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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니 Sep 04. 2020

9년 된 친구를 손절한 이유

친구 사이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

선을 넘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친구 사이에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

그중에 중요한 건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 친구든, 대학 친구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따로 시간을 내어

약속을 잡지 않으면 서로 안부를 묻고 뭐 하고 살며 지내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둘러보다

문득 오랫동안 안 만난 것 같은 친구가 있으면 연락을 한다.

사실 나도 예전에는 연락을 먼저 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내가 연락을 받는 만큼 누군가에게 연락을 주어야 그 관계가 유지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한동안 만나지 않았던 친구라도

어느 한 때의 시간을 같이 공유한 친구라면 오랜만에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때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주 전 만난 이 친구도, 대학시절의 한 순간을 공유하던 친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 친구가 시험을 준비하는 몇 년간은 잠시 연락을 안 한 적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연락이 닿아 최근까지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 친구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평소에는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서

마침 휴가 낸 평일 중 하루 얼굴을 보기로 했다.

그러다 8월 15일을 기점으로 코로나가 점점 심해졌고

이런 시국에 만나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되었다.

마침 회사도 재택근무로 바뀌어서 이미 내버린 휴가를 취소할지 고민 할 찰나,

이전에 했던 친구와의 약속이 떠올라 카톡을 보냈다.



나 :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고 있네."

친구 : "어쩌지. 만나더라도 밖에는 못 다닐 듯?"

나 : "그럴 거 같은데, 번화가에서 만나는 것도 좀 그렇고. 다음에 봐야 하나..."

친구 : "그게 마음 놓이면 그렇게 해. 근데 너무 아쉽다. 여행도 생각나고 너 생각 많이 하고 있었는데

아니면 청정지역에서 보면 좋은데, 장난 아니다 코로나..."



사실 약속을 다른 날로 미루자면 미룰 수 있었겠지만,

이런 불안한 시국에 만나느니 차라리 다른 날을 택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 친구랑 올해 초부터 만나기로 했다가,

이 친구 사정으로 약속을 3번 정도 취소해서 못 만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못 보면 꽤 오랜 기간 못 보겠다 싶어서 그냥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 : "청정지역이 어딜까, 우리 어디서 보는 게 좋을까 ㅠㅠ"

친구 : "내가 너 집 근처로 데리러 갈게, 서울 외곽도 좋고 드라이브 코스를 알아볼게"



근데 아무래도 차 타고 어디 나가면 오히려 더 사람 많은데로 놀러 다니게 될 것 같아

그냥 친구 집 근처에서 보기로 하였다.



약속 당일이 되었다


친구가 약속 장소 주변의 음식점을 10군데나 찾아서 링크를 보냈다.

다 종류가 달라서 뭘 먹고 싶은 건지 몰랐는데 처음 찾아서 보낸 아시아 음식점이 눈에 띄어

거기서 보자고 했다.


나 : "우리 네가 찾은 아시아 음식점 가자!"

친구 : "그래, 거기서 만나자."


1분 후,

친구 : "우리 브런치 먹을래?"

나 : "그래, 어떤 종류의 음식이 끌려?"

친구 : "브런치 괜찮아. 이 브런치 음식점 가자."

나 : "그래. 그럼 거기 가자."



1분 후,

친구 : (프랑스 음식점 링크를 보내고) 여기 런치도 있대, 여기로 가자!

세 번째 음식점을 바꾸는 순간, 갑자기 뭘 먹고 싶은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세 번째 음식점의 메뉴는 전에 먹었기도 했고, 아침에 고기가 안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다른 메뉴를 먹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 : "여기는 다음에 가면 안 될까? 내가 최근에 프랑스 음식을 먹어서..."

친구 : "프랑스 음식 많잖아."

나 : "나 사실 아침을 안 먹고 나와서 고기가 안 들어갈 것 같아. 브런치 아니면 밥류 어때?"

친구 : "샐러드도 있어. 여기 음식 가벼워 보여."

나 : "여기 말고 네가 링크 보내준대서 다시 골라보자."

친구 : "링크 이것도 보냈는데... 사실 오늘 비도 내리고 날씨도 별로인 것 같아. 아니면 다른 날 같이 갈래?"

코로나 괜찮아지면...


순간 화가 났다.

아니, 메뉴 바꿨다고 지금 사람 가는 길에 약속을 취소하는 건가...

그것도 약속시간 20분 전에.


나 : "응? 무슨 얘기야. 나 이미 나왔는데. 지금 OO역이야."

친구 : "오늘 비 와서 힘들 것 같아. 미안해 다음에 만나자."

나 : "나 이미 나왔는데... 여기서 취소하는 거니?"


