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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프레소 Jul 27. 2023

이 영화는 인생을 한번 살아낸 듯한 저릿함을 남긴다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 리뷰

*주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어떤 소설은 덮고 나면 인생을 한 번 살아낸 기분이 든다. 책을 간접체험 도구라고 했을 때, 다른 사람으로 한 번 살아낸 감각을 남기는 소설만큼 제 역할에 충실한 책도 없을 것이다. 몇 년 새 국내 명사에게서 추천받은 ‘스토너’가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소설은 두껍고, 초반부가 지루하고, 전개가 느리며,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운 슬픔을 선사한다. 별 특징 없는 주인공이 겪는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사건 속에서 독자는 스토너로 한 번 살아가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잭은 그의 아버지가 낳은 첫 아이였다. 아버지가 잭의 발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다. 사람의 발이 이토록 작을 수 있다는 게 경이롭게 느껴진다. /사진 제공=SBS콘텐츠허브

영화는 매체 특성상 이런 경험을 주는 데 소설보다 열위에 있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제한된 텍스트를 활용해 머릿속에서 ‘나의 영상’을 구성해 내지만, 영화는 시작부터 시청각에 직접적인 자극을 주기 때문에 ‘남의 영상’을 관람하는 거리감이 확실히 크다. 그럼에도 몇몇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내가 주인공으로 한 번 살아낸 듯한 저릿함을 느끼게 하는데, 오늘 소개할 ‘트리 오브 라이프’(2011)가 그렇다. 평범한 주인공이 전형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과정에서 겪은 일을 느릿하게 바라보며, 관객은 자신의 어린 시절로 접속된다. 

예술 작품을 통해 삶을 한 번 살아낸 경험을 하고 싶은 독자라면 소설 ‘스토너’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사진 제공=알에이치코리아

어린 시절 동생이 죽었고, 그는 기억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야기는 중년의 성공한 건축가 잭(숀 펜)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그는 자주 같은 꿈을 꾸며 깬다. 아직 청소년일 때 죽은 동생의 꿈이다. 가족은 그의 기억을 애써 묻었고, 언급도 자제하며 살아왔지만, 꿈속에서 동생은 늘 웃으며 뛰놀고 있다. 의식의 수면 아래 잠겨 있는 그 미소는 잭에겐 마치 동생이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한 환상통을 준다.

성공한 건축가가 된 잭의 내면은 공허하다. 그는 애써 묻어뒀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는다. /사진 제공=SBS콘텐츠허브

엄한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 … “나는 둘 사이에서 늘 갈등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 잭의 유년기로 돌리는 게 아니라 지구의 탄생까지 돌아간다. 혜성이 충돌하고, 단세포생물이 다세포생물로 진화하며, 공룡들이 서로를 공격한다. 아름답지만 서사와 직접적 관계가 없어 보이는 난해한 이미지들은 영화의 약 3분의 1 지점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곧 잭은 자기가 탄생했을 때 봤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이 영화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내는 방식은 관객 기억의 원형을 끄집어낼 만큼 환상적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또한 테렌스 맬릭 감독에게 영향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이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빨라 봐야 3살 때 정도라는 것을 보면, 사실 이건 말이 안 되는 장면이다. 하지만 기억을 못 하는 역사라고 해서 없었던 것이 아니다. 분명히 존재했고, 그렇기에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감독이 굳이 수억 년 전 지구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것은 그 역시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일지 모른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결국 영겁 같이 긴 우주의 역사 속에 놓여 있단 것이다.  

흔히 영화를 빛의 예술이라고 표현하지만, 테렌스 맬릭이 빛을 활용하는 방식은 특히나 예술적이다. /사진 제공=SBS콘텐츠허브

카메라는 그의 어린 시절을 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는 앙각(仰角)으로 담아낸다. 아기인 그의 시점에 맞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해 보이던 그 시절, 어머니는 그의 별것 아닌 성취에도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기뻐해줬다. 발바닥이 살짝 까지면 큰 부상이라도 입은 듯 돌봤고, 숨바꼭질과 춤추기, 달리기를 하며 잭과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그녀가 성인이 된 이후 가장 비생산적으로 보냈을 그 시간을 통해, 잭은 ‘따뜻한 어머니’에 대한 원초적인 기억을 갖게 됐다.  

