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 대한 단평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를 보고 하나레 구미가 부른 주제가 '심호흡'을 자주 듣고 있다. 유투브에 짧게 영화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쇼트 뮤직비디오가 있으니 영화를 재밌게 봤다면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주제가 '심호흡' 뮤직비디오는 없고 라이브 영상만 올라와 있다.
요즈음 영화를 보고나서 내용이나 장면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잦다. 영화가 재미없었다면 그러려니 할텐데 재밌게 본 영화도 그렇다. 솔직히 이 영화도 그렇다. 재밌게 보고 크레딧 올라가며 노래까지 잘 듣고 나와서 한참 마음이 든든했는데 이상하게 기억이 더듬더듬하다.
영화엔 한 편의 소설 이후 제대로된 작품을 쓰지도 못하고 젊은 혈기에 뽐새 안난다고 순수문학외는 거들떠 보지 않던 주인공(아베 히로시)과 임대아파트에 사는 귀여운 엄마(키키 키린)가 있다. 소설을 위해 시작한 사설탐정은 이젠 본업인지 부업인지 구분이 되지도 않게 노련하다. 엄마와 나누는 시시콜콜한 대화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키우는 귤이 나지 않는 귤나무나, 이혼한 아내에게 보내줄 생활비를 엄마한테 용돈이라고 쥐어주는 아들의 모습은 관객을 웃음짓게 한다. 물론 돈이 생기는 족족 경마장에서 탕진하는 그를 보면 답답한 것도 어쩔 수 없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는 내용이 소소하다. 인물이 가만히 분위기와 표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해 자연스레 지나가도록 한다. 전작에서도 공통적으로 그런 느낌이 든다. 최근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부터 가족에 집중하기 시작한 그는 이번 영화로 가족 마스터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이번 작은 앞선 두 작품에 비해 극적인 사건도 없이 그저 시간이 흘러가고 그들은 살아간다. 인생은 심호흡 한번 크게 쉬고 그렇게 사는 거라는 속삭임같다.
PS. 초기작 <환상의 빛>을 서너달 전 극장에서 봤다. 그때 충격이 좀 컸다. 감독의 장편 처녀작인줄 알고 가서 어느정도 어설플 수도, 힘이 넘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내용이 이렇게 어두울 줄은 몰랐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미화나 이유가 아닌 순수한 죽음에 이르는 것은 본인 외에는 설명할 수 없다는 현실. 자살은 그럴만한 이유가 없어도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