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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나물 봄동이 Jan 19. 2023

감자탕집에서 만난 사람들

어떤 눈빛들에 대한 이야기랄까..ㅎ

1.

20대 초반, 휴학생이었던 나는 감자탕집에서 서빙 직원으로 일했다. 낮 12시 오픈, 밤 12시 마감. 오전 청소를 마치고 얼마 안 있어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양손 가득 휴지를 비롯하여 뭔가를 잔뜩 들고 들어서던 그는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다. 문 열릴 때는 딸랑 종소리가 들렸고 그 종소리에 반사적으로 나는 “어서 오세요.” 인사를 했었다. 근데 그때는 ‘어서 오세요’ 하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가게에는 가끔 잡상인분이 오고는 했었다. 내가 환영 인사를 건네지 못하는 사이, 남자는 바로 입을 열고 말했다. “뼈해장국 하나 주세요.”

그와 눈이 마주쳤던 짧은 순간, 그는 알아챘던 것 같았다. 내 눈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그래서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로 성급히 주문을 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잡상인이 아니라 손님입니다. 그러니 그런 눈빛으로 보고 있지만 말고) 뼈해장국(이나) 하나 주세요.”

“맛있게 드세요.” 뼈해장국을 테이블에 놓으며 나는 고작 그렇게 말했다. 그가 다리를 절뚝이지 않았다면, 아무리 짐을 많이 들고 있었어도 나는 그를 잡상인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그 생각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살면서 자신을 보는 ‘다른 눈빛’을 수없이 마주하겠지. 사람들은 때로 상대방을 ‘그런 눈빛’으로 봐서 상처를 주고, 때로 자신을 향한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상처를 받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 눈빛이란 신기하지. 다양한 눈빛에 대해 주절주절 아무말이 이어질 듯하여, 일단 여기서 이 이야기는 종료.


2.

저녁에는 손님이 제법 많았다. 어느 날은 한 손에 자른 파인애플을 들고 있는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죄송한데, 나가주세요.’ 해야 하나? 손님들이 불편해할 수 있잖아. 근데 그게 그렇게 불편한 일인가? 누군가를 쫓아내는 모습을 보는 게 더 불편한 일 아닐까? 생각이 갈피를 못 잡는 동안 아주머니는 파인애플을 내게 먼저 내밀었다.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나는 괜찮다며 거절했다. 나는 파인애플을 좋아하지 않았을뿐더러, 일하면서 주전부리를 먹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자꾸 거절하자 아주머니가 슬픈 얼굴이 되었던가. 파인애플을 맛있게 먹는 것이 더 나은 인간의 행동이라고 내가 생각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일회용 접시에 파인애플 몇 조각이 놓였고 나는 한 조각 먹고 주방의 이모에게도 건넸다. “맛있네.” 주방 이모가 말했는지 아닌지 기억나지 않는다. 파인애플이 달았는지 아닌지도 기억 안 난다. 손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파인애플을 판매하려 애쓰던 아주머니가 환한 얼굴로 날 보며 “맛있죠?” 물었을 때는 “네.”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긴 한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어쨌든 그때 그 파인애플은 모종의(?) 거래(?)가 되었던 것 같다. 일주일에 한두 번, 파인애플 아주머니가 왔다. 딸랑 문이 열릴 때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고개를 돌려 ‘어서 오세요!’ 인사하려던 나는 종소리의 주인이 파인애플 아주머니면 ‘어서 오세요’ 대신 그저 눈을 맞추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얼굴만으로 나이를 제대로 파악하는 재주가 없는 나였음에도, 아주머니의 나이가 많지 않음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는 무슨 사연으로 이 겨울에 이렇게 가게를 돌아다니며 파인애플을 파는 걸까. 감자탕이나 고기를 먹는 손님들이 파인애플을 많이 사지도 않는데. 이상한 농담이나 불쾌한 행동을 하는 손님도 있는데. 굳이 보지 않아도 될 삶의 어떤 장면들을 내가 봐야 하는 게 못마땅했다. 나는 파인애플 아주머니가 반갑지 않았다. 내가 제일 바라는 장면은 아주머니가 잠깐 머물다 가는 동안 파인애플 몇 통을 팔고서 나와 눈인사를 나누며 깔끔하게 퇴장하는 것이었지만, 그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고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술에 취한 아저씨들이나 가족 단위로 온 손님들이 파인애플을 몇 통 샀을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주머니는 언젠가부터 오지 않았다. 가게 손님으로 파인애플 아주머니가 온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남편인지 어떤 아저씨와 오늘은 손님으로 왔다며 파인애플 팔러 올 때와는 다른 얼굴이었던 것 같은데, 가게 손님으로 왔던 건 파인애플 아주머니가 아니라 다른 걸 파는 아저씨 부부였던 것도 같고, 지금에 와서는 기억이 가물하다. 파인애플 아주머니의 얼굴도 어렴풋해서, 그 아주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려 하면 자꾸 다른 곳에서 서빙일할 때 친하게(?) 지냈던 주방 이모의 얼굴만 떠오른다. 나는 내 멋대로 그녀가 원래는 전혀 활발한 성격이 아니고 삶의 한 시기에 어쩔 수 없이 타인에게 친절한 얼굴로 파인애플을 건네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차갑게 말하자면 나 같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느낌이 거북했다. 지나고 생각하면 그런 나의 시선은 편견으로 가득한 것이다. 그녀는 원래 활발한 성격이지만 새로운 일을 하느라 쭈뼛댔을 뿐일지도 모르고, 그렇든 아니든 그건 크게 상관없는 문제이다.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모습,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꾸려나가는 태도, 그것은 스스로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었고 타인이 함부로 가엾게 여길 일도 아니었다.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이 그래야 했듯이.