아버지 또한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어쩌면 그게 아들과의 관계를 더 서먹하게 했는지 모른다. ‘좋은 아버지’에 대한 자기 기준에 집착하느라 소통에 소홀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와 두 동생에게 늘 엄했다. 식사 시간에는 조용히 하라고 타이르며 유쾌한 분위기를 망쳤다. ‘아빠’ 대신 ‘아버지’라고 부를 것을 요구했으며, 말을 듣지 않으면 다락방으로 올려 보냈다. 강한 남자로 키우겠다며 아버지 얼굴에 주먹을 날릴 것을 강요했으며, 아들 얼굴을 향해 손을 휘두르며 방어해 보라고 했다. 그것은 분명 악의 없는 교육이었지만, 세 아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엄마 역시 아빠에겐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잭은 늘 갈등했다. 엄마처럼 남을 품는 인생을 살 것인가, 아버지처럼 타인을 짓밟고 일어서는 삶을 살 것인가. 

아버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주 망쳤다. 아들은 아버지가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한다. /사진 제공=SBS콘텐츠허브

아버지를 그토록 싫어했는데, 아버지를 닮아버렸다


잭은 아버지를 싫어하면서도, 아버지를 닮아간다. 동생들에게 몸싸움을 걸며 자기 아버지처럼 군다. 동생들처럼 세상을 순수하게 보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강한 남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자신을 훈육하는 아버지에겐 “죽이고 싶으면 죽여라”는 말로 받아친다. 자신을 누구보다도 사랑해 준 엄마에겐 “아빠한테는 꼼짝도 못하면서”라는 말로 아픔을 준다. 그러다 곧 후회하고 사과하기를 반복한다.  

중년이 돼 전쟁하듯 살아가던 잭은 엄격했던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사진 제공=SBS콘텐츠허브

잭은 성인이 된 후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보여줬던 무서운 얼굴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그건 스스로도 부족했던 아버지가 자기 나름의 부족함을 안은 채 아들을 사랑한 방식이었다. 물론 그 과정의 폭력은 정당화할 수 없을지라도, 사랑이 진심이었음은 깨닫게 된다.  

세 형제를 다정히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 /사진 제공=SBS콘텐츠허브

보편적인 경험을 통해, 관객 개개인의 특수한 기억을 소환하다


사실 잭의 어린 시절엔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삼을 만한 특수성이 부족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가 아기 때부터 보고 자란 부모의 모습은 대부분 관객이 경험한 것과 유사하다. 부모 중 한쪽이 온기를 담아 포용한다면, 다른 쪽은 금기를 알려주는 역할을 맡기가 쉽다. 아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적당히 섞으며 자기 성격을 만들어간다.  

잭은 환상 속에서 천국을 경험한다. 그곳엔 젊었던 부모와 어린 시절의 자신, 형제들이 있다. 어쩌면 그는 천국에 간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제공=SBS콘텐츠허브

영화는 많은 부분을 불친절하게 설명함으로써, 관객의 적극적 상상을 유도한다. 이 영화는 가장 보편적인 경험을 그려냄으로써, 관객 개개인의 특수한 기억을 불러내는 작품이다. 특히, 어린 시절 주인공이 올려다봤던 부모의 모습을 그려내는 방식은 관객 머릿속 한구석에 있던 기억을 바로 끄집어내게 할 만큼 환상적이다. 소위 ‘영화적 체험’이라는 건 이런 경험일 것이다.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는 이 작품에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시상하며 영화적 체험을 만들어내기 위한 거장의 노력에 경의를 표했다.

아들의 시점에서 올려다본 어머니의 모습./ 이미지 제공=SBS콘텐츠허브

영화의 초반부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견뎌내기 위해 2배속 버튼을 누르는 건 외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감상 중에 졸아서 몇몇 장면을 놓치더라도 끊지 않고 끝까지 보는 게 온전한 감상에 가까울 것이다. 극장에서 봤을 때, 영화적 체험이 배가 되는 작품이다. 가급적 영상과 사운드에 흠뻑 젖어서 볼 수 있을 만한 감상 환경을 갖추고 보길 추천한다.

우주가 우연히 생겨났듯, 가족이 겪은 마음 아픈 사건 또한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다. 우리는 우연에 이토록 무력한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감독이 왜 영화 초반부에 우주의 역사를 요약한 시퀀스를 넣었는지 해석을 덧붙이며 글을 매듭지으려 한다. 그건 아마 우주의 역사를 놓고 보면 ‘있을 수 없는 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려는 차원이었을 것이다. 지구의 역사가 대부분 우연한 사건으로 이어져 왔듯이,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사건들도 그저 우연일 뿐일지 모른다. 착하게 살았는데도 운명이 나에게만 가혹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운명은 우리가 착하게 살았는지 아닌지에 무심할 뿐이다. 인간은 우연 앞에 이토록 무기력하기에, 그저 우연에 무력한 서로를 위로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단 것이다. 이 영화는 아주 보편적인 우주의 시간 속에 우리의 삶을 위치시킴으로써, 관객 개개인의 특수한 인생을 보듬는다.  

‘트리 오브 라이프’ 포스터. /사진 제공=SBS콘텐츠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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