날 더운 날 한 시간 걸리는 약속 장소에 지하철 타고 가고 있는 와중에

약속을 취소하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 날은 비도 오지 않았고, 오히려 날은 화창했다.

사실 메뉴 때문에 취소하는거면서 날씨 핑계를 되는것도 꽤씸했다.

순간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고, 중간에 승강장에서 내렸다.


나 :"OO야, 이건 진짜 아닌 것 같다. 너는 집에서 걸어서 나오는 거잖아. 이미 나온 상태도 아니고."

친구 : "미안."

나 : "내가 아침에 밥을 못 먹어서 프랑스 요리 못 먹고 메뉴 다른 걸로 얘기한 건데."

친구 : "그럼 볼일 먼저 보고 저녁에 만나자."

나 : "네가 고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잖아. 위에 링크 보내준 곳 중에."

친구 : "오늘 뭔가 잘 안 맞는 것 같아. 다음에 좋게 만나자. 잘 지내고 좋은 모습으로 내가 연락할게."

나 : "아냐 점심에 안 만나는 거면 우리 그냥 앞으로 그만 만나자. 나는 이렇게 가는 도중에 취소당하는 게 너무 어이가 없어."


그러고 승강장에 내린 그 30분간, 문자를 하면서 전화도 계속했다.

그런데 내가 문자를 보내는 걸 보고도 읽씹을 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마지막 문자를 남겼다

나 : "OO야, 나 3번 넘게 전화했고 오늘로써 번호 지울게.

솔직히 가고 있는 입장에서 이렇게 취소당하는 거 너무 아닌 것 같다.

전에도 네가 일방적으로 약속 취소했고. 나중에 누가 너랑한 약속 취소하면 이 기분 그대로 알 거야."



이 문자를 보내고 2일 후, 인스타에서 좋아요를 누른 걸 보고 인스타마저 차단했다.

그리고 바로 다시 카톡이 왔다.

친구 : "OO야, 많이 화났니? 그렇다고 인스타 친구를 끊다니... 너무하다"


순간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도 없이 이렇게 얘기하는 게 더 화가 나서

전화 오는 것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간 하루 걸러 연락이 와서, 차단을 할까 고민하다가

할 말은 정리해야겠다 싶어서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카톡을 보냈다.



꽤 긴 문자가 오고 갔는데, 사실 지금도 그 친구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왜 그랬냐는 물음에,


1. 코로나가 심해져서 내가 만날 수 있을지 다시 물어보는 게 본인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줄 알았다.

> 그래서 나는 그 주간의 모든 약속은 취소했고, 코로나 시국에는 모두가 조심하는 게 맞다고 다시 얘기해주었다. 만나기 싫은 상대였다면, 애초에 약속을 잡지도 않았을 거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2. 프랑스 음식 다시 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양보할 수 있는 부분 아니냐 반문했다.

> 반대로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왜 내게는 뭘 먹고 싶은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은 건지.

최근에 먹었지만 본인을 보고 싶다면 또 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에 더 기분이 상해버렸다.


3. 본인이 대학원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많이 움츠러든 상태이며

여기서 눈치 보고 잘 보여야 해서 모든 에너지를 여기에 쏟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이해해 줄거라 생각했다.

> 내가 가족도 아니고 친구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이번 약속이 처음 깨진 것도 아니었으며, 벌써 올해 초부터 적어도 3번 이상 깬 사람이 너 자신이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점점 대화가 안 통한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렇게 지속적으로 약속을 깬 친구와는 다음번에 약속을 다시 잡아도,

또 깨질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긴 대화를 마친 후,

그 친구가 "시간이 지난 뒤에 좋은 모습으로 만나자."라고 얘기했고

나도 "코로나로 다들 예민해진 시기니까, 잘 지내."라고 끝맺었지만.



이 친구를 다시 만날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차마 차단은 못해서 친구 목록에 남아있지만, 연락이 다시 왔을 때

이제 더 이상은 반갑게 대화하고 얼굴 보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한 사람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점심 약속이라는 사소한 것조차 매번 취소하고,

심지어 당일 날 가는 도중에 '점심 메뉴' 때문에 본인 감정에 휘둘려

다시 약속을 취소하는 모습을 보고서,

이 친구랑 더 이상 연락하면 내 감정이 많이 상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서 9년 된 이 친구를 손절해버렸고.

9년이라 하더라도, 사실 한 공간에서 친하게 지낸 시간은 고작 1년이었기 때문에.



대학시절의 1년이 지나고,

한동안은 연락이 없었고. 다시 연락한 친구였기 때문에

사실 다시 못 본다 해도 큰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관이 많이 변하게 된 친구가 여럿 있다.

서로가 맞춰줄 정도의 변함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는 친구와는 거리를 두는 게 맞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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