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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든가 Feb 11. 2024

자식 뒷담화하는 부모를 보며

사람 들여다보기

 한가로운 주말 낮, 도서관에서 빌린 책 몇 권을 가지고 동네 호수공원 카페거리에 간다. 그날의 무드와 내 기분이 어울리는 카페를 들어가 창가 쪽 자리를 고른다. 당연하게도 카페엔 여러 사람이 모여 얘기를 한다. 서로에게 집중해 대화를 나누는 데시벨은 각자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런 목소리들이 모여 웅성거림을 만든다. 이런 소리가 재즈풍 음악과 함께 적절한 백색소음이 돼주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런 느낌은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 그날은 테이블 대화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테이블에 눈과 귀를 기울이는 경우는 예쁜 여성분이 시선을 훔치는 경우를 제외하곤 없다. 뭐... 시끄러운 중년 모임이라던가... 에티켓 없는 중고등학생들 이어도 독서 곧잘 집중하는 편이다.  하지만 앞에 테이블에 있는 신도시 느낌이 나는 부부의 대화는 관심이 가게 되었다. 책을 그냥 펴두고 읽지 않은 대화에 집중했다. 악의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창으로 개방된 카페는 호수 공원의 전경과 햇빛을 동시에 받는다. 창 너머 아이들이 노는 풍경이 주말에 느낄 수 있는 한가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카페 안을 더욱 여유로운 공간으로 만든다. 그 부부의 딸 역시 카페 앞에서 놀고 있었다. 나이는 6살 정도 삐삐머리를 하고 핑크색 패딩을 입은 전형적인 그 나잇대 꼬마애였다. 세발자전거를 타면서 놀고 있었던 걸로 기억했고, 활기차고 밖에 나가 노는 걸 좋아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아직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한창 많을 때고 또 만개했을 시기였다.


  겉으로 보기엔 바람직한 풍경이었다. 카페 앞에서 활기차게 햇빛을 받으며 웃고 있는 아이와 카페 안에서 아이를 지켜봐 주는 부모. 그러나 들리는 대화는 정반대였다. 애가 밖에 있으니 엄마는 아이에 대한 험담을 하고 아빠는 맞장구를 조용히 치고 있었다. 


"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쟤때문에 미치겠어 지금." 

"쟤가 또 저럴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해. 왜 이렇게 어리광을 피우는 거야."


 순수히 아이가 잘못되었다기 보단, 평범한 아이지만 엄마는 아이다운 면이 싫은 듯했다. 밖에서 기분 좋게 놀고 있는 아이와 대비되게 엄마는 냉소와 차가움으로 가득 찼고 아빠 역시 엄마 태도에 거부감보다는 오히려 동화된 느낌이 강했다. 아이가 들어오고 밖에서 본 걸 부모한테 얘기를 했다. 주말 공원 특성상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오는 사람이 많은데, 아이가 그걸 본 모양이다. 아이는 귀여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부모에게 얘기를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엄마는 애 앞에서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고, 딸이 너무 한심하여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인 엄마를 대신하여 아빠가 나섰다. 


"지유(가명)야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유지비도 엄청 많이 들고, 사료도 계속 줘야 하고 산책도 매일 나가줘야 돼. 네가 생명에 대한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어? "


 정론으론 옳다. 하지만 6살 아이가 헤아릴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흔히 말하는 완전한 T의 모습이었다. 아이는 강아지를 귀여워했다가 순식간에 철없는 아이가 되어버렸고 '유지비' '사료' '생명의 무게'라는 개념이 뭔지에 대해 전혀 감을 못 잡는 듯한 느낌이었다. 즉 어른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을 통해 아이에게 부모로서 권위를 세워지는 듯했다. 이런 말은 '넌 애라서 몰라'가 전제로 깔려있기 마련이다. 


 주눅 든 아이는 화장실을 가고 싶단 얘기를 했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엄마는 바로 아이를 타박했다. 


"내가 가자고 했을 때 안 간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가자고 하는 건 뭐니?" 


 화장실도 엄마 중심이고 애 중심이 아니었다. 즉 생리 현상도 통제 아래였다. 아이는 결국 한소리 듣고서야 화장실을 갈 수 있었고, 카페를 나갈 땐 이미 울고 있었다. 이제 또 운다고 뭐라 그러는 부모. 그토록 밖에서 활기차게 놀며 내 독서풍경이 돼주었던 아이는 부모 아래서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난 책을 다시 피고 읽으려 했지만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 또 저 아이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가장 기억이 남았던 건 부모가 아이에게 했던 수차례 험한 말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사랑하는 듯한 아이의 올망 똘망한 눈이었다. 눈은 사랑으로 빛났지만, 그 빛은 부모가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지 깊은 불안이 눈물샘처럼 가득 차오른 찬빛이었다. 

 




작가 후기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부모의 자격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뉴스에선 출산율이 문제다....라고 얘기를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낳고 나서도 문제가 많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제가 부모가 되어보지 않았어도 분명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쁜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은 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걱정인 건 먹고살기 퍽퍽한 부모가 아닌 아이에게 예정되어 있는 비참한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저 아이는 분명 어린 시절에 활기차고 호기심이 왕성하고 부모에게 어리광도 피울 줄 아는 평범한 아이입니다.

곧 변해버릴지도 모르죠. 사람이 무섭고, 집 밖에 나가기 싫고, 혼자 삭히다 망가져 버리는 사람.


 부모의 험담엔 아이에 대한 많은 내용이 있었고, 제 인상을 깊게 하였지만, 어렴풋한 기억이 과장된 글을 쓸 수 있겠다 생각하여 확실히 기억에 남은 대화만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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