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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Sep 27. 2023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시상식

길 잃은 어린양을 구원하라

소망은 크게, 욕심은 낮추고


월요일, 서울에 다녀왔다. 시골쥐가 오랜만에 공식적인 일정으로 한양에 가게 되었다. 그 이유는 <2023 세움 북스 신춘문예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죄송하게도 이 출판사를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대략 10년 동안 200권의 책을 출판한 곳-어느 블로그에서 본 바로는-이라는데 이렇게 몰랐다니... 죄송하다. 이 땅에 수많은 출판사와 관계자들이 있다. 심지어 내가 일하고 있는 학원 대표님도 출판사 편집인이다. 독립출판과 일인출판 등 많고 많은 출판사들이 있는데 아직 모르는 출판사와 책들은 얼마나 많을까 싶다.


작년 이모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마음이 휑했다. 이모는 일본에서 매일 국제전화를 통해 어머니와 일상을 나누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같이 마음 써 준 고마운 이였기에 낙심의 깊이가 다른 때와 조금 달랐다. 코로나 때 대면 예배가 중단되고 신앙도 바닥을 치던 때, 이모를 통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CBS <새롭게 하소서>에서 장애인 사역에 마음을 기울이고 애쓰는 서진교 목사님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궁금함이 생긴 나는 곧바로 책을 샀다. 그 책이 세움 북스의 <<작은 자의 하나님>>이었다. 중독자, 노숙인, 목회자, 다음 세대가 작은 자라는 책의 콘셉트가 신선했고. 지금은 소천한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지독한 노름 중독자였으므로 남 일 같지 않았다. 그 책에 이어 평소에 잘 읽지 않던 신앙 서적을 줄줄이 읽었고 세움 북스라는 출판사 이름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세움 북스에서 신춘문예를 연다는 소식을 보았다. 사실 신문사에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작가를 배출하지만, 들어가는 문이 아주 넓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읽고 감동받고 자극을 준 책을 출판한 곳에서 신춘문예를 연다니 소망이 생겼다. 그런데 이곳은 기독교 출판사이다. 그 말은 삶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믿는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지만, 자랑할 만한 것이 없었다. 교회에서 직분은 가지고 있지만, 사실 부끄러운 게 더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망설였다. 덕이 되지 못하면 어떡하나? 물론 글에 대한 마음과 글쓰기에 대한 사모함은 여전하지만, 기독교인으로 부끄러운 점이 많은데 응모해도 될까? 그런 마음에 주변 분들에게 응모해 보라고 넌지시 양보(?)했다.


글쓰기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내가 권유한 분은 모두 네 분이었다. 아프리카 선교사를 했던, 멘토인 언니. 청소년들을 심하게(?) 사랑해서 방황하는 애들에게 라면 끓여 먹이고, 울며 기도하고, 전도하러 다니는 어느 목사님. 전시회에서 그림을 샀던, 좋아하는 작가님. 청소년 심리를 공부 중인데, 아들이 게임에서 만난 크루를 집에 데려와 일주일 넘게 있어도 일일이 밥 먹이며 새 양말 사서 신으라고 하는 선생님. 그런데 이상하게 그분들이 다 거절을 하셨다.

"긴 글은 적지 않아서..."

"저는 글은 아니에요."

"나는 글쓰기는 자신 없고, 글쓰기에 관심 있는 분에게 알려드릴게."

"소재가 생각나면 써볼게요."


이것도 공부의 일환이 아닌가. 마음이 있는 사람이 써야지. 자꾸 핑계되고 피하지 말자, 하는 심정으로 직접 도전했다. 그런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소재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5월 30일이 마감인데 5월 초가 될 때까지 마땅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는 가정의 달을 기념해서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예배 후 탕후루를 만들기로 한 어느 날이었다. 그때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다. 설교 중에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고, 그 개념을 중심으로 써 내려갔다.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예배를 드리고 탕후루를 만들고 집으로 와서 컴퓨터에 앉아 그냥 썼다.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은혜인 것만 같다.


합격자 발표가 한 번 연기된 후, 기독교 수필 가작으로 당선되었다는 문자 도착. 너무 기뻐 눈물이 나올 뻔했다. 당선되어도 가작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욕심은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달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기도했는데 막상 당선되니 얼마나 기분 좋던지.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시상식이 있는 장소로 찾아가는 길이 발목을 잡았다.


길 잃은 어린양을 구원하라


외국에서 시상식을 여는 것도 아니고 같은 대한민국에서 여는데 무슨 문제인가 싶지만. 내가 사는 곳은 지하철이 없기에 버스나 택시만으로도 목적지에 충분히 갈 수 있는, 서울에 비해 한적한 곳이다. 서울 지하철은 노선도 많고 환승도 해야 되고 출구도 잘 찾아야 하는데 그게 자신이 없는 것이다. 공감각 능력이 부족하고 운동 신경이 떨어지는데 혼자 약속 장소로 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지가 큰 근심거리였다. 글은 혼자 써서 제출하면 되지만, 이것은 다른 문제. 시험 기간 학원 수업도 있어서 누구에게 대체를 맡기기도 어렵고, 눈치도 보였다. 그래서 한 시간만 원장님께 부탁을 하고 왕복 비행기를 끊었다. 그런데 얼마 후 돌아오는 비행기가 결항되어 다른 항공사에서 더 비싼 가격으로 다시 예매를 했다.


