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리는 순간 비싼 가격만큼 현타가 아주 씨게 온다
그 흔한 명품 옷, 시계, 신발, 가방을 나는 한 개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와이프도 마찬가지다. 와이프와 나는 명품 1개를 살 바에 가성비 제품 5개를 사는 유형이다. 명품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물론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을 비난할 의도는 없다. 취향 차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내 돈이 아니니 돈 벌기 힘든 줄 모르고 펑펑 썼다면, 이제는 돈 버는 게 제일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뭐든지 아끼려고 한다. 물건을 사기 전에 왜 필요한지, 정말 내가 갖고 싶어서 사는 건지 아니면 그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말처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인지 구분하려 애쓴다.
그런데 구찌 팔찌를 구입한 것은 순전히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 결과다. 더 정확하게는 tvn <윤식당>이나 <삼시세끼> 등에 나오는 이서진과 차승원이 무심하게 찬 팔찌가 너무 간지났다. 물론 그 두 사람이 찬 팔찌는 구찌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첫 팔찌는 합리적 가격이면서 네임밸류도 있는 구찌가 괜찮아 보였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살 수는 없었다. 팔찌를 구입하기까지는 시간을 두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또한 와이프와 함께 커플로 맞출 예정이라 돈이 두 배로 드니 더욱 그 과정은 지난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고민하다 와이프와 나는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결정은 했지만 그래도 놓칠 수 없는 건 가격이었다. 인터넷이 싼 지, 오프라인 백화점이 싼 지 등 검색을 했다. 그러다 어쩌다 한 번 구입하는 건데 너무 짠내 나는 거 아니냐며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날만큼은 백화점 VIP처럼 당당하게 걸었다. 매번 명품 매장은 밖에서 구경만 하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신기해하기만 하던 우리가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섰다. 마치 '또 온 것처럼'.
얼마간 기다리고 입장을 했더니 직원이 맞이해 주었다. 우리는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매대에 팔찌가 있는 곳으로 곧장 직행했다. 직원은 찾는 디자인이 있냐고 묻길래 백화점에 오기 전부터 찾아본 팔찌를 보여주었더니 그 물건을 꺼내주었다. 우리는 처음 온 티를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팔찌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팔에도 차 보았다. 다른 팔찌도 여러 개 보여달라고 해서 보았지만, 가격도 그렇고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원래 처음 보던 것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가격을 보니 인터넷보다 비싼 것이 아닌가. 사실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스멀스멀 짠내끼가 올라오려고 했다. 그러다 옆을 봤는데 와이프는 이미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ㅋㅋㅋ).
우리는 직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매장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그리고 서로 다독였다. "그래, 인터넷으로 사자"고 이야기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우리는 정말 마음 굳게 먹고 이미 장바구니에 담아둔 팔찌 두 개를 구입했다.
그렇게 힘들게 산 팔찌를 허탈하게 잃어버렸다. 사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애지중지하며 하루도 빼먹지 않으며 팔찌를 차고 다녔다. 나는 거추장스러운 걸 싫어해서 시계도 못 차는데 무려 구찌 팔찌 아닌가. 명품은 남에게 보여주고 다른 사람이 "오, 구찌네"라고 할 때라야 진정 구찌가 되는 것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명품이 아니다. 그런 명품을 한 순간에 잃어버렸다.
추정해 볼 수 있는 건 와이프와 아들, 그리고 나까지 마트에서 장을 보고 푸드코트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집에 돌아와서 아들과 함께 거실 바닥에서 책을 읽다가... 쎄한 느낌이 들어서 내 왼쪽 손목을 봤는데, 없다! 어? 어...? 하며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더듬어봤자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서 잃어버린 거겠지' 하며 소파 밑, TV장 밑, 식탁 밑... 밑이란 밑은 다 뒤져보았고, 구석이란 구석은 다 훑어보았다.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마트에서 잃어버렸을까 싶어 분실물센터에 전화해서 팔찌가 분실물로 들어왔는지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은 역시 '없다'였다. 그럼 만약 팔찌가 분실물로 들어오면 제발 저에게 연락해 달라는 공허한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내 첫 번째 명품은 그렇게 허망하게 내 곁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