 한 개씩 낙하하는데 운이 나쁘면 그 돌덩이 같은 것에 발을 찧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것 좀 제발 버려"라고 소리치지만

"그걸 왜 버려, 다 쓸모 있는 건데."라는 어머니의 말에

결국 그 검은 봉지는 몇 년이 지나도 계속 그 자리를 지킨다.




나는 어머니와는 다르게 꽤나 물건을 잘 버리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버리려고 하면 고민이 된다. 정말 필요 없는 물건인 걸까 라는 생각은 꼬리를 물어

결국 서랍 어느 한 구석에 처박히거나, 옷장 어딘가에 꾸깃꾸깃 박혀있다.

나는 아직도 고등학교 때 푼 문제집과 교과서를 가지고 있다.

도대체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때 공부했던 필기와 손때 묻은 교과서를 버리는 순간 고등학교 추억이 날아가버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아직도, 아직도. 몇 번을 고민했지만 쉽게 내버리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이 방을 떠나 다른 집으로 이사 갈 때쯤, 이것들을 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물론, 옷도 마찬가지다.

스무 살 대학생 때 입었던 옷들은 대개 강남 지하상가와 같은 곳에서 싼 값으로 산 것들이 대부분이라

해가 지나 색이 바래고, 디자인은 구식이 되어버렸다.

그때의 옷을 지금 입기엔 너무나도 어색해서 도저히 입을 수 없지만

아직도 옷장 어느 한 구석에 박혀 있다. 

저 옷들을 처분해야 된다는 생각을 옛날부터 해왔지만, 

실천에 못 옮기는 이유는 나도 역시 '언젠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생각으로, 1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이제는 10년이 다돼간다.





오늘 먹었던 썩은 고구마의 냄새는 불현듯 이 모든 것들을 다시 상기시켰다.

내가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에 대해, 아직도 붙잡아두고 싶은 과거의 기억까지도.

이제 그 모든 것들을 과감히 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는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들은 과감히 내버릴 것이며

이제는 안 입는 옷들, 서랍 속에 박힌 필요 없는 물건들은 다 정리해버릴 생각이다.






지금 당장 쓰지 않은 물건들을 올해도 안 쓰고 내년에도 안 쓴다면

그건 영원히 쓰지 않을 물건임에 틀림 었다. 

언젠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그냥 버리는 게 맞다.

사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언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구입했던 물건들이 참 많다.

단순히 세일한다는 이유로, 1+1이면 좀 더 싸게 사서 이득인 것처럼

여겨지는 생각 때문에 이것저것 사모았다.

그런 것들은 방치되다가 결국 기억 속에서 잊히기 마련이다.






Photo by Paweł Czerwiński on Unsplash

Photo by Paweł Czerwińsk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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