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
한 인간으로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일을 처리하는 방식

by 윤작가

"나는 그녀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보았다."

- <<숨결이 바람될 때>>, 폴 칼라니티, 흐름 출판, 2016


청소를 하다 식탁 의자에 아무렇게나 놓인 신문 꾸러미가 눈에 들어왔다. 지저분하게 보였다.

지금 나는 청소 중이니 치우는 김에 이것도 좀 정리할까? 그러다 이 책 제목이 눈에 띄었다. 원래 첫눈에

반해야 사랑에 빠질 수 있고 직관에 따라 일을 처리하기도 하는 나에게 운명처럼 발견된 책, '숨결이 바람될 때'.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제목이 얼마나 시적인가?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숨결이 바람이 된다고? 숨결이 바람이 되다... 어떤 걸까? 그것보다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죽음이라는 소재가

나를 더 끌어들였다. 되기도 힘들고 수행하기도 힘든 의과 공부를 마치고 의사로 들어선 서른 여섯의 젊은이는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그게 너무 궁금해서 신문을 눈으로 읽는다.


이 책을 보니 예전에 공학 교수였었나? 그 책도 대단히 감동스레 읽었는데 지금은 제목도, 저자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분도 교수로서, 조카를 둔 삼촌으로서 대단히 인자하고 삶에 대한 가치가 깊었었는데...

아무튼 읽어야 될 책으로 신문에 난 책 제목을 폰 카메라로 찍었다. 언젠가는 읽으리라. 그리고 도서관에 들린

김에 빌려왔다.


나는 학원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회 주일학교에서 샘으로 아이들을 만났기 때문에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주시는 학부모님과 얘기도 나눠야 하고, 주일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간식도 사줘야 한다. 또한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른 선생님들과도 나눠야 한다. 지금은 인문학 수업을 해서 좀 나은 편이지만 예전 입시 학원에서 일했을 때는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 매기는 일이 지겨워 내 삶이 무너지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똑같은 내용을 여러 번 설명하고 아이들이 푼 문제를 점수 매기고. 시험 몇 주 전부터 시험 대비 계획을 짜서 평소보다 몇 시간 더 보강을 시키고 주말에도 나가고. 점수에 연연하는 그런 삶이 무의미하고 권태롭다고 해야 할까? 봉급을 주신 원장님들께는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나는... 아니, 어쩌면 학원에서 오래 일한 샘들은 그 느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점수가 못 나오면 학부모님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아이 하나 떨어지면-학원을 그만두면- 원장님 눈치를 살펴야 하고, 내 가치가 아이들 머릿수나 점수에 반영되어 매겨지는 삶.


열심히 임용 공부해서 연금 나오고 방학 긴 학교 선생님이 되었으면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쉬는 시간 짬 내어 읽고 싶은 책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고, 아이들과 함께 하고 그들만 보던 나는 정작 나 자신은 나이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청춘을 그 속에서 보냈다. 간혹 담임을 맡은 우리반 아이들과 문자를 주고 받거나 정을 쌓아가는 일. 그런 데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일의 보람을 느낀 적도 여러 번.


"돈으로 봐라. 그러면 그 아이들이 소중하게 느껴질 거다."는 어머니 말씀도 물론 맞는 말이다. 또 애들 중에는 그걸 약점 삼아 샘이 마음에 안 들면 학원에 안 온다는 걸로 협박 비슷하게 겁을 주는 당돌하고 건방진 놈들도 있었고.


내가 그 긴 시간을 아이들을 바라보며 견딜 수 있었던 건, 내가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나의 체력이, 물질이 결코 헛되지만은 않으리라는 생각. 이들이 비록 어려서 내 심정을 다 이해하지 못 해도 나만큼 나이 들었을 때 뒤돌아보면 나의 말 한 마디가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 그 아이들의 영혼에 위로가 되고

성장에 자양분이 되었으면 하는 사명 아닌 사명감.


너무 말대꾸를 심하게 하거나 사춘기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버릇 없이 대드는 아이는 정말 힘들었다. 나를 피곤하게 하고 지치게 만드니까. 그래서 내가 하는 일에도 회의가 들고 때로는 자괴감까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저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그래, 사람을 대하는 건 무언가를 처리하는 게 아니야. 사람과 대화하는 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건 살아있는 생명과 생명이 만나는 거고 그건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대답하면 안 돼. 그런데 이 못난 선생은 가르친 경력 좀 됐다고, 이제 너란 사람은 어느 정도 보인다고 나도 모르게 막 대하거나 성의없이 대답하거나 내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말해놓고는... 아차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저 문장을 보며 다시 내 삶의 방식을 되돌아본다.


누군가 그랬다. 성폭력을 당한 사람들을 조사하는 경찰이나 사람들 중에 피해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여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사건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고. 그건 일로 생각해선 안 되는 거라고.

사건이나 문제로 치부하고 서류 작성하듯 떠넘겨야 되는 그런 성질이 아니라고. 한번씩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또는 전문가로 학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내가 마치 다 안다.'는 식으로 미리 재단하고 판단해버리며 쉽게 말하는 건 아닌지 겁이 난다.


그분들에게는 세상과 바꿀 수 없는,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인데 나는 그냥 너무나 객관적인 태도로 딱 잘라 말할 때는 없었나? 아직 미혼이라 자식을 낳아본 경험이 없기에 부모의 심정을 잘 모르는 건 아닌가? 조심해야지. 그러면서도 실수할 때도 생긴다.


의자로서 환자를 대할 때 수술할 사항에 대해 얘기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시간이 들어도 이러이러한 점이 생길 수 있고 이런 식으로 대처할 수 있으며 수술 후 이런 결과가 있을 테니 어떻게 하시겠냐고 묻는 폴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저런 의사 선생님이었구나. 저렇게 환자를 아끼고 귀하게

보는 사람이었구나. 더불어 내 모습도 자꾸 비교하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제자들에게 선을 그어 가능성까지 잘라버린 적은 없는지. 현재의 모습이 아닌 그들의 미래를 보고 희망어린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해주었는지...


그래서 저자의 삶의 향기에 반해 책을 자기 전에도,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나는 이동 중에는 책을 안 보는 편이지만-잠들기 전에도, 성경 읽기도 미루어 놓은 채 푹 빠져서 읽었는지도...


하루에 한 편씩이라도 부지런히 글을 적겠다는 결심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다. 그리고 내일도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물론 그들은 재빨리 수업을 해치우고 친구들과 놀려고 하겠지. 그건 누구나 드는 마음일테고.


"나는 제자들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내게 웃음을 짓게 하는 귀여운 악동으로 보아야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상황에서 넌지시 빠져나와

객관적인 시각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길 권한다. 그리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대가 눈 앞에서 사라지기를

간절히 빌기 전에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연약한 질그릇 같은 존재임을 상기시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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