3.

감자탕집에서 나는 제법 일을 잘하는 직원이었는데, 진상손님(?)을 차단하기(?) 위해, 공식적으로는(?) 가게 젊은(?) 사모님의 사촌동생이었다. 실제로 사모님이란 호칭 대신 ‘언니’라고 불렀고, 일찍 결혼해서 이미 애가 둘이었지만 30대였던 사모님이었기에 사모님보다 언니라는 소리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나를 ‘처제’라고 부르며 편하게 대해주던 사장님이었지만 ‘형부’라는 호칭은 쉽게 나오지 않아 거의 안 불렀지만. 아무튼... 가게의 단골손님 중 늦은 밤에 오는 중년 부부가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아마 그땐 들어서 알았겠지만 지금 잊었지만, 뭔가 영업을 마치고 늦은 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하는 느낌이었다. 아저씨는 꼬리뼈 부위를 좋아해서, 오시면 주방 쪽에 꼬리뼈 좋아하는 아저씨 왔다고 말해서 꼭 꼬리뼈 부위를 챙겨주고는 했다. 그렇게 구는 것이 ‘까탈스럽다’고 생각하는 아주머니는 민망해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고단한 노동으로 주름진 얼굴을 지닌 부부였지만 두 분 다 행동이 고상하달까, 특히나 아주머니는 말투도 그렇고 여러모로 품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복학하면서 대학교 근처로 다시 갈 예정이었고, 그래서 곧 일을 관두는 상황이었다. 얘기를 들은 부부는 굉장히 아쉬워했다. 일을 완전히 관두기 며칠 전, 두 분이 언제나처럼 늦은 밤에 왔다.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며, 아주머니는 내게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너무 별것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얼굴 못 보기 전에 뭐라도 주고 싶었는데, 일이 바빠서 뭘 제대로 살 수도 없었다며... 비닐봉지 안에는 포장이 안 된 양말 몇 켤레와 포장이 된 도톰한 덧신이 있었다. 포장도 초등학생 때 친구에게 선물 줄 때처럼 광택 있는 포장지에 싸서 위를 리본끈으로 묶은 추억의 포장.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퇴근할 때면 양말이 더러워져 있는데, 그걸 보셨던 걸까. 아들이 둘 있다 그랬던 것도 같고, 아저씨가 며느리 삼고 싶다는 농담을 해서 아주머니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타박했던 것 같은데, 지금에 와선 기억이 가물해서 그게 이 부부 손님이었는지 다른 손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주머니의 태도와 시선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자신의 아들보다 어린 여학생, 휴학하고 사촌언니(진실과는 달랐지만ㅎㅎ)의 가게일을 열심히 돕는 성실한 청춘...을 바라보는 ‘기특하다’가 깃든 눈빛과는 좀 달랐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회사 직원들에 대해 두 분이 얘기 나누는 걸 들으며 ‘사장 마인드’이지만 ‘직원 마인드’에 가까운 태도였던 아주머니의 말에 공감하며 아주머니를 속으로 더 좋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모르긴 몰라도 성격 급한 아저씨 때문에 고생이 많았지만, 아주머니의 현명함 덕분에 아저씨가 덕을 많이 보셨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주머니는 내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면서 일머리 좋다며 칭찬 혹은 감탄을 하며, 한 사람의 노동자로 나를 존중해주었다. 아, 쓰다 보니 봉투에 3만 원인가 용돈도 받았던 것 같은데, 이 아주머니였는지 아님 다른 손님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ㅠㅠ 옆에서 언니(사모님)도 그럴 땐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래서 뭔가 단골손님들한테 몇몇 선물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말이지. 그냥 검은 비닐봉지 속에 포장까지 되어 들어 있던 양말 선물이 내게 너무 인상적으로 남아서, 그 선물을 받았을 때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선명해서, 다른 기억은 다 희미해졌네ㅋㅋㅋ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하는 진심 어린 마음이 담긴 선물. 누군가의 위에서 상대방에게 베푸는 마음으로 주는 느낌이 아니라 동등하게 혹은 상대를 더 높게 바라보면서 건네는 선물. 진심이 전달되어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선물. 뭐 그런 선물이 내게는 검은 비닐봉지 속 양말 선물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평소 그분에 대한 내 마음이 호의적이었기에 더 감동으로 다가왔던 걸 테다. 평소 그분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나는 좋아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따스한 애정이 담긴 감탄과 응원과 지지의 눈빛’이었다고나 할까.


