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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든가 Feb 19. 2024

독립하지 않은 성인은 애취급 당할 수밖에.

마음 들여다보기.


이제 독립하려 한다.


 30평 남짓 아파트에 식구 구성원은 나를 포함한 엄마, 동생, 할머니까지 4인 가족이다. 독립 하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나가서 사는 순간부터 숨 쉬는 것부터 유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취는 돈이 깨진다. 본가가 회사와 거리가 가깝고 생활하기 불편함 없는 환경이라면 캥거루족은 선택 아닌 필수다. 최근까지도 그렇게 생각했다. 돈을 대하는 가치관과 독립의 필요성을 절절히 깨닫기 전까지. 


 우선 할머니와 엄마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날 너무 각별히 생각한다. 맞벌이 집안이어서 날 순수 업어 키웠던 할머니와 그래도 허우대 멀쩡히 자란 아들을 믿는 구석으로 생각하는 엄마는 자식에게 집착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사소한 것 하나 신경 쓴다. 정확히는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성인 남자가 듣기 창피한 생활 습관에 대해서 말이다. 


 시대적 배경이 살짝 들어가자면 할머니는 39년생 토끼띠로 전쟁을 겪은 세대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고 원조받는 국가였다. 깁미 초콜릿을 외치며 미군을 따라다니고 얻어먹기 위해 숱한 개인기를 연습했던 세대다. 굶주림을 겪어본 할머니는 음식에 그렇게 유별나시다. 집에만 있는 날엔 항상 '밥 먹었냐?' '밥 좀 먹어' '밥 해줘라.'라며 밥을 그렇게 챙겨준다. 나는 고도 경제 성장 시기를 거치고 태어나서 그런지 굶주림을 모른다. 오히려 밥을 일부러 적게 먹는 다이어트가 익숙한 세대다. 밥 생각 없다는데도 밥을 그렇게 챙겨주려는 모습이 집에서 편히 시간을 보내셨음 하는 내 소망과 부딪히곤 한다. 


정말 밥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티브이 보세요. 알아서 챙겨 먹어요. 저 내일모레 서른이에요.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정말 본가에 있는 게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인지 회의감이 든다. 엄마 역시 양치하라는 둥, 손 씻으라는 둥 초등학생에게 할법한 말을 내게 한다. 이렇게 불평하는 이유는 안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하는 곳에서 지적받을 정도로 업무보다 청결을 우선시한 적도 있었다. 당장 양치와 손을 안 씻으면 못 참는 나 자신이다. 하지만 더욱 못 참겠는 건 생활에 강요를 불어넣는 것이다. 


어련히, 정말 어련히 할 텐데.


  강요를 당할 때마다 드는 스트레스를 고찰해보았다. 도덕적 딜레마도 있는 문제다. 엄마와 할머니에겐 분명 나쁜 의도가 없고 나를 '끔찍이'생각해서 하는 말인 걸 안다. 거기에 대해 짜증을 낸다면 누군가가 철없는 사람이라고 지적 할지도 모른다. 손주 밥을 챙겨주려는 할머니와 아들을 감싸고도는 어머니는 잘못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그런 말을 들었다고 짜증 내는 건 내가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NOPE

난 자아와 신념의 충돌로 결론을 내렸다.


 도덕성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경험으로 인해 점차 세계가 확장된다. 그러면서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자율성도 갈구하게 되는데, 사춘기나 대학생이 일탈을 하는 건 그런 일환이다. 성인이 되어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율성은 자아에 확실한 영역을 가지길 원한다. 즉 자기 주도적 삶을 살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이는 간단히 자아실현이라고 표현된다. 사춘기 시절에 부모와 자주 부딪히는 이유는 자율성을 지키고 싶은 아이와 강요를 할 수밖에 없는 부모의 갈등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부모와 할머니 역시 내게 여러 관습을 강요하는 건 '신념'에 기인한다. 굶주림을 겪어본 할머니는 '밥'이라는 신념이 강하게 박혀있고, 엄마 역시 각인된 모성애로 인해 날 언제나 보호하고 싶어 한다. 양치하라는 말은 충치와 세균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지며, 술 먹지 말라는 말은 밤늦게 돌아다니면 위험하다는 생각으로 인한 보호 의지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할머니에겐 '밥' 엄마에겐 '보호 의지'가 곧 신념이 되었으므로 이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신념을 바꾸려고 노력할 바엔 차라리 나가서 사는 게 훨씬 깔끔한 판단이다.


