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사고 팔지 말아요!
"사고 팔았던 사람들의 사이는 거래가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주고 받았던 사람들의
사이는 그 주고 받음이 끝나도 이어지는 그 무엇이 있다. "
- 삼국지, 나관중 지음, 이문열 평역, 민음사, 1988
내향적인 나는 친화력도 떨어지고 낯가림도 심해서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편이 못 된다. 하여
사회 생활도 둔감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이 우스개소리로, "너는 '학교-집-교회',
'학교-집-교회'만 반복해서 사는 거 아냐?" 이럴 정도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면서도 그런 생활 범위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러다 직장에서 알게 된 분의 소개로 독서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나. 나는 꾸미고 운동하고 가꾸는 데에는 좀 게으른 편이나 무언가를 시작하면 은근하고 오래 가기에 다달이 참석하진 못 하더라도 밴드에서 종종 댓글 달며 여지껏 모임의 일원으로 남아있다. 남아 있다기보다 아직까지는 떨어져 나가지 못한 겪이랄까? 아무튼 몇 달 전부터 나누는 책은 이문열 평역의 이름도 그 유명한 삼국지. 책 좀 본다는 사람치고 삼국지에 대해 논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테지. 천하의 영웅 호걸들이 우위를 두고 다투는 이야기인지라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에게 더 익숙하고 매력적인 소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구는 지금껏 수차례 읽었네 마네 하고, 무수한 고사가 나온 고전이라 꼭 읽어봐야 된다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모름지기 큰 일을 하려면 야망과 배포가 두둑해야 한다며 진취적인 면을 키우라는 주문부터... 예상되는 반응을 지나 나는 우선 지난 달 선정도서인 4권까지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다. 그 후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고 마음에 둔 책을 사서 책상 위에 놓아두고. 이래저래 시간이 지나 이번달은 아직 5권도 다 읽지 못했는데 어느 덧 독서 모임 날짜는 다가오고. 이거 큰일이다!
모르겠다, 최대한 읽을 수 있는 부분까지 읽어가자. 모르는 건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참고하면 될 터. 못 읽은 것은 죄송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랴. 이럴 때는 만사 오케이, 똥배짱인지.. 내 마음을 사로잡은 문장은 유비의 뒤를 쫓는 조조의 탄식이다. 이문열 작가의 평역에서는 '삼국지연의'를 지은 지은이가 유비를 두드러지게 나타내고자 조조를 낮추어 말한 부분도 있다고 하는데. 자기 한 몸 살고자 도망치기도 어려운 때에 유비는 자신을
뒤따르는 수많은 백성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 거북이 걸음 마냥 느릿느릿 목적지로 피신중.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달콤한 말과 큰 상으로 환심을 산 뒤 큰 잘못을 한 이라도 인재로 기꺼이 등용하고, 현실적 판단이 빨라 상황에 불리한 조건들을 미리 제거하는 조조. 가는 곳마다 백성들을 위해 제도를 고치고
세금을 덜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 하고 사기만 했을 뿐이라 판단한다. 때로 바보같이
이상주의자이고 원칙을 고수하는 유비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백성들의 보살핌을 얻을
정도로 딱한 처지인데도 이상하게 백성들의 마음은 조조가 아닌 유비에게 가 있다며 속으로 중얼거리는 부분이
내 마음에도 와닿았다.
"선생님, 이 머리핀 하실래요?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네? 아, 네... 주세요, 할게요!"
"할머니가 하시던 거예요."
"아아... 괜찮아요. 귀엽네요."
하늘색 꽃이 세 개 나란히 붙은, 플라스틱 핀이었다. 난데없이 그 머리핀을 나에게 건넨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뒤에 그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어서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나는 무언가를 받는데도 익숙하지 않아서 무엇을 받으면 당장 보답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었다. 자신에게는 필요가 없어서 마침 옆에 있던 내게 핀을 주었을 뿐인데도 나는 받은 게 고맙고 미안해서 책상에 있던 무언가-사탕이나 초콜릿 정도가 아니었나 생각됨-를 그에게
주었다.
"바로 '기브 앤 테이크'네요. 저는 이런 거 안 좋아해요!"
'영어 선생 아니랄까봐 기브 앤 테이크 하기는... 근데 좀 그렇지?' 라는 속마음은 숨긴 채로,
"아... 죄송해요! 저는 그게 아니라 너무 고마워서......."
"할머니가 쓰던 거 드린 건데요. 비싼 것도 아니고."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맙잖아요. 이 핀 귀엽네요. 마음에 들어요. 집에서 할게요. 그리고
다음에는 '기브 앤 테이크' 안 할게요.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머리핀 하나로 그런 대화를 나누었던 게 생각난다. 그 선생님이 지적한 건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선물한 것에
몇 초도 지나지 않고 대응한 게, 정을 주었던 것에 대한 실례라고 느끼셨나 보다. 누군가 날 위해 주면 그 마음을
기쁘게 받을 줄도 알아야 하고. 자본주의의 방식처럼 1주면 1받고. 이런 딱딱함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별로 좋지
않겠구나, 하는 교훈도 얻었다.
저 대목에서 백성과 함께 도망가는 유비는 자신의 안위보다 자신과 함께 하는 이들을 끝까지 걱정하고 지키려고 애쓴다. 냉정한 계산에 의해 득과 실을 따져 행동하기보다 의를 저버리지 않는 그 마음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고 따르고 힘이 없고 연약해보일지라도 유비 곁에서 함께 수고하고 고난에 동참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고 바라보고 있나? 날이 갈수록 나의 사람됨은 나이지고 있나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다. '사고 파는 관계'가 아닌, 주고 받음이 끝나도 이어지는 그 무언가'가 당신과 나 사이에도 존재하기를, 그러기를 바래본다. 너무 어려운 기대라면... 그렇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