다음은 길 잃은 어린양을 구원할 길 도우미가 절실했다. 서울에 있는 멘토 언니는 병원 진료가 있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럼 아는 사람이 없는데... 지하철 혼자 못 타서 시상식에 못 간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축하해 준다고 오라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혼자라도 가겠다고 우선 말씀은 드렸다. 걱정이 되었는지 출판사 대리님이 길을 알려주신다고 친절히 말씀하셨지만. 길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문제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가이드 경험이 있고, 길눈 밝은 제자가 휴무라서 그날 동행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선생님의 일에 나서줘서 얼마나 고맙던지. 천사의 강림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약속 장소에 지각하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


길 도우미가 가고 싶었던 곳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을 닫아 다른 식당을 찾았다.

오전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올라온 제자와 공항에서 만나 시상식이 열리는 3시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선생님을 위해 하루를 기꺼이 내어준 제자를 위해 점심과 음료수, 저녁 햄버거를 대접했다. 제자가 꼭 가고 싶었던 식당은 마침 휴무라서 다른 곳을 찾았다.

제자는 인터넷만 보고도 거침없이 척척 목적지에 가고 아무런 긴장도 하지 않고 살아있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부럽기도 했지만, 사실 다닐 때는 그런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길 도우미가 가는 대로 쫓아다니기 바빴다.

부모 꽁무니만 따라다니는 어린아이처럼. 목자 음성 듣고 그 발자취 따라가는 어린양처럼, 그렇게 길 잃지 않으려고 열심히 다녔다.





아름다운 사람들

이왕 서울 간 김에 풍경이 고풍스러운 한옥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고, 근처에서 어머니 선물인 챙 베레모와 동생의 스카프구매

점심을 먹고 주변에 소품샵들이 많길래, 서울 온 김에 어머니와 동생 선물을 샀다. 멋쟁이인 어머니를 위해 챙이 있는 베레모를 하나 사고. 두 개 만원인 스카프를 어머니와 동생을 위해 골랐다.

조카들과 내 것까지 사기에는 이미 많은 비용을 지불해서 통과!


비행기 왕복 티켓, 제자 편도 티켓, 처음 도움을 요청했던 멘토 언니는 선교 여행 도우미로 섬기러 가서 경비에 보태라고 상금의 반을 미리 보냈다. 점심, 다과, 선물, 저녁 햄버거 등. 상금을 뛰어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시상식 나들이를 위해 열심히 걷고, (돈) 쓰고, 정신없이 쏘다녔다.


비행기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면. 집으로 들고 갈 짐이 적었다면. 기분에 취해 이것저것 더 많이 사서 여러 사람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요즘 '핫'한 소금빵을 출판사 직원분들 선물용으로 샀다. 다른 빵들은 다 품절이고 소금빵만 2시에 판매 시작. 하마터면 이것마저 놓칠 뻔했다.

돌아올 때 작은 문제도 있었다. 비행기 티켓을 대행사에서 예매해서 한글이 아닌 영문으로 예약이 되어 수속을 밟을 때 다시 한글 티켓으로 바꾸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항공사 직원이 있는 카운터 앞 작은 선반에 시상식 때 받은 상패를 놓고 비행기를 탈 뻔했다. 티켓만 챙기다가 아차 싶어 곧장 달려가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엄한 곳에 상패 혼자 덩그러니. 주인 잘못 만난 상패는 무슨 죄! 그래도 금세 생각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전체 사진을 찍을 때도 나만 꽃-제자가 축하 의미로 사준 귀한 선물-을 들고, 혼자만 상패를 눕혀 들고, 긴장된 순간도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무사히 잘 마쳤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축하해 준, 서울에 살고 있었던, 살고 있는 사촌 동생의 존재도 새삼 깨달았다. 만약 제자가 시간이 안 되었다면 동생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책 속 내 글을 읽고 한 마디 하셨다. "아빠가 노름해서 글 쓰게 됐네!"

혼자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다. 가작이어도 수상의 기쁨과 동행해 주고 축하해 주고 격려해 준 수많은 사람들.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한쪽 눈의 혈관이 터져 수술을 했어도 <지공체> 모임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피드백과 가르침을 주셨던 안상헌 작가님께 특히 감사드린다. 힘든 상황에서도 못난 제자를 위해 좋은 것을 나눠주신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또한 도서관 글쓰기 강좌에서 만났던 <글친> 동아리 작가님들과 독서모임 회원들. 같은 직장에서 만났던 인연들. 기도하고 글 쓰고 있냐 압박과 애정과 관심을 보여준 사람들. 모진 인생, 곁에서 큰 울타리가 되어준 어머니와 가족들.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되고, 힘이 되는 작가님들.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무엇보다 첫 독자이자 영원한 나의 독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이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감각은 무뎌지고, 기억은 흩어질 것이기에 시골쥐의 시상식 나들이를 기록으로 인증하며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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