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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재범 Mar 10. 2019

도림동 대하빌라 A동 201호 지선이네 아줌마에게

야쿠르트 수레를 추억하며

내 인생의 첫 아줌마. 도림동 대하빌라 A동 201호 지선이네 아줌마. 우리 집은 202호. 지선이는 201호. 그러고 보니 같은 동네 친구들 엄마는 다 이모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왜 지선이네 아줌마만 아줌마였을까요?


아줌마! 저는 아줌마의 야쿠르트 수레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다섯 살 쯤 됐을까요? 어느 날 엄마랑 버스 타고 집에 가는데 창문 밖에 야쿠르트 수레를 끌고 가는 아줌마를 발견했죠. 엄마는 정류장도 아닌데 버스 아저씨한테 내려달라고 하면서 제 손을 붙들고 아줌마께 달려갔어요. 그냥 너무 반가워서요. 어차피 바로 옆집, 매일 보는 사이인데 엄마는 또 뭐가 그렇게 반가웠던 건지. 괜히 저도 덩달아 신이 났어요. 평소와 달리 야쿠르트 유니폼에 복숭아색 수레를 끌고 가는 아줌마를 동네 밖에서 보니까 새롭기도 하고 신기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셋이서 천천히 어느 거리를 걸어갔죠.


그런데 저는 야쿠르트 수레가 너무 타보고 싶은 거예요. 그 나이쯤 남자아이에게 무언가를 탄다는 건 콧구멍이 벌렁거릴 만큼 두근거리는 일이잖아요. 뭔가 지금이 아니면 그 수레를 타 볼 기회가 영영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나이에 실례라는 걸 알았나 봐요. 우물쭈물 말도 못 하고 수레만 끈덕지게 쳐다보고 있었죠. 역시나 그게 다 얼굴에 티가 났는지 아줌마는 "왜? 이거 타고 싶어?" 하셨어요. 그리곤 수레 위를 정리해 절 올려 태우고 걸어가셨죠. 이걸 타본 애는 나밖에 없을 거라는 우월감, 아줌마가 내 마음을 알아줬다는 안도감, 자동으로 움직이는 무언갈 타고 간다는 흥분감 같은 게 뒤섞인 채로 꽤 먼 길을 지났어요. 왠지 모르겠지만 그날의 장면이 너무 또렷이 기억나서 가끔 깜짝 놀라곤 합니다.


누구에게 편지를 쓰라는데 가까운 사람에게 쓰기는 좀 멋쩍기도 하고 그래서 일부로 떠올려야 기억나는 사람에게 써보기로 했어요. 그러고 나니 문득 아줌마가 떠오르네요. 제가 언제 아줌마를 떠올리며 편지를 써보겠어요. 저는 도림동 대하빌라에서의 유년 시절을 정말 사랑하는데 그 시간의 한 모퉁이에 아줌마가 조용히 자리 잡고 계셨네요. 다시는 아줌마를 직접 만나 뵐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알아요. 그래도 슬프진 않습니다. 그냥 그 시절의 지선이네 아줌마, 그걸로 저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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