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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라 Oct 09. 2018

취업할 때 정신과 기록을 열람할 수 있을까


정신과 기록이 나를 평생 따라다닐까?



정신과에 간다고 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이 기록이다. 여전히 한국에서 정신과에 갔다는 사실에 편견이 크니까. 편견 자체의 문제는 차치하고, 우선은 병원기록을 둘러싸고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 우려가 되는 사실에 대해 직접 팩트체크를 해보기로 했다. 우선 병원을 찾아갔다. 연세로뎀정신건강의학과 최의헌 원장님이 선뜻 응해주셨다. 


Q: 병원에 방문한 기록이 얼마나 남나요?

A: 병원은 의무기록 기간이 법적으로 10년이예요. 10년 이내에는 폐기할수 없고 10년 이상도 보관은 가능해요, 대학병원에서는 기록이 많으니까 삭제할 수도 있지만 병원을 개업한 제 입장에서는 10년 이상을 골라서 버리기에는 더 귀찮은 일이니까 대부분 계속 놔둔다고 보시면 돼요. 중요한 건 본인 병원에 남는거지 공개되거나 외부로 유출된다는 사안은 아닌거죠.

Q: 병원들끼리도 조회가 안되나요?

A: 그렇죠 저희 병원 안에서만 조회하는 것이고 다른 병원에서는 조회가 안되죠.

-연세로뎀 정신의학과 최의헌 원장님


왜 나는 병원끼리는 중앙서버에서 정보를 관리한다고 생각했을까. 의료보험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큰 병원이든 작은 병원이든 리셉션에서 주민번호를 적어 내면 접수가 되니, 내 병에 관한 데이터가 어딘가의 큰 통에서 관리되고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나 보다.


하지만, 정신과를 포함하여 의료계에서 병원 간에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이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같은 큰 병원으로 옮겨갈 때 조차 작은 병원에서의 진료기록을 환자가 수기로 떼서 전달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병원기록은 개인정보가 아니라는 원장님 이야기였다. 


A: 사람들은 대개 내원기록을 본인들의 개인정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병원 소유의 기록이예요.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쓴 얘기거든요. 마치 누군가의 초상화를 그렸어도 저작권이 화가에게 있는 것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의무기록을 공개하는데 있어서 의사들은 폐쇄적이예요. 공개나 공유가 어렵다고 보시면 됩니다.

-연세로뎀 정신의학과 최의헌 원장님


그러니 회사나 학교, 가족을 포함한 제3자가 정보를 열람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본인 동의가 확인되지 않는 이상 가족증명서를 가져온다 한들 열람할 수 없다. ‘내가 가족이다’하고 찾아와도, 병원에 그런 분이 내원했는지 조차 확인해줄 수 없다. 


흔히 의료보험이라 불리는 국민건강보험에도 진단기록은 접근불가능한 정보다. 네이버 지식인에는 “부모님 밑으로 의료보험이 되어있는데, 제가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아시게 될까요?”와 같은 질문이 매우 많았는데 원장님을 통해서 확인한 답안은 ‘없다’ 였다. 다만 실제로 밝혀지는 경우를 보면 부모님 카드를 사용하거나 문자가 가는 경우지 그 외의 경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우울증 환자는 보험가입이 안된다?


처방되는 약에 대한 기록도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터무니 없는 오해중에, 보험사에서 처방약을 조회할 수 있어서 정신과 약을 먹으면 보험가입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사보험사가 조회한다는 것은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아예 불가해요.

- 연세로뎀정신건강의학과 최의헌 원장님



병원을 가로막는 것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정신과 내원기록이 있으면 보험가입이 되지 않는다는 소문이었다. 실제로 보험사에서 조회가능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S생명 보험설계사를 만나봤다.


Q: 보험사에서 병원 내원 여부나 처방받은 약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A: 없습니다. 병원의 기록은 보험사에서도 접근할 수 없습니다.

Q: 보험 가입할 때 어떤 식으로 확인하나요?

A: 구두로 물어보고 병력이 있다고 하면 관련 서류를 요청합니다. 다만 피보험자에게는 고지의 의무가 있어요.

-S생명 보험설계사


우선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은 보험사에서 접근 가능한 루트가 있는지였다. 병력 및 처방기록은 보험사에서 접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같은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병력을 고지할 의무에 대해서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에 관해 최의헌 원장님이 들려준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내원기록이나 처방기록은 계속 말했듯이 공유되는 기록이 아니예요. 그런데 보험설계사들이 물어보죠.  간 적 있냐고. 거기서 ‘예’라고 하며는 그 순간 기록이되죠. 그건 보험사의 내부기록이예요. 보험사 안에서 돌 수 있는 정보거든요? 경제적 보험을 보장받기 위해서 개인정보를 노출하게 되는거죠. 

