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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나물 봄동이 Apr 29. 2022

1.퇴사와 창업 사이

(feat. 누가 출판사 창업을 하는 걸까?)

편집자로 첫 월급을 받은 건 2009년 10월 25일. 마지막 월급은 2021년 3월 25일이 될 테다. 잠시 딴짓(?)을 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편집자’라는 직업으로 130개월의 월급을 받는 셈이다.


2015년, 편집자가 된 지 ‘다섯 여름이 지나고’(생각의 여름님 노래 제목이다.) 편집자로서의 여섯 번째 여름을 앞두고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쉬고 싶었고, 더 늦기 전에 편집자가 아닌 다른 직업으로 밥벌이를 해보고 싶기도 했다. 제작 거래처의 사장님은 출판사를 차리는 거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그냥 쉬고 싶어서요.” (정말이었다. 좀 쉬고 싶었고, 정말 좀 쉬었다.)

이제 안 볼 사이인데 선물까지 굳이 건네신 걸로 보아 그 사장님은 절반만 나의 말을 믿었던 것도 같다. 쉬다가 본인의 추측대로 출판사를 차리게 되면 연락하리라 생각하셨을 수도. 난 출판사 차릴 마음이 1도 없는데. 나중에라도 출판사를 차릴 일이 있을까? 내가? 내가 출판사 사장이 된다고? 아니, 그런 일은 없을 거다. 그때의 나는 단호하고 분명하게 내가 출판사 사장이 될 리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누가 출판사를 창업하는 걸까? 자신이 만들고 싶은 책의 목록이 뚜렷한 사람? (나는 그런 게 없었다.) 어쨌든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기보다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어 일하는 게 편한 사람? (나는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이, 앞자리보다 구석진 자리가, 햇살 가득한 곳보다 어두워서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안 그래도 ‘책임’이란 단어가 무섭다 생각하는 사람인데 사장이라니, 그런 책임 있는 자리는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책을 자신의 맘대로 내고 싶은 사람? (나의 직업은 편집자, 나는 편집자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편집자 없이 내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책으로 만들 만한 원고가 마련되어 있지도 않았고.) 돈이 많아서 취미로 책을 맘껏 내고 싶은 사람? (내가 썼지만, 여기엔 딱히 덧붙일 말이 없는 건 왜일까...ㅋㅋ) 생각해볼수록 역시나… 나는 출판사를 차릴 일이 없겠다! 그게 나의 결론이었다.


그랬는데 어쩌다 여기 와 있지.


2016년 가을, 관두었던 출판사에 재입사해 편집자의 삶을 이어왔다.

2021년 봄, 1인출판사의 사장이 되었다.


달력의 숫자가 바뀌고 계절의 공기가 바뀌는 동안 내 마음의 색깔(?)도 뭔가 바뀌었나 보았다. 언제나처럼 내 마음의 흐름에 따라 살아왔을 뿐인데, 언제나처럼 인생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그러나 알고 보면 제법 어울리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놓는다.


퇴사를 했다.

창업을 했다.


월급이 없는 삶이 시작된다.

출근이 없는 삶이 시작된다.


누가 1인출판사를 차리는 걸까? 내 경우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오래 편집자로 일하면서 제작 발주도 같이 담당하다가, 만들고 싶은 책이 생겨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져서, 즐겁게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일상의 순간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굳건해져서, 이렇게 1인출판사를 차렸다.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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