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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재범 Jul 28. 2019

서운한 김치찌개를 먹으며

김치를 물에 담가 끓인 걸 김치찌개라고 속이며 소주를 한 병 먹는다.


진짜 김치만 들어간 김치찌개에는 서운함을 감추기 어렵다.

그 이름 앞에 돼지고기나 꽁치, 하다못해 참치라는 말이 붙어야 비로소 숟가락에 힘이 붙는다.

김치는 자기가 주인공인 줄 알고 신이 난다.

품고 있던 알찬 고물을 다 내어 놓고는 힘이 죽 빠져 늘어진다.

숟가락은 풀어진 김치를 헤집고 들어가 단호하게 돼지고기를 골라낸다.

김치는 아차 싶지만, 이미 가진 걸 다 내놓아 김치로서 자존감을 세우기 어렵다.


세상의 주인공이 나인 것처럼 살라는 사람이 있는데

애초에 주연과 조연이 정해진 무대도 아니지만,

그런 말을 지껄이는 사람을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오리지널 김치찌개 같은 새끼야."


냄비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두툼한 돼지고기를 만날 것.

꽁치를 만날 것.

참지를 만날 것.

물에 빠져보기도 전에 주인공이랍시고 건방 떨지 말아야지.


누가 별로 찾지 않더라도 혼자 떵떵거릴 수 있는 김칫국이 되든.

어떻게든 이겨내고 김치돼지찌개가 되든.

두 눈 부릅뜨고 끝까지 고물을 내놓지 않고 버티든.

주연은 그다음에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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