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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의 서재 May 26. 2024

스토너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슬픈데 눈물은 나지 않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감정이 계속 묻어있어 괜스레 울고 싶어지는 기분. 스토너는, 그런 책이었다. 


소설 <스토너>는 19세기 미국에서 태어난 평범한 남자 스토너의 인생을 담은 소설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스토너는 농부인 부모님을 돕기 위해 농과대학에 진학한다. 그리고 대학에서 우연히 수강한 영문학 강의를 계기로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다. 우연히 사랑하는 여인 이디스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순탄한 인생을 걷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디스와의 결혼생활마저도 실패하게 된다. 


결혼의 유일한 기쁨이었던 딸 그레이스마저도 이디스와의 불화로 사이가 멀어진다. 직장에서는 열정적인 강의로 한때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선임 교수와의 갈등으로 점점 강단에서 설자리를 잃게 된다. 삭막해져 가는 인생에서  연인 캐서린을 만나 진실한 사랑을 잠시 맛보았지만, 이것 역시도 서로의 상황 때문에 짧게 마무리된다. 아내, 자식, 직업에서의 아쉬움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그렇게 그의 인생은 끝이 난다.


스토너의 인생은 실패한 듯 보였다. 내가 다 억울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이디스에게, 선임 교수에게, 불의를 향해 적극적으로 반항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한 그의 인생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다. 저자 존 윌리엄스는 이 감정을 의도한 것일까. 읽었는데도 다 읽은 것 같지 않은 기분 때문에, 무언가 놓치고 있는 기분 때문에 옮긴이의 말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의문점의 답을 일부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 작가와의 인터뷰 중


나는 <스토너>를 제대로 읽지 않고 결론을 내렸기에, 내가 틀린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존 윌리엄스가 말한 대로 스토너는 꿈을 이루었다. 부모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진학한 대학교에서  영문학이라는 꿈을  찾았으며, 대학교수가 되어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며 진정한 기쁨을 맛보았다. 그리고 캐서린과 진실한 사랑도 나누었다. 나는 스토너를 ‘온전히’ 읽지 못했던 것 같다. 단 한 번 <스토너>를 읽고 그의 인생에서 부정적인 부분만 부풀려 그가 ’ 불행하고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고 단정 지었다. 


내가 스토너의 인생을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내가 그럴 자격이 있다면) 그의 꿈과 행복도 동일한 시선으로 봐야만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대로 그가 정말 영웅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행복을 느끼는 것은 분명 모두가 누리지는 못하는 행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스토너는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고 보기 힘들다.

책을 한번 보고 담긴 의미를 모두 알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두세 번 읽어야 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부류인 것 같다. 다시 두세 번 천천히 읽어보면 스토너의 인생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냥 한번 읽고 말기엔 스토너의 인생이 너무 아쉽다. 그게 아쉬워 스토너를 한 번 더 펼쳐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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