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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든가 Feb 17. 2024

사람에게 친절 하나가 그리도 어렵나

사람 들여다보기

 세상에 친절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는 간간히 보는 뉴스나 SNS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간간히 친절한 사람을 볼 수 있다. 일면식도 없는 취객을 경찰에 신고해 주고 챙겨주는 사람. 뛰다가 넘어진 아이를 달래주며 일으켜주는 아줌마. 놓고 간 물건을 굳이 뛰어가서 되돌려주는 대학생. 편의점 알바에게 1+1 상품을 건네주는 회사원. 


  그들을 관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친절과 한 발짝 떨어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분명 아름다운 행위들이고 뿌듯한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지 않는 행위들이다. 정확히는 머리엔 떠오르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는 행동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 이전에 돈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단 욕심이 먼저였고,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선 손해 보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가치관이 심어 졌기 때문이다. 그때 장착된 '오지랖'이라는 모든 행위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차가운 사고방식이 모든 친절을 망설임에 그치게 했다. 


 분명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고마움을 받는 건 좋은 일이다. 실제로 그런 행동들을 해본 적이 많았다. 대가성을 바라지 않고 했던 행위들은 '사람'이라는 소중한 자산이 되어주었다. 사회생활 하기 전 베푼 친절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셈이다. 사회에 나오기 위해 했던 일련의 노력들. 취업 준비나 전문성 배양을 넘어 비즈니스식 사고방식을 빠른 시간에 주입하기 위해 독한 생각을 스스로에게 강요해야 했다. 그렇게 사회인으로 나오게 되었지만, 세상에 보탬이 되는 건 꼬박이 내는 세금 말곤 없게 되었다. 그걸로 위안 삼기엔 친절을 베풀 만큼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게 생생히 느껴진 일이 있었다. 


 누군가는 내가 열심히 사는 청년이라고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운동을 한 뒤 독서와 글쓰기를 비롯한 자기 계발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야근하고 밤 10시에 운동을 하여 11시에 마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지하철 막차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로 올라가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에 할머니가 굴러 떨어졌다. 요란한 비명소리와 함께 주변 여성 두 분은 패닉에 빠졌고, 할머니는 쓰러진 상태였다. 에스컬레이터는 역시 기계라 그런지 그런 할머니를 싣고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순간 뛰어서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부상 위험이 있는 몸을 생각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반면 패닉에 빠졌던 여성분 두 명은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고 케어하며 지하철로 데려가주었다. 할머니는 크게 다치진 않았다. 난 그 셋을 무뚝뚝하게 지나치며 막차가 끊기질 않길 바랐다. 여성분들은 막차를 놓칠까 고민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지하철에 타고 대기 중인데 지하철 문이 닫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기관사가 다친 할머니를 기다려준 거였다. 여성분 두 분이 그렇게 할머니를 데려와주고 지하철 내에서도 계속 달래주고 괜찮냐고 물어봐줬다. 난 그걸 보며 깊은 수심에 빠졌다.


 남들이 보기엔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진 내가 어느 누구도 섣불리 도와줄 수 없는 마음의 빈곤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마음의 공허와 타인과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하는 배타성이 살기 팍팍한 대한민국에 한몫을 보태고 있었다. 일차적 원인은 이러한 생활에도 정서를 채워줄 사람이 없다는 점이 컸다. 또한 명확한 목표 없이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한계였다. 하고 싶은 게 없으니 돈부터 버는 심리와 비슷하다. 되고 싶은 게 없으니 일단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 결과 겉으론 있어 보이는 상식인이 되었지만, 속으론 사람 하나 제대로 못 도와주는 뚝딱이가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게 강요된 독한 비즈니스적 생각이 결과적으로 독이 되었다. 최근에 읽은 고전은 모두 친절함을 장착하라고 주문한다. 세이노 식 가치관이 어찌 보면 나에겐 독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 맞는 잔머리와 권모술수를 지니라는 말은 허상에 불과했다. 끝에 가면 심판을 받고 좋게 살지 못하게 된다. 마키아벨리와 세이노를 잘못 이해하는 것만큼 인생 꼬이는 지름길이 따로 없다. 지금 나는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나와 같은 불친절한 누군가에게 정신적 피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부터 좋은 사람이 아니니 이상한 사람이 꺾어보려 하는 거고, 또 꺾이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긍정보다 부정이 더 많으니 괴롭힘 당하면서도 곧잘 그를 이해해 준다. 더 슬픈 건 그런 사람보다 나에게 친절한 사람을 이해를 못 한다는 점이다. 고결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마저 정화한다. 고결하다는 건 높은 차원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사람을 위한다는 것. 모르는 타인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친절할 수 있는 것. 어떠한 계산도 없이 순수히 사람에게 잘해 줄 수 있는 것. 그리고 무엇도 바라지 않는 것. 


 고결한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 마음을 오늘도 들여다본다.


 



작가 후기


친절: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친함을 뜻하는 한자 親과, 가까움을 뜻하는 한자 切의 합성어이다.


 요 근래 제 자신을 가장 반성하게 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진지하게 절 돌아보게 되었고, 글 제목 역시 저를 향해하는 말입니다.

또한 저와 같이 대한민국을 어쩔 수 없이 정 없이(?) 만드는 분들에게도 바치는 말입니다.

언제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게 제 도덕성의 한계가 되어버렸을까요.


 남에게 폐만 끼치지 않으면 남을 돕지 않아도 된다. 

요 이상한 논리 구조가 '오지랖'이라는 잘못된 계산식으로 인해 성립되어버렸습니다.

제 자신이 고결하지 못하니 남에게도 솔직하지 못하고, 빈약한 자아가 성립된 거 같습니다.

그리고 진정 고결한 사람이란 제가 본 두 분이었어요.


 두 분은 지하철에서도 할머니를 계속 케어하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먼저 내리고 두 분이서 얘기를 나눈 걸 듣게 되었습니다.

한분은 댄서셨고, 나머지 한분은 직장인이었습니다.

같은 친절을 베풀다 보니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피어올랐나 봅니다. 

그때 알게 되었고 두 분은 제가 내릴 때까지 대화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분들이 고결한 사람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결해지기 위해서 여러 계산을 지우려 합니다. 

돈부터 시작해서 가족까지 여러 가지 삶에 끼쳐있는 공식들.

새로 써보려 합니다.

글로 쓰기 위해선 실천을 해야 하니 해보려 합니다. 



p.s 

세이노 사고방식은 세이노를 비판하는 게 아닌 독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한국형 성공공식을 제시하는 그의 의견을 비유적으로 표현입니다. 

경쟁과 성공 처세에 유리한 사고방식을 생각하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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