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마스크걸> 리뷰
*주의: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부모의 희생이 자녀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스크걸’(2023)은 이 점을 지적하는 작품이다. 자신이 희생했다고 믿는 부모는 자녀가 이를 보상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그런 기대가 둘 사이 소통을 막는다. 주인공 김모미(이한별)가 아닌 주변 인물 주오남(안재홍)과 김경자(혜란)를 통해서 부모 자식 관계에서 ‘희생’이 걸림돌이 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동료의 비밀을 알게 된 남자, 그녀를 보호하겠다더니
전체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 김모미는 어릴 때부터 연예인을 꿈꿨지만 남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외모에 좌절했다. 성인이 된 후 생계를 위해 회사원이 됐으나 주목받고 싶은 욕망은 여전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BJ가 된 이유다. 그녀는 ‘마스크걸’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매력적 춤사위로 팬들을 끌어 모아 인터넷 방송계의 일약 스타로 떠오른다.
주오남은 김모미의 직장 동료로, 그녀가 마스크걸임을 알고 있다. 모미가 직장 상사에게 실연한 뒤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고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어느 날 흑심을 품은 청취자가 김모미에게 접근한 현장을 덮친 그는 청취자를 살해하고 만다. 그러나 계속해서 어긋나는 모미가 자기 진심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오남은 모미를 성폭행하고, 모미에게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 악착 같이 아들을 키운 엄마
이 드라마는 오남이 죽은 뒤 카메라를 오남의 엄마인 김경자에게 돌린다. 경자는 자기 아들이 마스크걸의 청취자를 살해한 남자로 의심받는 상황도, 또 마스크걸에게 살해당했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모친은 ‘의대를 가고도 남을 정도로 공부 잘하고’ ‘이성에게 인기 많은 데다가’ ‘효자였던’ 오남이 누굴 죽일 리도,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리도 없다고 지인들에게 얘기한다.
사실 이건 모두 다 그녀의 자기기만이다. 그녀가 말한 아들의 세 가지 특징은 자신이 원한 이상적 자식의 모습일 뿐이다. 오남은 공부를 웬만큼 잘하긴 했지만, 의대를 가고도 남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뽐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경자는 아들에게 늘 아쉬움을 토로했고, 이는 아들에게 거대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드라마는 경자가 아들에게 큰 기대를 걸게 된 사연을 그녀의 젊은 시절에서 찾는다. 남편이 어린 오남과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살림을 차리자 경자는 악착 같이 살 수밖에 없었다. 식당 일, 화장실 청소, 택시 기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아들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눈총 받는 것 정도는 신경 쓰지 않고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나 오남은 엄마 말을 '고분고분' 듣는 효자로 크지 않았다. 취직하자마자 독립하겠다고 선언하며 경자 속을 썩였다. 전화를 걸면 대놓고 귀찮은 티를 냈다. 급기야 나가서 살게 된 뒤에는 엄마가 반찬을 주러 자기 집에 오는 것조차 거부했다. “나도 드러워서 느그 집 다시는 안 올란다”고 했던 게 오남이 죽기 전 무렵 그녀가 아들에게 던진 말이다. “나가 니를 어떻게 키웠는디”는 그녀가 오남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의 근거였다. 엄마가 희생한 만큼 아들도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이 당한 학교폭력을 외면했던 엄마
그러나 오남의 시점에서 보면 모친의 희생은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전투적인 삶에 지쳤던 엄마는 오남의 정서적 필요를 채워주지 못했다. 학교에 다닐 때 오남의 소지품이 자꾸 없어지거나, 팔에 멍이 들어서 들어오고, 머리에 껌을 붙인 채 귀가하는 일이 생겼다. ‘놀다가 그랬다’는 오남의 말을 엄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들의 덤벙대는 성격을 나무랐다.
누가 봐도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증표들을 그녀는 아들이 조심성 없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이것은 경자의 의도적 회피일 가능성이 있다. 사랑하는 아들이 밖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막상 학교폭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무엇을 해줘야 할지 막막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지하게 들어봤어야 할 그 시점에 그녀는 아들에게 안수기도를 받게 했다.
학교에서는 동급생들에게 맞고, 집에서는 엄마가 자기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상황에 오남은 인간관계를 포기하게 됐다. 그는 자기가 예상치 못한 리액션이 돌아올 가능성이 없는 만화 속 캐릭터와 연애했고, 자기가 돈을 지불한 만큼 따뜻한 말을 돌려주는 BJ의 인터넷 방송에 빠졌다. 오남이 세상을 떠난 다음 그의 방에서 나온 리얼돌은 엄마를 당혹스럽게 했지만, 오남은 엄마보다는 인형과 만화, 동영상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엄마만의 희생으로 집안이 지탱된 게 아니었다
사실은 누군가가 전적으로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좋다. 경자도 남편이 떠나는 충격적 상황을 겪지 않고, 보다 여유로운 상황에서 아들을 돌볼 수 있었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아마도 아들이 엄마를 부담스럽게 느낄 정도의 기대를 걸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드라마 속 경자는 아들을 망쳐놓고 자신이 원인인지도 모르는 악당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객 마음속에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안타까운 캐릭터이기도 하다.
경자가 아들을 위해 희생했다는 그 감정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는 그녀 인생의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남편이 그렇게 떠나서 경자가 괴로워하는 동안 오남 역시 힘들어하던 건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아들은 시장 통에서 엄마가 보여준 악다구니에 민망했지만 모른 척해줬고, 심지어 학교 폭력조차 엄마가 신경 쓸까 봐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자기만의 희생으로 집안이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아들도 많은 것을 포기하며 집안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7부작으로 이뤄진 이 드라마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 여러 에피소드가 말하는 건 마스크를 벗고 누구에게나 솔직하게 다가가라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마스크를 크건 작건 쓰고 있고, 이것을 모두에게서 벗어던지고 상처와 과오를 드러내는 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일 수 있다. 다만, 마스크 밑의 모습을 보고도 있는 그대로 소통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적어도 그 관계에서만큼은 진실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란 질문을 드라마는 조심스럽게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