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받음이 내게 유익이라

거룩한 성장

by 윤작가

때로는 대화조차 힘이 들 때가 있다. 상대를 바라보고 계속 집중하여 상대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말을 하며 같이 따라오는 눈빛에 깃든 표현들, 눈썹, 입 모양, 손 동작 등. 나는 아플 때는 듣는 것도 힘들다.


어머니의 일상을 듣다가 그것마저 온전히 해드리지 못하고 속으로 힘들다 하는 내가 참 인간?답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때로는 겁이 난다. 어머니가 점점 연약해지는 것을 볼 자신이 있을까? 내가 삶의 무게에 꺾이어 먼저 나가떨어지진 않을까? 난 아플 때 더욱 생각이 많아진다.


히스기야는 전천후 왕이었다. 산당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버리고 다만 한 제단 앞에서 예배하고 그 위에 분향하라고 백성들에게 명했다. 그 자신 먼저 본보기가 되었다. 나라는 강령했고 많은 이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임금. 두려울 것도 부족한 것도 없던 그가 병에 걸리자 달라진다.


병들어 죽게 되자 벽을 향하여 결사적으로 기도를 올린다. 눈물로 간절히 호소하던 왕에게 신은 15년의 명수를 더하고 어느 새 다시 교만해진 왕은 사절단에게 모든 것을 내보이고 만다. 그리고 멸망될 것임을 통보받는다.


날마다 성경을 몇 장씩 읽으나 습관적으로, 의식적으로. 읽어야 하니 읽고. 깊은 묵상 대신 오늘 읽었다에 만족, 미뤄진 일 하나 쳐내듯 그렇게 지나온 시간들. 그분의 안타까운 기다림은 계속되고 결국 감기에 몸이 바닥이고 나서야 다시 그분 앞에 나아갈 마음을 먹는다.


때로는 사는 게 고달파 본향으로 가면 편하겠다 싶은 때가 있다. 오늘 입금이 되면 이제 얼마가 더 있으면 집값이 맞춰지네, 다음주는 이거 내야 되네. 계산기 열심히 두드려가며 머리를 쥐어짜고 카스에 집 자랑 아닌 자랑으로 보이는 지인의 사진에 속은 터져 나간다. 누구는 새 집 지어 정원에 꽃 피었다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자는데 흠, 나의 심정을 알기나 알까? 엄마 아빠 잘 만나 돈 걱정 안 하고 공주병 마냥 흥흥 웃어가며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사람이 인생의 쓴 맛을 알기나 아냐,는 비뚤어진 마음부터 그 놈의 아빠만 아니었어도 나는 지금쯤...으로 시작되는 신세 타령의 유혹.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나는 다시 깨어나려 한다. 다시 그분 앞에 고개 숙이고자 한다.


"주님, 그 누가 뭐래도 저는 당신 딸입니다. 세상이 욕해도 저는 당신 딸입니다. 그 누구의 인정 없이도 저는 당신 딸입니다. 고로 저는 제게 주어진 이 모든 일을 기꺼이, 기쁘게 감당코자 합니다. 제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이제 마음껏 드러내고 아빠 딸이라 선포합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요. 제 십자가는 제가 지고, 그러나 저 혼자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께 오롯이 다 드리고 저는 다시 마음을 갈아 엎고자 합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아버지 손에 맡기고 제 힘이 아닌 당신이 부어 주시는 그 힘으로 일어서고 싶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신하가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 질러 백성들의 마음이 물 같이 녹으려 하기 전 ,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대응치 말라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다고 백성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진정시킨 히스기야.


그의 기도를 보며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주님, 제가 너무 멀리 왔군요. 당신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군요. 이제 다시 돌아서서 당신께 갑니다. 제 모든 문제를 들고 아버지께 갑니다.


돌아갈 차례. 아플 때마다 나의 기도는 더욱 간절하고 뜨거워진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껏 그분을 의지하고 살았다. 그것밖에는 다른 힘이 없었다. 사람도 결국은 한계가 있는 법. 나는 그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에 이르렀다.


그분이 이렇게 나를 고난 중에 감사로 부르시는지도 모른다. 어제 월드비전에서 온 아이의 편지를 받고 잠시 내 마음이 흥분되었다. 3ㆍ1절에 쓴 편지에 우리 나라가 일제 식민지 아래 당했던 아픔에 대해 적었더니, 그 아이가 답장 속에 긴 글을 보내주었다.


자기 나라도 그렇다고. 할아버지께 들은 바 포르투칼의 점령 하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 아이가 그 먼 곳에서 내 말에 집중하고 있구나, 귀담아 듣고 있구나. 고맙고 뭉클했다. 영어로 적어 보내는 건 자신이 없고 답장만 번역없이 받았다. 그런데 어제 편지 속엔 필기체가 너무 흘러써져 안 그래도 부족한 실력에 더 알아보기 힘들고.


사전을 끼고 찾아본 후 답장을 써야겠다. 그 아이를 후원하며 좋았던 점은 내가 후원할 수 있다는 것보다 그냥 그 아이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거였다. 한 시간 넘게 추운 겨울 걸어서 학교에 가야 하는데, 여긴 어떤지 묻고. 우린 버스 타고 다니지만... 콩 같은 것을 심는데 여러 가지 종류는 심지 못한다는 것. 사고 싶은 게 있어도 돈이 없어 못 사지만 그래도 건강해서 감사하다는 것. 3개월에 오고 가는 편지를 기다리며 나는 삶의 소소한 기쁨과 희망을 맛본다.


서로가 신의 축복을 빌어주며 안녕하기를 기원하는 인사는 얼마나 다정한지. 그런 것들이 나를 되살아나게 한다.


그깟 감기 하나로 너무 분위기 잡는 것도 같지만 난 아픈 게 너무 싫다.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고 몸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참고 견디고 버티고 기다려야 하니까. 아직 머리가 무겁고 추웠다 답답했다 누워도 잠도 들지 않고 성경 읽다 글을 쓴다.


기도하고 답장 쓰러 가야지.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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