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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an 08. 2021

반짝이는 가을 소풍 성북동 문화재야행

[14호]우리 동네 행사를 소개합니다 | 글 오미연

글 오미연

사진 성북문화원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를 나와 터벅터벅 걷다가 걸음이 멈춰졌다. 매일 똑같은 풍경 속에서 <성북동 문화재야행> 현수막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다음 날, 사람들을 기다릴 구조물들이 선물상자 처럼 곳곳에 놓여있었다. 행사는 내일부터지만 내 마음은 벌써 설레기 시작했다.


‘가을이 되었구나.’

성북동으로 이사를 온 지 6여 년이 되면서 언젠가부터 <성북동 문화재야행>은 계절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다. 밤바람이 선선해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성북동 문화재야행>이 찾아왔다. 하지만 먹고사는 직업이 콘텐츠 기획자이다 보니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주말과 공휴일마저 일을 한다. 매해 ‘올해는 꼭 둘러봐야지.’ 지키지 못할 다짐을 하면서도 같은 약속을 마음에 던졌다. 여느 때보다 치열했던 2019년. 나에게 <성북동 문화재야행>을 선물로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선물이라고 여겨서인지 행사 당일, 하루 종일 시계만 보며 퇴근시간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성북동까지 한 시간 반 거리.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자 하는 결의로 손에 꼽힐만한 칼퇴1)를 감행했다.

부랴부랴 도착한 성북동 입구는 평소의 풍경이 아니었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밤하늘을 예쁘게 수놓은 전구들, 음악소리가 익숙하지만 낯선 설렘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성북동으로의 가을 소풍이 시작되었다.



1) 칼퇴근의 줄임말로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조금도 지체 없이 바로 퇴근한다는 뜻


2019 성북동 문화재야행 현장 (사진제공 성북문화원ⓒ)


“엄마 오늘은 몇 시까지 놀아요?”

사람들 틈에서 들려온 어느 꼬마의 질문이 귀여워서 미소가 지어졌다. 그 질문 안에서 오늘은 실컷 놀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한 체험부스들에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전통놀이 코너에는 아빠와 제기차기를 대결을 펼치는 아이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고, 돌리는 건지 때리는 건지 세 명의 아이가 팽이를 향해 힘차게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딱지치기 코너에서는 딱지가 뒤집어질 때마다 환호성이 들렸다. 전통놀이를 하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슬쩍 제기를 들어 던졌지만. 난 운동신경이 없는 걸로 결론을 지었다.

구수한 냄새를 따라가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메주를 만들고, 딱딱딱 소리를 따라가니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금박체험을 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체험프로그램이 참 다채로운 것이 인상 깊었다. 한국전통부채 듸림선, 전통가오리연, 매듭팔찌, 전통 서책 만들기, 점술, 천연염색, 선잠체험, 전통한복 창작시연, 전통문양 탁본, 태극 목판화 등등 ‘전통’을 기반으로 한 체험이 한가득이었다. 콘텐츠 기획자로 이 모든 전통 관련 콘텐츠가 성북동에 있다는 게 놀라웠다.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가진 동네에 살고 있었다니! 시간제한이 없었다면 나 역시 밤새 <성북동 문화제야행>에서 놀았을 것이다.


‘내년에는 더 신나게 즐겨야지!’

성북동이 가진 콘텐츠를 가지고 꾸준하게 대표 행사를 진행한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어서 조금 더 <성북동 문화재야행>을 더 발전시킬 방법이 있지 않을까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즐기는 동시에 아이디어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체험 프로그램이나 결과물, 진행 방법이 가족을 타깃으로 한 아이들 위주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는 건 아닌지. 연인 혹은 친구들과 오는 성인들의 눈을 사로잡을 콘텐츠는 필요 없을지 등등 생각들이 꼬리가 물었을 때 투어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투어프로그램 사전 예약을 못해서 현장 접수 부스에 가니 끝났다고 한다. 모처럼 달려왔는데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투어를 못하다니. 토요일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할 찰나, 전화가 빗발친다. 주말출근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맑은 달빛 아래에서 문화재를 따라 걷는 기회는 내년으로 미뤄졌지만 괜찮았다. 단 하루, 몇 시간 뿐이었지만 <성북동 문화재야행>는 달콤한 가을 소풍이 되어 마음에 반짝이는 추억 하나로 박혔으니까. 더불어 내년에는 좀 더 저녁이 있는 삶으로 진화한 미래에 대한 계획까지 추가되었다. 조금 더 여유롭고 깊이 즐길 수 있는 <성북동 문화재야행>이 기다려진다.




오미연은 성북동에 정착한지 6여 년이 된 회사원이다. 이직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동했지만 성북동의 매력에 빠져 이주하지 못하고 고된 출퇴근을 감행중이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4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9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9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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