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감수성, 끈질긴 노력, 그러나 이해받지 못한 자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 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1882년 7월, 화가의 의무)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기고 엮음, 예담, 2017
나는 인터넷 서점인 '알라딘'에서 주로 책을 구입한다. 수업에 필요한 교재부터 개인적으로 읽고 싶은 책, 선물할 책 등 필요한 책들은 거의 다 알라딘에서 사는 편이다. 개인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마일리지가 쌓이고 어느 정도가 되면 적립금을 활용할 수 있다.
오늘도 5만원 이상 책을 사면 18주년 북마크를 준다는 '굿즈 이벤트'에 넘어가서 6만원 어치나 주문을 했다. 돈을 최대한 아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읽는 편인데 신간이라 도서관에 없는 책들은 사기도 하고 굿즈가 마음에 들면 상품에 눈이 멀어 무리할 때도 있다.
며칠 전 주일학교 우리반 아이의 생일이 7월이라 그 아이가 교회에 출석한 김에 예배를 드리고 다같이 피자를 먹으러 갔다. 아침에는 멀쩡하던 하늘이 어느 새 어두워지더니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5만원 이상 책을 구입한 사은품으로 알라딘에서 받은 앨리스 토끼 3단 우산을 가방에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7월 생일자 아이를 비롯 총 세 명의 아이들은 아무도 우산이 없었고 우리는 피자를 먹으러 매장에 가기 전 이동 수단이 필요했다. 차가 없는 나는 동생을 불렀고 동생차에 실려 무사히 피자를 먹고 내가 가지고 있던 우산은 생일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체크 카드에 5만원이 들어있었고 피자값은 4만 6천 얼마쯤으로 나온 것 같은데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는다. 피자값을 계산하고 체크카드에 남은 몇천 원으로 오랜만에 교회에 온 생일자에게 비닐우산이라도 선물하려고 편의점에 들렸는데 비닐우산이 없었다. 최저가가 6천원이란다. 다른 곳에 들려서 물어보니 딱 하나 남은 비닐 우산은 4500원이라고 한다. 잔액 부족으로 새 비닐 우산은 구입할 수 없다는 현실을 안고 가지고 있던 우산을 주고 말았다. "우산 사야 하는데..."라는 그 아이의 말이 맴돌아서 꼭 새것으로 사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여러 권의 책을 읽다보면 각각 책갈피가 필요한데 내가 들고 있는 책갈피는 골고루 책 속에 꽂혀 있고 북마크 중 종이 세트는 6개 정도 들어 있길래(나중에 집으로 도착한 걸 확인해 보니 정확히 10개였다) "앗싸, 이거다!" 싶어 질러 버렸다. '나도 모르겠다, 무리해도 그냥 주문하자'고 주문액을 입금하고는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우르르 쾅!" 하고 불이 번쩍이는 것이다. 오랜만에 듣는 천둥소리에 놀란 나는 열어 두었던 창문을 차례로 닫고 선풍기도 끄고, 약간 겁에 질린 채, 학부모님께 문자를 드렸다.
'천둥이 치고 나서 폭우가 쏟아지네요. 오가시는 걸음 험난할까 오늘 수업은 다음주로 연기할게요.' 이렇게 보내고 30분이 지나자 말갛게 변해버린 하늘. 그럼 나는 무얼 한 거니? 아무튼 몇 시간의 휴가라고 생각하고 저녁 수업을 가기 전 책을 계속 읽어나갔다. 고흐의 인문학적 소양에 조금씩 놀라고 감탄하게 되고 그가 이토록 멋진 문장들을 사용하여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던가 싶다. 나는 동생에게 카톡도 잘 보내지 않는데 6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자신의 후원자인 남동생에게 보내는 형의 마음이, 예술에 대한 진심이 전해져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 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편지 속에 나타난 그의 말이 내 가슴을 두드린다. 요즘 '길 위의 인문학' 이라는 도서관 강좌를 들으면서 책에 대한 집념과 글쓰기에 대한 태도가 사뭇 진지해짐을 느낀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도 늘어났고, 읽고 싶어서 산 책도 늘어났다. 더불어 '작가란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 한 구절이 저절로 떠오르고 너무 아픈 삶을 산 예술가인 고흐가 안타까워 조금 우울해진다. 가난해서 동생의 후원금을 받아 그림을 그려가고 배워가고 습작을 하고 사람들이 이제는 살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동생에게 늘상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 속에 이리 저리 치이는 것 같은 피곤한 나의 일상이 겹치는지도 모른다.
다시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그렇다면 학부모님에게 보낸 나의 문자 메시지는 틀리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비가 잠깐 그쳐도 언제 다시 폭우로 변해서 우리 발목을 잡을지 모르니까. 어쩌면 이런 날씨에 바지 다 젖어가며 수업을 꾸역꾸역 하고 싶지 않은 핑계 거리가 생겨서 좋은지도 모르겠다. 고흐를 정신병원까지 집어 넣으려고 했던 엄격한 그의 아버지는 대체 아들의 심정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럴 때 경건한(?), 아니 거룩하기만한 종교인들이 무서워진다. 아무튼 고흐의 편지를 읽으며 자신의 외모조차 돌보지 않아 고생스런 흔적이 배인 자화상을 남길 수밖에 없던 한 화가가, 예술가가 비 내리는 저녁,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
'나도 그처럼 진지하게 작품을 탄생시키기까지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가지고 버텨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오늘 같은 날, 하루 수업 안 한다고 죽지는 않겠지. 이것도 누군가의 귀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허세 가득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사진 : 내 방에 함께 누워있는 책
※ 양장본으로 된 책은 무겁지만 그만큼 소장하는 가치를 더해준다. 실로 엮은 튼튼한 제본, 책갈피 역할을 하는 줄, 예쁜 겉표지. 하나의 책이 탄생하는 과정도 예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