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밥 먹기를 좋아한다. 퇴근 후에 주로 이곳에 앉아서 컵라면에 김밥 혹은 도시락 하나를 까먹는다. 이곳에서 밥 먹기 좋은 시간은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다. 해가 저물기 시작할 때쯤 야외에 혼자 앉아 식사를 시작한다.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유는 사람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해가 떨어질 무렵이면 낮 동안 생활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가뿐한 발걸음으로 골목을 누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회사원, 저녁 산책을 나온 가족, 한껏 차려입고 애인을 만나러 나가는 젊은 친구들이 흥겹게 편의점 앞을 지나간다. 저마다 가슴속에 답답한 사정 몇 개쯤 품고 있을 것이나, 라면 한 젓가락에 맥주 두 모금을 마시며 골목을 쳐다보는 나에게 그들의 개별적인 사정이야 어쨌든 상관이 없다.
편의점에서 골목을 쳐다보면 다양한 인간상을 관람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간은 스스로 걸음을 뗄 수 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아이다. 나는 그의 걸음에서 생을 대하는 태도를 목격한다. 이제 막 홀로 땅을 딛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된 아이는 온 힘을 다리에 집중한다. 중심을 잃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기 위해 그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최선으로 내딛는다. 허리는 힘주어 세우고 고개는 바짝 쳐들어 시선을 목적지에 고정한다. 그들은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걷는다. 걸음에 익숙해진 어른들은 이런 걸음을 '아장아장'이라고 표현한다. 온 무게를 실어 땅을 짓이기는 다리에 아장아장 같은 표현을 붙이기는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는 주변의 도움도 마다한다. 그는 아버지가 내민 손도, 어머니가 밀어주는 유모차도, 할머니의 어부바도 끝내 거부한다. 아이는 중력을 이기고 제 힘으로 목적지에 도착해내는 최초의 성취를 갈망한다. 지하철에서 빈자리를 찾아 치열한 눈치게임을 벌이는 나의 태도와 대조적이다. 믿을 만한 사람이 유모차에 태우고 출근시켜준다면 나는 결코 그 호의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결과를 성취하기보다는 남의 조력을 먼저 기대하는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있거나 혹은 이미 그렇게 돼버렸다. 창피한 일이다.
새로운 생은 땅을 딛고 자꾸만 움터 오르고, 저물어가는 생은 홀로 일어설 의지를 잃어간다. 편의점 테이블에서 라면을 후- 불어 먹으며 나는 저물어가고 있는 것인가 생각했다.
2020. 05. 10
일기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