저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기를 권합니다. 그것이 당신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수단일 수 있어요. 물론 떳떳하게 밝히고 그것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면 그것이 제일 좋기는 한데, 그것으로 보험사와 싸우거나 이기기는 어려우니까 현실적으로는.. 정신과 진료를 고지하지 않아서 나타나는 불이익이라는것은 극히 드물어요. 굳이 얘기해서 더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세로뎀정신의학과 최의헌 원장님



보험회사로 정보가 넘어가는 순간 다른 회사와 공유되거나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보험설계사에게 우울증 진단병력을 공유했을때 생기는 불이익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태블릿으로 가입상담시에 쓰는 문진표에 우울증 병력정보를 입력했다. 답변의 정도에 따라서 “보험가입거부” 부터 “서류보완”을 요구하는 상태창이 떴다. 이런 경우, 서류보완이 된다고 해도 보험료는 더 비싸게 책정된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잠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잠시만 생각해보면 사실 다른 질병도 마찬가지다. 디스크나, 다른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관련 서류를 요청하거나, 접수가 되더라도 보험료가 오른다. 보험의 원리를 생각하면 병력으로 리스크가 높으면 보험비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보험설계사 역시 비슷한 팁을 주었다. 실제로 설계사가 알 방법은 없으니 고지하지 않는것도 방법이며 혹은 설계사에게 솔직히 논의를 하면 어떻게든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팁을 알려줄 거라고 했다. 보험 가입 후 기존에 치료받았던 병원에 다시 가지 않으면 과거 병력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거나, 보험 가입 후 3년이 지나면 고지의 의무가 소멸되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병원에 가는것은 문제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보장받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미 보험에 가입해둔 사람들이라면, 굳이 이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병원에 가도 된다. 하지만 앞선 것과 비슷한 이유로 정신과 병력을 굳이 보험사와 공유하고 싶지 않다면, 청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쯤되니, 보험사는 정신과 병력을 알 방법이 없고, 신규 보험가입에 관한 걱정으로 병원에 못가는 일은 없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하자고 보험 가입하는건데..



취업을 못하는 거 아닐까?


인터뷰이 중에는 취준생이 참 많았다. 생애 가장 거절을 많이 당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보니 많은 학생들이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호소했다. 이 분들은 비용적으로나 주변의 시선도 부담되지만, 무엇보다 취업에 불리할까봐 찾지 못하는 걱정이 너무 많았다. K 대기업 인사팀을 직접 찾아갔다.


 Q: 채용과정에서 정신과 병력을 열람하거나 참고하나요?

A: 우선은 개인적으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던 기록을 저희가 볼 수 있는 권한은 없기 때문에 정신 기록을 받았던 기록에 대해서 검사하는 것은 없습니다. 

-K 대기업 인사팀


회사에서도 조회할 방법은 없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합격 후 주민번호를 수집하여 4대보험을 가입하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병력에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혹시 인적성이나 신체검사과정에서 체크하기 위한 항목이 있는지 물었다. 인성검사 항목이 있긴 하지만 사회생활이 불가하거나 범죄자에 준하는 경우만 탈락시키는 매우 보수적인 개념이라고 했다. 그 외에는 정신과 질환을 가졌는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입사과정에서 이를 필터링하기위한 장치는 별도로 없다. 업무를 하기에 적격인지 역량만 평가한다고 했다.


한편, 이 회사는 몇 년 전부터 무료로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이메일이나 대면으로 모두 가능하며 한 건물에 상담센터가 하나씩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상담을 받은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면서 누구나 한번씩은 누리는 복지가 되었다. 또한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은 우울증으로 병가를 내는 것도 가능하다. 사내상담통로를 이용하면 인사 상의 불이익은 없냐고 묻자, 없다고 했다. 오히려 젊은 사원들은 솔직하게 밝히고 그것이 용인되는 사내 문화라고 한다. 


Q: 취업난으로 인해 청년우울도 매우 심각합니다. 이를 계기로 장기적인 중증 우울에 빠지는 경우도 많더라구요. 그런 청년들이 정신과에 가는것을 취업에 불리할까봐 꺼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저희 회사 내에서도 상담을 권유하는 상황에서, 지원자분들은 더 힘들테니 병원에 가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병원이 부담스러우면 심리상담이라도 받아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저희 회사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입사면접같은 경우는 면대면으로 만나야하는데 위축된 모습이나 자신감 없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로인해 취업이 안되고 또 반복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 같다는 생각이들어서 마음을 좀더 보살피면서 자신을 갖고 지원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K 대기업 인사팀



정말 병원기록의 문제일까?


최의헌 원장님께 몇 가지 질문을 더 드려보았다.


Q: 내원하는 환자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하나요?

A : 그렇죠. 이미 많이 드렸던 대답이예요.

-연세로뎀 정신의학과 최의헌 원장님

    

여전히 내원자들은 공개될거라는 불안감에 의료보험처리하지말고 일반처리해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처리하는 경우 훨씬 비싸고, 결국은 본인이 부담되니까 진료 잘 안온다고 한다.


하지만 조만간 법이 바뀌어 향정약품을 처방할때는 고지를 무조건 해야 한다. 보험처리를 안한다고 해도 약물을 쓰면 시스템에 고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의 방향성은 제도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더 많이 기록, 관리될 것이다. 하지만 원장님은 진료기록은 의료계의 폐쇄적이고 보안된 시스템 내에서 보관되고 유출되지 않는 것을 신뢰를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정보노출에 대한 염려는 병원에 대한 불신 이상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것은 어쩌면 진료를 방해하는 핑계에 불과하고 병원에 간다는 자체, 약을 먹는다는 자체에 마음이 열려있지 않다는 것이 조금더 가까운 답이 아닐까 싶어요.

-연세로뎀 정신의학과 최의헌 원장님


실제로 직접 조사해본 내원기록은 누구도 열람할 수 없는 블랙박스 속에 쌓여있고, 그것을 열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그동안 지식인에 쏟아졌던 잘못된 정보는 도대체 누구발일까. 하지만 이 인터뷰들을 통해 실제로 우리가 병원을 못가게 가로막았던 것이 병원 기록이었다면 그 장애물은 한꺼풀 제거한 느낌이 들어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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