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조종할 수 있다면
1.
나는 시간을 조종할 수 없다. 내가 시간을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시간이 나를 향해 달려든다. 시간이 어떤 속도로 흐르든 나에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부유하는 뗏목에 올라탄 듯 그저 시간의 흐름을 즐기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면서 떠내려 갈 뿐이다.
어떤 속도로 떠내려 가든지 내가 할 일은 뗏목이 멈추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일, 바위에 부딪히지 않도록 신경 쓰는 일, 같이 탄 사람이 배고프거나 춥지는 않은지 돌보는 일, 가만히 앉아서 풍경을 돌아보는 일뿐이다. 목적지 같은 건 정해 본 적이 없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람을 만나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목적지가 어딘지 궁금하지 않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늦을까 조급한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2.
속도보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뗏목의 부유를 지속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정확한 타이밍에 수행하는 것.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필요한 작업을 해내는 일이야말로 속도보다 중요하다. 타이밍을 놓치고 나면 다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타이밍을 놓치면 내가 가진 것 이상을 얻을 수 없을뿐더러 이미 가진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뭘 더 많이 가지는 데는 큰 관심이 없지만 이미 가진 것을 바보처럼 잃어버리는 일은 참을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의 구간마다 찾아오는 어떤 타이밍을 예민하게 주시해야 한다.
2020.09
크리에이터 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