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고래의 작품은 믿고 봅니다. 고래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입니다. 뻔하지 않고 권태롭지 않습니다. 새롭기에 도발적이죠. 그래서 위험하고 불온할 수도 있습니다.
고래의 작품을 몇 번 보았는데 소극장과 중극장 무대를 거쳐 드디어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 섰네요. 응원하는 이로서도 기쁨입니다.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면 우리는 아주 낯선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바로 불이不二의 경험입니다. 피해자인 감염자가 감염되는 순간 가해자가 되고, 사랑하는 이가 격리하고 차단하고 멀리해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마침내 죽음과 죽임의 논란 속에서 모두가 혼란스럽고 고통스럽습니다.
연극은 비명자들이라는 독특한 존재를 내세웁니다. 고통 속에서 이성을 잃은 채 비명을 질러대는 사람들을 가르키는 말이죠.그런데 그들의 고통은 그대로 타인과 사회로 전이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그들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전이 된다는 것.
사회는 언제나 그렇듯이 비명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이들과 비명자들을 살려야 한다는 이들로 갈리고 그 극단의 대립이 폭력으로 비화됩니다.
비명자들은 피해자인데, 비명자로 정의되는 순간 가해자가 됩니다. 그들의 존재는 곧바로 '사회문제'이거나 '국가적 과제'인데, 정작 책임져야 할 사회나 국가는 그들을 '문제인간'으로 치환합니다. 전도된 문제의 해법은 그들을 사회로부터 '소개'하는 것이고 마침내는 그들을 '소거'하는 것이죠.
뭐 여기까지는 익숙한 구도입니다. 대립과 폭력은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를 나타내는 표지어이니까요. 그런데 고래는 이 문제를 불교의 사성제와 삼법인, 연기론, 불이不二론으로 풀어갑니다. 우리가 원래는 하나였으며 서로 사랑하고 함께 살아온 존재들임을 일깨웁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참으로 현대적이고 섹시한 관점을 만났습니다. 대립과 폭력이 아니라 이해와 안음이라는 '새로운 변증의 해법에 대한 모색'만이 우리가 사는 오늘을 근대와 구분하는 유일한 방법이자 '현대'로 나아가는 탈출구임을 웅변하는 작품이 대극장에 올랐다는 사실이 주는 성취감에 팔이 아프도록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자꾸 막, 진짜 막, 마구 막, 그냥 막, 현대인이 되고 싶어지는 저녁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