  신념은 살아가며 경험적으로 습득한 거대한 전제다. 사람이 신념을 가지게 되면 그 부분에선 절대 꺾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엄마와 할머니는 나보다 몇십 년을 더 산 사람이다. 그 시간이 쌓여서 생긴 신념은 굳건하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은 곧 자율성의 보장이며, 자취 비용은 자기 주도적 삶을 살기 위한 값이다. 가족과의 갈등이 이런 신념과 자아의 마찰로 일어나는 경우라면 과감히 독립을 하는 걸 추천한다. 독립해서 살기 위해선 조건이 필요하긴 하다.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부른 독립은 생활이 말 그대로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구와 얘기를 나누며 공유한 가장 좋은 독립 형태는 최대한 빨리 독립하는 것. 그 전제는 올바른 가정교육으로 생활 습관의 건전이 보장될 때 어린 나이부터 자기 주도적으로 살 수 있는 요건을 마련하는 것. 그렇지 않은 경우는 섣부른 독립이 될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살다 보면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영향으로 생활 습관이 좋은 쪽으로 변화할 수 있다. 그럼 그때 독립을 준비하면 된다. 


 가족 간 갈등은 여러 형태를 띠기 마련이다. 뉴스에 나올법한 끔찍한 사이가 될 수 있고, 시트콤에 나오는 유쾌한 가족이 될 수도 있다. 두 가족의 공통점은 갈등을 겪는 것이다. 가족은 필히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이는 부모의 신념과 자식의 자아의 대립이 빈번한 구조다. 그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인이 되면 어련히 나가 살아주는 것이다. 그게 곧 효도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뵙는 게 친숙함은 유지하면서 부모로 하여금 애틋함을 느낄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이다. 


 결론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본가에 있는 거라면, 차라리 독립하여 자기 주도적 삶을 살면서 스스로를 성장시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길게 보면 옳은 방법이다. 



작가 후기


집에선 익살쟁이가 되곤 합니다. 

회사에서 사무적으로 사람을 대하다 보니 집에선 어려지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가족들은 이런 제 모습을 좋아하지만, 가끔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모레 서른이거든요.


그리고... 글에 가족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은 모양새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반복되면 한 번씩 짜증 내며 쌓인 걸 풀어낼 수밖에 없어요.

최근 들어 가족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맞는 선택지는 독립이란 결론이었습니다.

오히려 가족을 이해하니 해야 할 행동이 명확해지더라고요.


요즘 사회는 개인적으로 캥거루족으로 인해 결혼 연령이 높아진 것도 같습니다.

안정을 찾을 필요성을 못 느끼거든요. 본가에 사는 게 매우 안정적이니까요.

(제 기준입니다.)

결혼은 정착과 안정을 원하는 두 남녀가 합가 하는 게 주 개념이잖아요?


이미 니즈를 찾은 사람이 굳이 결혼을 찾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근로소득으로 가정을 유지하기란 매우 힘들다고 사회적 통념이 거센 가운데,

이성적인 판단을 지닌 여러 사람 입김으로 소신 있는 선택도 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독립해서 근로소득 너머 제 자아와 스타일을 찾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자취는 돈이 무척 깨진다지만, 스스로를 위해서 쓰는 거라면... 당연한 소비죠.

돈은 그러라고 버는 거잖아요? 

저도 돈을 정말 좋아합니다. 

조만간 돈 이야기로 글을 쓰고 싶네요.

특이한 경험 생기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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