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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세준 Nov 14. 2023

PD수첩 작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브런치의 영향력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브런치 사이트가 막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싸이월드가 한물 간지 오래였고, 페이스북도 약간 시들해질 무렵이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넘쳐났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새로운 툴(Tool)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때마침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를 걸고 나타난 브런치는 '나도 책 한 권 정도는 내야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많은 이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나도 브런치가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 가입해 '작가'가 돼서 초창기 멤버로서의 자부심이 있다.


지금 브런치는 거대해졌다.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새로운 작가들을 배출해서 유명인사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이미 유명한 사람들도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브런치가 카카오와 다음(Daum) 속으로 흡수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더욱 용이해졌다. 다음 메인화면에 브런치 글이 걸리면 며칠은 조회수가 급격히 상승하여 일명 '조회수 뽕'을 맞는다. 높아지는 숫자를 보며 덩달아 기분이 들뜨기 시작하고 어디까지 올라갈지 궁금해진다. 주식 차트 보듯이 통계를 수시로 확인하며.


일부 브런치 이용자들은 자신이 쓴 글에 대한 '값(원고료)'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원래 브런치는 개인 블로그처럼 돈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닌 일명 명예직이었다. 내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영향을 끼치는 것이 주된 목적인 플랫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창작물에 대해 사회적 분위기가 더 예민해졌으므로 내가 창작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일부 분야별 작가들에게 '응원'이라는 명목으로 독자들이 자유롭게 설정한 금액을 받을 수 있도록 열어놓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회수와 같은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돈이 당연한 것처럼 보여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시대적 흐름과 이용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결심을 한 브런치 운영진의 결정도 대단하다.


브런치의 강점은 일상생활을 공유하고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예쁘게 디자인해놓은 툴 위에 한 글자씩, 한 편씩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이 안 되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정리하여 '발행' 버튼을 누르곤 했다. 특히 몇 달 전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된 '순살 아파트'와 같은 브랜드의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어 이에 대한 걱정과 감정을 한 줄씩 써내려 갔다(아래 링크 참조).


https://brunch.co.kr/@b2tween/69


그러던 어느 평일, 평소와 같이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때였다. 업무 메일 확인차 메일함을 열었는데, 보낸 이는 브런치, 제목은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라는 메일이 와있었다. 브런치의 기능 중 글을 쓴 작가에게 출간, 강연섭외, 작업요청, 기타 등 목적에 맞게 말을 걸 수 있는 '제안하기'가 있는데 이걸 통해 연락이 온 것이다. 브런치 작가 활동하면서 처음 받아본 제안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빠르게 스크롤을 내려 내용을 확인했다.


'띵~동' 새로운 제안이 도착한 내 메일함


안녕하세요. mbc PD수첩의 ooo 작가입니다.
주차장 붕괴사고를 시작으로 다시금 문제시되는 브랜드 아파트의 부실시공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쓰신 글에 12월 GS건설에서 지은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계시다고 하여, 혹시 아파트 입주예정자 분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와 요구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건설사에 요구를 하셨다면 어떤 답변을 받았는지, 현재 상황을 듣고 싶어 이렇게 메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내용 보시고 들려주실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메일 혹은 전화 000-0000-0000로 연락 부탁드려요.


의심이 많은 나는 번뜩 든 생각은 '스팸인가?'였다. 메일을 통해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취득하고 사칭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낸 이가 브런치다. 이러면 믿고 알려준 번호로 연락을 해도 된다는 거 아닌가. 나는 적혀있는 번호로 먼저 문자를 보냈다. 그러더니 얼마 후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의 소속을 다시 한번 밝힌 취재 작가님은 PD수첩에서 다룰 내용으로 브랜드 아파트의 부실시공을 중점적으로 취재하고 있어 자료 조사를 하다가 '내 글을 보고'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내 글을 보고 연락했다니! 그 이야기를 듣고 훗, 갑자기 우쭐해지기 시작했다. 아, 그러셨군요,라고 말하고 "제 글에서 어느 부분이 그렇게 좋으셨어요?"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나는 입주예정자 단체 카카오톡방에 접속해 있기 때문에 입주예정자들이 걱정하고 있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해드렸다. 그리고 건설사에 대한 대응이나 요구와 같은 것들은 입주예정자협의회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곳 회장님에게 연락을 취해 먼저 상황 설명을 하고 취재 작가님과 연결해 드리고 마무리지었다.


사실 이후에 PD수첩뿐만 아니라 아침 방송 여러 곳에서도 연락이 왔다. 부실 시공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이를 모든 언론사에서 부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자료를 조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근데 중요한 건 모두 내 글을 보고 연락을 했다고?

브런치 영향력 대단하다.



[출처]

배경 사진=MBC PD수첩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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