4.

쓰다 보니 십수 년 전, 20대 초반의 어렸던 내가 떠오르고 그곳에서 마주한 어떤 사람들이 떠오르고, 내 속에 남은 어떤 순간들이 떠올랐다. 알고 있었지만ㅋㅋㅋㅋ 새삼 나는 제법 열심히 살았었구나, 싶고. 잊고 있었지만ㅋㅋㅋㅋ 몇 개월간 일했던 그곳에서 나는 제법 사랑받았었구나, 싶었다. 그때 내게 인상적인 순간으로 남은, 열심히 살아갔던 여러 사람들이, 어디선가 열심히 또 즐겁게 또또 평화롭게 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5.

이 글이 쓰인 데의 5할은 김신지 에세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의 존재가 차지한다. 최근 읽은 책이다. 어쩐지 읽으며 김달님 작가님이 떠올랐는데, 그러니까 뭐랄까, 나의 세계와 비슷한 세계, 내가 만난 사람들과 비슷한 얼굴의 사람들을 보여준다는 생각에서. 근데 두 분이 친구(?)이신 듯하여 더 반갑고 좋았다. 3할은 작업책방씀의 미화리님의 유튜브에게 빚졌다(?).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직접 보진 못했음)에서 미화리님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를 추천하며 파인애플 파는 분처럼 말했다. “당도는 내가 보장해!” 책을 읽고 그 말을 접하면서 어쩐지 예전에 나를 스친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1할은.... 1인출판사 ‘책나물’ 원고 교정교열을 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차지한다. 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일 하고 싶은 거, 다 그런 거 아닌가요? (아님 말고요... 소심ㅎㅎ) 마지막 1할은 전자책으로 출간하겠다고 신나서(?) 인스타그램에 공개적으로 써놓은 <편집하는 삶> 원고....를 쓰려니 딴짓하고 싶은 마음에.... 작가들은 어떻게 끝까지 달려가는 걸까? 너무나도 ‘조용한 관종’ INFP 나지만, 말 그대로 조용한 관종이지 대놓고 관종은 못 되는 터라ㅋㅋㅋㅋ 얼른 써서 세상에 나의 이야기를 선보이고 싶다!! 이 이야기에 대해 사람들의 평을 듣고 싶어!!! 이런 마음이 별로 없...나... 봐....ㅋㅋㅋㅋ 왜 쓴다고 했지, 제작비 마련에 도움이 되려고 그러는 건데, 도움이 되는 건 맞겠지, 이 귀차니즘 어쩌나... 하는 마음이랄까ㅋㅋㅋㅋ 이 글을 다시 주욱 읽고 퇴고를 해야 하는데 귀찮고. 이제 책나물 원고 교정교열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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